[카토커] 송산고 배구부 해체, 선수 학부모 동의도 안 구했다

[카토커] 송산고 배구부 해체, 선수 학부모 동의도 안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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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산고 '2024 교육과정 운영계획서' 캡처
'학교 운동부 운영 계획을 수립하여 학교운영위원회 심의와 학생 선수 학부모의 전원 동의를 거쳐 운영한다.'

최근 '배구부 해체 선언'으로 한국 배구계에 큰 충격을 안긴 송산고등학교. 이런 와중 해체 결정이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학교 측의 일방적인 통보로만 이루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배구부를 운영하는 데 있어 필수 절차인 '운영위 심의'는 진행된 바 없다. 또 '배구부 학부모 전원 동의'라는 소통 과정 역시 부재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송산고 '2024 교육 과정 운영 계획서' 130페이지에는 교내 운동부 운영 방침이 적혀 있다. 그중 최상위인 '가' 항목에는 '학교 운동부 운영 계획을 수립하여 학교운영위원회 심의와 학생 선수 학부모의 전원 동의를 거쳐 운영한다'는 방침이 명시돼 있다.

학교에서 운영하고 있는 학교 운동부는 배구부뿐. 즉 이 방침은 배구부만을 위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2009년 송산고 배구부 창단식 당시 사진. 경기도체육회 제공
하지만 이는 전혀 지켜지지 않은 모양새다. 송산고 측은 지난달 2일 간담회를 열어 선수 학부모에 내년부터 배구부 신입생을 받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쟁점은 배구부 해체 결정이 정당한 절차를 거쳤는지 여부다. 우선 선수 학부모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가 있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앞서 말한 '운영계획서'에 명시된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배구부 선수 학부모 A씨에 따르면 해체 결정은 학교 측의 일방적인 통보였다. A씨는 "8월 2일 학부모 간담회 당시, 학교 측에서 배구부를 해체하겠다고 명확하게 통보했다"며 "일방적이었다. 다른 고등학교에서 현재 1, 2학년 선수들을 받아준다고 하니, 이에 동의하는지만 물어봤다"고 주장했다.

이어 "9월 중, 아마 추석 이후에 학교 측에서 다시 간담회를 열 것 같다"고 전했다. 이미 해체가 확정된 것이냐는 질문에는 "8월 간담회 당시 학교 측이 너무 확고하게 말해서 바뀌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전 배구부원 학부모 B씨 역시 비슷한 입장이다. B씨는 "오히려 다른 학교 학부모들한테 우리 학교 배구부 해체 소식을 들었을 정도"라며 학교 측의 소통 문제를 꼬집었다. B씨의 자녀는 올해 상반기에 해체 소문을 전해 듣고 배구부를 떠난 상태다.

올해 송산고 운영위 회의에 상정된 안건들. 이중 '배구부 해체'와 관련한 안건은 찾아볼 수 없다. 해당 자료 캡처
배구부 운영 계획의 또 다른 필수 조건은 '학교 운영위 심의 통과'다. 하지만 이마저도 거치지 않고 해체 결정이 이뤄졌다.

송산고 운영위는 올해 4월 11일, 5월 2일, 6월 20일, 8월 9일까지 총 4차례 회의를 진행했다. CBS노컷뉴스가 올해 운영위 안건 자료와 회의록을 모두 살펴본 결과, '배구부 해체건'이 회의 안건으로 상정된 적은 없었다.

배구부와 관련한 안건은 △운동부 전임 코치 신규 채용 △2024학년도 운동부 연간 운영 계획 변경(지원금 및 기부금 지출 관련), △2024학년도 배구부 운영 계획 변경(전지훈련 관련), △2023~2024학년도 신인 선수 드래프트 지원금 사용 계획, △새마을금고 장학금(배구 특기자 대상) 선정 위원회 회의 결과, △배구부 일반 코치 신규 채용 계획이 전부다.

운영 위원들도 학교 측의 독단적인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현 운영 위원 C씨는 "배구부 해체와 같은 중대한 사안은 운영위 회의에 올라왔어야 할 안건"이라며 "평소 전지 훈련, 예산 문제 등 배구부와 관련한 사소한 안건이라도 운영위 심의를 거쳤다"고 전했다.

이어 "배구부 해체 안건은 전혀 논의된 바 없다. 운영 위원인데도 해체에 대한 얘기를 교문에 현수막 붙은 걸 보고 알게 됐다"며 "8월 회의가 끝난 뒤 사담을 나누는 시간에 다른 위원이 질문했던 정도가 전부"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운영 위원 D씨도 "학교 측이 운영위의 의견을 묻는 절차는 전혀 없었다"고 단언했다. 학교 측에서 안건을 올리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운영위가 해체를 반대했을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운영위원들은 허수아비였다. 학교 측에서 물어본 게 없었기 때문에 해체와 관련한 아무런 의견도 내지 못했다"고 잘라 말했다.

경기도체육회 제공
학교 측은 어떤 입장일까. 원성일 교장은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이미 언론을 통해 반박문을 내보낸 사안"이라고 일축했다. '학부모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있었냐'는 질문에는 "반박문을 보시면 알 수 있다"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원 교장이 추후 보내온 학교 입장문에서 학부모들이 배구부 해체에 동의했다는 말은 찾을 수 없었다. 학부모 간담회를 실시해 교장의 고민 사항을 전달했다는 말이 전부였다.

송산고 배구부 해체 소식에 고교 배구 현장에서는 분노가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송산고 배구부가 사라지면 전국 고교 남자부 배구부 수는 22개밖에 남지 않기 때문. 현장 지도자들은 "재능 있는 선수들이 배구를 포기하게 되고, 경쟁력 있는 인재 풀도 좁아지게 된다"며 "왜 열심히 하는 배구 유망주들이 피해를 봐야 하느냐"는 이유로 송산고 배구부 해체를 적극 반대하고 있다.

학부모들도 당연히 선수들의 피해를 걱정한다. A씨는 "학생들은 송산고에서 계속 배구를 하고 싶어 한다"며 학교 측의 노력을 촉구했다. B씨는 "남겨진 1~2학년 학생들이 안타깝다. 어디로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운영 위원 C씨 역시 "현재 남아 있는 학생들까지는 학교에서 보호를 해줬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아쉬워했다.

송산고 배구부 1회 졸업생들이 지난 2일 학교 앞에서 배구부 해체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송산고 동문회 제공
최근 송산고 출신 동문들은 교문 앞에서 배구부 해체 반대 피켓 시위를 진행했다. 역시 학교 측의 소통 부재를 꼬집는다. '소통 없이 배구부 해체, 송산고는 교장 먼저 사퇴시켜라!'라는 현수막이 걸렸고, 배구부를 정상화하라는 외침이 이어지고 있다.

지역 정치권에서도 배구부 해체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화성시의회 이용운 의원 등 19명은 지난 2일 '제235회 임시회 1차 본회의' 산회 후 본회의장에서 "송산고는 화성시 배구 꿈나무의 꿈을 짓밟는 배구부 해체를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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