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토커] 일곱 번 넘어지면 여덟 번 일어난다...곡절 딛은 차지환 "힘 빼는 법 알아가고 있다"
맛돌이김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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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5 13:26
"힘 빼는 법을 알아가고 있다." OK금융그룹 아웃사이드 히터 차지환의 말이다.
드래프트 대어→백업 신세...곡절 딛고 주장 완장까지
차지환은 2017년 인하대 2학년 신분으로 프로 도전장을 던졌다. 201cm 장신에 대학배구리그 사상 최초 신인상-MVP 동시 석권 이력. 게다가 고교 시절 성인 대표팀 승선 경험까지. 그를 향한 다수 구단의 관심은 당연했다. 예상대로 차지환의 이름은 일찍 호명됐다. 전체 2순위로 OK저축은행(현 OK금융그룹) 유니폼을 입었다. 하지만 여느 신인이 그렇듯 그도 입단 초에는 많은 기회를 받지 못했다. 더구나 당시 OK저축은행은 탄탄한 왼쪽 날개 자원을 보유한 팀. 송명근(우리카드)과 송희채(OK금융그룹)가 굳건히 버텼다. 여기에 2018-19시즌 요스바니(대한항공) 합류로 차지환은 2년 차까지 백업에 그쳤다.
끝내 2019년 4월 차지환은 상무 입대를 택했다. 군 복무 동안 그는 향후 선수 생활을 놓고 무거운 고민에 부딪혔다. 빛나던 대학 시절과 달리 앞이 보이지 않던 2년 간 프로 적응기. 이른 나이지만 은퇴 단어를 떠올릴 만큼 그가 마주한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그런 그를 일으켜 세운 건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 차지환은 군 복무 중 세 살 연상 아내와 미래를 약속했다. 가정의 존재는 그가 다시 코트에서 날아올라야 할 이유였다. 별 볼 일 없는 남편이 되지 않겠다고, 훗날 태어날 자식에게 떳떳한 아버지가 되겠노라 다짐 또 다짐했다.
2020년 11월 상무에서 돌아온 차지환은 재도약을 위해 과거를 돌아보는 일부터 시작했다. 지난 프로 생활 동안 최선을 다했냐는 물음에 스스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육성군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몸을 끌어올렸다. 이후 2020-21시즌 도중 팀에 합류한 그는 날카로운 공격력을 선보이며 반등을 예고했다. 이어진 2021-22시즌 차지환은 복귀 1년 만에 커리어 하이를 맛봤다. 35경기 133세트에 나서 398득점을 남겼다. 공격 성공률은 56.14%에 달했다. 2022-23시즌에는 주장 완장까지 차며 역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됐다.
이른 시기 찾아온 부상 악재, 태극마크마저 자진 반납
2023-24시즌은 오기노 마사지 감독이 OK금융그룹에 부임한 첫해. 오기노 감독은 팀에 일본 특유 스피드 배구를 녹이며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이는 곧 돌풍이 됐다. 정규리그 개막 전 창단 첫 코보컵 트로피를 들어 올리더니 끝내 챔프전 준우승까지 차지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차지환의 비중은 크지 않았다. 부상 여파로 코트에 오르는 일이 적었기 때문. 되돌아볼수록 아쉬운 한해라는 게 그의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컵대회 당시만 해도 차지환은 대회 MVP급 기량을 뽐냈다. 비시즌부터 혹독하게 자신을 채찍질해 만든 결과. 막상 시즌이 시작되자 몸에서 고장 신호가 울렸다. 성급한 복귀는 회복을 늦추는 악순환을 낳았다. 결국 차지환은 22경기 70세트 150득점으로 지난 시즌을 마무리했다. 팀의 준우승에도 마냥 웃지만은 못한 까닭이다. 지난 27일 OK금융그룹 하계 팬페스트에서 만난 그는 "지난 시즌 부상으로 출전 횟수가 적었다. 특히 챔프전을 많이 못 뛰었다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지더라도 코트에서 지고 싶었는데, 밖에서 보기만 해야 한다는 사실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시즌이 끝나고도 차지환은 부상으로 씁쓸함을 삼켜야 했다. 그는 지난 6월 AVC 챌린지컵 명단에 포함돼 바레인으로 떠났다. 하지만 컨디션 난조에 시달리며 스스로 만족할 만큼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끝내 차지환은 자신에게 찾아온 태극마크를 직접 돌려보냈다. 그는 "AVC 챌린지컵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감독님을 찾아가 대표팀에서 하차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엔트리는 정해져 있는데, 다른 뛰어난 선수들이 대표팀에 오를 기회를 뺏을 수는 없지 않나. 내 몸 상태는 내가 제일 잘 안다. 스스로 재능 있는 선수가 아니라 생각해 평소 오랜 시간을 들여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편이다. 시즌 때부터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면 모르지만, 알다시피 그게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경기에 나서려니 준비가 안 돼 있었고, 기대한 만큼 퍼포먼스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감독님께 내년에 더 좋은 모습으로 다시 대표팀에 들 수 있게 노력하겠다 말씀드렸다"고 속 얘기를 꺼냈다.
그러면서 "대표팀을 위해서도 그게 좋을 거라 생각했다. AVC 챌린지컵을 준비하고 치르면서 많이 보고 배웠다. 하지만 경기를 뛰고 싶었고, 나라를 대표하고 싶었다. 오죽하면 조금이나마 팀에 도움이 되려고 수염까지 길렀다. 강한 인상으로 상대 팀과 기싸움에서 지지 않을 심산이었다. 그만큼 간절했다. 그러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막상 팀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많이 없어 마음이 힘들었다"고 밝혔다.
