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토커] '송산고 배구부 해체 논란' 女 지도자들도 한숨 "세상 무너질 것 같다"
한국중고배구연맹 제공
최근 한국 배구계에 큰 충격을 안겨준 '송산고 배구부 해체 논란'은 비단 남자 고등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해체를 반대하는 여러 목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여고부 지도자들 역시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송산고는 9일 경기도 화성시 송산중 체육관에서 열린 '2024 IBK기업은행배 화성시 전국 중고 배구 최강전' 첫 경기에서 제천산업고에 세트 스코어 1 대 3(20-25 21-25 25-22 19-25)으로 졌다. 첫 라운드부터 탈락의 쓴맛을 봤다. 남고부는 8개팀이 참가해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된다.
IBK기업은행배는 '명문'이라 불리는 송산고 배구부를 볼 수 있는 마지막 대회가 될 수도 있어 관심을 모았다. 학교 측이 지난 8월 학부모와 간담회 자리에서 '해체'를 통보했기 때문이다.
올해 남은 고교 배구 대회는 오는 10월 경남에서 열리는 제105회 전국체전뿐. 그러나 송산고는 이번 전국체전을 뛰지 못한다. 경기도 대표로는 수성고등학교가 출전한다.
송산고 배구부 해체 소식에 앞서 남고부 현장 지도자들은 "유망주들이 왜 피해를 봐야 하느냐"며 극력 반발한 바 있다. 한국 남자 유스 대표팀과 수성고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김장빈 감독은 지난달 29일 "학교 측이 무책임하게 배구부를 폐지하겠다는 소식에 무척이나 황당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전국의 배구팀이 많지도 않은데, 배구부를 해체까지 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일갈했다.
남성고 강수영 감독은 "어렵게 창단한 배구부인데 팀이 없어지게 생겼다. 문제 해결을 해야 할 시기에 학교 측은 회피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속초고 조길현 감독도 "어른 싸움에 어린 선수들만 피해를 보는 꼴"이라며 "냉정하게 평가해야 할 문제"라고 꼬집은 바 있다.
남성여고 윤정혜 감독(오른쪽)이 IBK기업은행배에서 선수들에 지시를 내리고 있다. 이우섭 기자
안타깝기는 여고부 지도자들도 매한가지다. 남성여고 윤정혜 감독은 9일 CBS노컷뉴스와 인터뷰에서 "제가 선수로 뛰던 1986년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수준"이라며 아쉬워했다. 윤 감독은 "TV에 나오는 프로 선수들은 대접을 잘 받는다"면서도 "학교 엘리트 체육은 전혀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쓴소리를 남겼다.
윤 감독이 이끄는 팀이 송산고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세상이 무너질 것 같다"고도 했다. 윤 감독은 "감독들은 책임자의 위치에 있다. 아이들은 감독만 보고 따라오는 것"이라며 "선수들이 우선시돼야 한다. 학생들을 아무도 보호하지 않고, 북돋워도 소용없다면 그건 분노할 일"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학교 측에서 내린 결정에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다는 현실에는 한숨을 쉬었다. 윤 감독은 "학부모님들과 지도자들은 학교 측에서 그냥 해체하겠다고 하면 힘이 없다"며 "특히 지도자들은 아무리 열심히 해보려 해도, 학교에서 해체한다고 하면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여자 유스 국가대표팀과 중앙여고 감독을 겸임하고 있는 장윤희 감독은 우선 해체로 인한 부정적 영향이 이어질 것을 걱정했다. 장 감독은 "여고라고 일어나지 않을 일이 아니다"며 우려를 드러냈다.
장 감독은 "현재도 여고부 몇 팀의 운영이 상당히 어려운 걸로 알고 있다"면서 "남고부에서 이러한 문제가 생겼는데, 여고부에서도 일어나지 않으라는 법은 없다"고 했다. 이어 "제가 운동할 때에 비해 팀이 훨씬 줄었다"며 "운동하는 사람이 없는 영향도 있겠지만, 팀 자체가 많지 않아서 더 힘들다"고 토로했다.
IBK기업은행배가 열리는 화성실내체육관 입구에 걸린 현수막. 이우섭 기자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입장에서는 팀 1개, 선수 1명이 더욱 절실하다. 장 감독은 "대표팀 선수를 선발하는 입장에서 팀이 적어지면 선수 풀도 작아지는 게 확 느껴질 것 같다"며 "한정된 상황에서만 선수를 뽑아야 하는데, 다양한 선수들을 발굴해 대표팀을 구성하는 게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이는 성인 대표팀의 국제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장 감독은 "현재 한국 배구는 노장 선수들이 많다. 신인 선수들이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고 문제를 짚었다.
그러면서 장 감독은 "노장 선수들은 경기를 보는 시야가 넓다"면서 "신체적 반응이 늦더라도, 경험이 풍부해서 어린 선수들과 함께 뛰면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라고 전제했다. 이어 "하지만 어린 선수들이 성장하지 못하는 환경"이라면서 "젊은 선수들이 노장 선수들을 받치지를 못하다 보니, 국가대표로 활용하기도 어려워지는 현실"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