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토커] 장수 외국인 감독의 실패, 성실함과 유능함은 별개였다
현대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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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2 04:42
▲ 콜린 벨 감독 |
ⓒ KFA |
한국 여자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어온 콜린 벨 감독이 한국과 결별했다. 대한축구협회(KFA)는 콜린 벨 감독과 상호합의 하에 계약을 조기종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잉글랜드 출신의 벨 감독은 지난 2019년 10월 최인철 전 감독의 후임으로 대한민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사상 첫 외국인 감독으로 부임했다. 벨 감독은 한국을 맡기 전까지 독일-영국 등 유럽무대에서 오랫동안 활약해 왔으며 2015년 프랑크푸르트의 UEFA 여자 챔피언스리그 우승, 2017년 아일랜드 여자축구대표팀의 돌풍을 주도하며 지도력을 호평받았던 인물이었기에 기대감이 높았다.
축구협회는 벨 감독의 화려한 유럽 커리어에 매료되어 그가 세계축구의 트렌드를 접목해줄 적임자로 판단하여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여기에 '황금세대'로 불릴 만큼 역대 최고의 전력이라는 평가를 받는 선수단까지 물려받았다. 벨 감독 본인 역시 외국인 사령탑임에도 미디어 친화적이고 성실한 이미지로 대중적 호감도 또한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벨 감독은 무려 4년 8개월이나 한국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음에도 이렇다할 성과가 없었다. 특히 메이저대회에 출전하여 중요한 경기마다 고비를 넘지 못하고 허무하게 무너지는 패턴이 매번 반복됐다.
콜린 벨호는 지난 2020 도쿄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플레이오프(PO)에서 중국에게 합계 3-4(1-2, 2-2), 한 골 차로 밀리며 올림픽 출전이 좌절됐다. 한국은 2차전에서 먼저 리드를 잡았으나 지키지 못하고 동점에 이어 연장전까지 가서 끝내 역전을 허용했다.
2022 인도 AFC 여자 아시안컵 결승에서도 중국에 선제골을 넣었으나 2-3으로 역전패했다. 그래도 이때까지만 해도 벨 감독에 대한 비판보다는 호평이 많았다. 대한민국은 역사상 첫 여자 아시안컵 결승진출이라는 성과를 일궈내면서, 벨 체제를 조금만 더 가다듬으면 밝은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는 희망을 꿈꿨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아시안컵 결승행은 벨호의 마지막 화양연화였다. 2023년 들어 벨호는 7월 FIFA(국제축구연맹) 여자월드컵 조별리그(1무 2패) 탈락, 9월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북한에 덜미를 잡혀 8강에 탈락한 데 이어, 2024 파리올림픽 예선에서는 2차예선에서 고배를 마시며 본선진출에 실패하는 최악의 성적을 거뒀다.
벨 감독의 재임기간 동안 한국 여자축구 대표팀은 A매치 49경기에서 24승 10무 15패를 기록했다. 벨 감독은 부임 이후 줄곧 '자신감, 유연성, 고강도 훈련' 등을 자신의 축구철학으로 강조했으며, 선수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인터뷰에서 한국어를 사용하는 등, 대표팀 감독의 직무를 성실하게 이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유럽 유명 클럽팀으로부터 영입 제의가 왔을 때도 벨 감독은 거절하며 한국축구와의 계약을 존중하는 의리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성실함과 유능함은 별개였다. '무능한 벤투 혹은 성실한 클린스만'이라는 평가에서 보듯이, 벨 감독은 여자대표팀에서 벤투 이상으로 장기집권했고, 클린스만과 달리 좋은 워크에식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가장 중요한 지도력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벨호가 중요한 경기마다 무너지는 과정을 보면 강팀을 상대로 '피지컬 열세→골 결정력 부족→실책으로 인한 실점→실점 이후 급격히 하락한 에너지 레벨→ 오버 페이스로 인한 체력 고갈'이라는 패턴을 4년 내내 반복해온 것을 알 수 있다. 초반에는 활발한 전방압박으로 경기를 잘 주도하다가도 한 번 흐름을 내주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기 일쑤였다. 아시안컵과 아시안게임, 올림픽 예선과 월드컵 등 벨호가 무너진 대부분의 경기에서는 먼저 리드를 잡고도 역전을 허용하며 뒷심 부족을 극명하게 드러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운이 안 따라준 측면도 있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의 경우, 편파적인 경기일정과 심판의 판정 논란이라는 변수가 크게 작용했다. 또한 파리올림픽 예선은 중국, 북한이라는 아시아 여자축구 강호들과 하필 너무 이른 시기에 만나는 최악의 대진운이 뼈아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벨 감독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축구철학을 구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기회가 있었다. 특유의 고강도 체력훈련과 다양한 대륙별 국가들과의 평가전 등으로 역대 어느 감독보다도 많은 지원을 받았다. 그럼에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다는 것은 감독의 책임이다.
결과가 좋지 않을 때마다 '남탓'을 하며 책임전가를 하는 태도도 문제였다. 8강 진출을 호언장담하던 월드컵에서 정작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되자 "이것이 월드컵이고 한국 여자축구의 현실"이라며 자신이 아닌 한국축구의 한계로 책임을 돌렸다. 아시안게임에서도 대회 일정과 심판 판정의 편파성에 이의를 제기하며 패배의 원인을 외부로 돌렸다.
물론 한국여자축구의 구조적인 한계를 지적하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문제는 성과를 내지 못한 대표팀 감독으로서 자신의 책임을 면피할 때만 레퍼토리로 써먹었다는 것이다. 정작 벨 감독 본인의 전술이나 용병술에 대한 성찰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또한 벨 감독은 미디어 친화적인 이미지로 인하여 그동안 전술적 유연성이 뛰어나거나 선수발굴에 애쓰는 지도자처럼 포장되어 왔다. 그러나 2023년 월드컵 기준으로 대한민국 대표팀의 평균 연령은 28.9세로 본선 32개국 중 최고령이었다. 애초에 벨 감독이 요구하는 고강도 압박과 활동량을 90분 내내 유지할 수 있을 만한 체력이나 선수층이 전혀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몇 년째 선수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자신의 축구를 고집한 것은 필연적인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대한축구협회는 벨 감독까지 지난해까지 두 번째 연장계약을 거쳤고, 당초 임기는 올해 12월 말까지였다. 하지만 파리올림픽 출전에 실패하면서 대표팀은 당분간 출전할 만한 국제대회가 없는 실정이다. 동행을 이어갈 이유가 사라진 축구협회와 벨 감독은 결국 계약을 조기종료하는 데 합의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2024-2025시즌 국제 대회 일정을 발표하면서 정한 6~7월 A매치 기간에서 여자대표팀은 공식 일정이 잡혀있지 않고 아예 소집훈련도 하지 않았다. 여자축구 간판인 지소연은 "시대가 변했는데. 대회가 없어서 A매치를 안 한다는 창피한 일"이라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이로써 한국축구는 남자대표팀에 이어 여자대표팀까지 감독이 공석이 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다. 그나마 남자축구는 대표팀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기대가 높고 9월부터 시작되는 북중미월드컵 3차예선을 앞두고 있어서 조만간 새 감독이 선임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여자축구 대표팀은 언제 새 감독이 선임될지, 앞으로 어떻게 차기 메이저 대회를 준비해나갈지도 방향성이 불투명하다. 5년 가까운 시간동안 외국인 감독까지 영입해가며 투자를 했건만, 과연 한국여자축구에 남은 유산이 무엇인지는 진지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