절실히 체감한 과유불급의 의미, 이제는 집중과 선택 외친다
과한 의욕이 발목을 잡은 탓. 코트에서 더 많은 걸 보이겠다는 마음에 필요 이상 몸을 혹사했다. 비시즌부터 쉬는 날 없이 훈련을 이어갔다. 도리어 독이 돼 찾아왔다. 차지환은 "직전 시즌(2022-23시즌)이 끝나고 휴가 때부터 새 시즌을 준비했다. 첫 FA를 앞두기도 했고, 열심히 노력하면 선수로서 한 단계 더 올라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돌이켜보면 조급했다. 쉬는 날 없이 훈련에만 열심이었다. 그게 독이 됐다. 코보컵 때 좋은 활약을 펼친 것도 어떻게 보면 남들보다 빨리 시즌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결국 일찍부터 몸에 무리가 왔고, 정작 중요한 정규리그와 챔프전은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쉬어갈 줄도 알아야 하는데 페이스 조절이 없었다. 일찍 부상을 당한 만큼 마음만 더 급해졌다. 충분히 회복한 뒤 복귀해야 하는데, 서두르다 보니 복귀해서도 몸 상태가 올라오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이번 비시즌은 다르다. '힘 빼기'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할 땐 하고, 쉴 땐 쉰다. 부상 없는 차지환을 기대하라는 선전포고. 그는 "지난 시즌 스스로 느낀 게 많다. 요즘엔 그래서 할 때 좀 더 집중을 많이 하려는 편이다. 할 때 더 신경 쓰고 집중력 있게 연습을 가져가야지 쉬는 시간이 보장되는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저번 시즌엔 운동이 끝나고 나면 늘 아쉬움이 있었다. 이게 좀 아쉽고 저게 좀 아쉽고 그러다 보니까 마음이 급해져 쉬는 날에도 혼자 나와 연습하고 그랬다. 지금은 운동이 끝나면 개운한 마음만 남는다. 그만큼 정말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쉴 때는 마음 편하게 쉰다.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서는 배구도 되게 잘 되고, 마음도 편하다. 힘 빼는 법을 알아가고 있다"고 또렷하게 말했다.
어느덧 8년 차 베테랑, '속'까지 무르익은 차지환
한국 나이 29세. 어느덧 차지환도 팀을 이끄는 베테랑이 됐다. 뻣뻣하고 파워만 강하던 지난 시절과 달리 여유가 생겼다. '오기상'의 가르침에 제법 익숙해졌다. 그는 "오기노 감독님은 상대 블로킹이 2~3명씩 달라붙으면 무모하지 않게, 좀 더 현명하게 팀을 위한 플레이를 했으면 좋겠다고 늘 주문하신다. 하지만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그게 잘 안 됐다. 왜냐하면 나는 초등학교~대학교 때까지 무조건 스스로 점수를 내야 하는 자리에 있었다. 그래서인지 페인트나 연타, 리바운드 플레이를 할 때면 도망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부딪히는 성향의 배구를 많이 했었는데, 그게 정답이 아니라는 걸 많이 느끼고 있다"고 입을 뗐다.
그러더니 "전에는 공격 성공률 몇 %라든지 '숫자'가 높은 게 최고라고 생각했다. 숫자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이제는 그런 숫자도 숫자지만 좀 더 팀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 와중에도 숫자를 함께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고. 무조건 강타가 아니라 유기적이고 테크닉적인 플레이를 하면서도, 또 확실히 득점을 내야 될 때는 어떻게 하면 확실히 득점을 내야 되는지 늘 고민한다. 그런 걸 생각하다 보니 공격수로서 선택지가 넓어지고, 조금씩 시야가 트인다. 아직은 미숙한 단계지만, 좋아지고 있다"고 말을 이었다.
선수로서 태도도 한층 성숙해졌다. 어린 마음에 가끔 고집도 피우던 지난 날의 차지환은 이제 없다. 그는 "어릴 때는 항상 불만만 많았던 거 같다. 팀 시스템에 대한 것도 그렇고, 선수들 간에도 시즌이 길어지다 보면 불만이 나오고. 어린 마음에 반항하면 멋있어 보인다고 생각했나 싶다. 사실은 절대 그렇지 않은데. 감독이 가자고 하는 방향이 있으면 선수로서 그냥 믿고 따라갔어야 하는데, 왜 진작 그러지 못했나 싶은 마음이다. 특히 석진욱 감독님이 팀에서 나가실 때 그런 후회와 반성을 되게 많이 했다. 그래서 오기노 감독님이 오시고는 앞장서서 일부러 더 선수들이 감독을 따르는 분위기를 형성하려고 많이 노력한 것도 있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지난 시즌 종료 후 차지환은 생애 첫 FA 자격을 얻었다. 연봉 총액 3억 5천만 원에 재계약 사인했다. 2017년부터 이어져 온 긴 인연, 원클럽맨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다. OK금융그룹과 함께 더 높은 곳을 바라본다. 그는 "OK와 함께 더 단단한 팀을 꾸려보고 싶다. 이번 시즌은 좀 더 독하게 준비를 하고 있고, 항상 우승을 목표로 하지만 꼭 좋은 성적을 내리란 보장은 없다. 그렇기에 성적표를 떠나서 동료들과 함께 한층 더 발전된 모습을 최우선으로 보여드리고 싶다. 어려운 순간에도 서로 의지할 수 있는 팀이 된다면 쉽게 무너지지 않으리라 믿는다. 그런 팀으로 나아가고자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간 차지환의 배구 인생은 부딪힘의 연속. 하지만 부러지진 않았다. 그만큼 더 단단해진 모습으로 그가 올 시즌 OK금융그룹의 선봉에 선다.
사진_KOV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