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토커] 박세리의 효심과 가족애

[카토커] 박세리의 효심과 가족애

촐싹녀 0 65

 


지난 1996년 6월 프로 데뷔전인 금경 크리스찬디올 여자오픈 1라운드를 마친 19세의 엣된 박세리와 마주 앉았다. 경기와 관련된 이런 저런 얘기 끝에 부친 박준철 씨에 대한 질문을 하자 박세리는 갑자기 굵은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렸다.

이유를 묻자 놀랍게도 “제가 반드시 골프로 성공해서 아빠를 배신한 사람들에게 복수할 거에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박세리는 “건축자재업을 하던 부친의 사업이 기울자 매일 찾아오던 친구들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며 “어떻게 인간들이 그럴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1997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Q스쿨을 수석통과한 박세리는 이듬 해인 1998년 맥도날드 LPGA챔피언십과 US여자오픈을 연속 석권하며 IMF한파로 시름에 빠진 국민들에게 희망을 안겼다.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면 시집 보내주마”라고 약속했던 부친 박준철 씨는 우승이 결정되자 그린으로 뛰어나가 딸을 들어올리며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박세리는 한국에서 골프로 벌어들인 돈을 부모에게 절반씩 나눠줬다. 그리고 미국에서 번 돈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따로 모아두었다. 박세리는 선수생활을 할 때는 물론이고 은퇴 후에도 헌신적으로 가족을 돌봤다. 2016년 은퇴한 박세리는 이후 OK저축은행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내건 빅세리 인비테이셔널을 창설했으며 리우 올림픽과 도쿄올림픽 여자골프 국가대표 감독에 잇따라 선임되는 등 골프 레전드로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몇년 전부터 골프계에선 “박세리가 경제적으로 어려워졌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부모는 물론 자신이 모아둔 돈을 몽땅 날렸다는 흉흉한 얘기였다. 어림잡아 박세리가 골프로 벌어들인 돈은 4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런 거금을 바탕으로 부친 박 씨는 대전의 사채시장에서 큰 손 대접을 받기도 했다.

그러다가 박세리 희망재단이 박준철 씨를 사문서 위조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는 뉴스가 터졌다. 이 사건은 이미 지난해 9월 발생한 일이었으나 뒤늦게 세상에 알려졌다. 소문은 사실로 드러났고 지난 18일 박세리는 별도의 기자회견을 열어 저간의 사정을 본인의 입을 통해 알렸다.

박세리는 "가족이기 때문에 (문제가 생겨도) 최선을 다해왔지만, 아버지의 채무 문제는 하나를 해결하면 마치 줄이라도 서 있었던 것처럼 다음 채무 문제가 생기는 악순환의 반복이었다”며 “그러면서 문제가 더 커졌고 지금 상황까지 오게 됐다. 이 사건 이후로는 아버지와 연락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28년 전 프로 데뷔전에서 보인 박세리의 효심은 지금도 여전할 것이다. 박세리는 2016년 은퇴경기를 마친 뒤 "아버지는 내 골프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한 분이다. 심장같은 존재다. 골프를 해야하는 이유와 목표를 알려주셨다. 항상 곁에서 지켜주셔서 감사한 마음 뿐"이라고 했다. 박세리의 성공은 효심과 가족애가 원동력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박세리는 본인까지 벼랑 끝에 선 상황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정면 돌파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박세리가 성격상 맞지 않는 연예계에 둥지를 튼 것도 가족을 위한 승부수였다고 느껴진다. 선수생활을 끝낸 마당에 목돈을 만들 수 있는 건 연예계가 유일했다. 방송을 통해 보여준 '리치 언니' 박세리는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미래의 원했던 모습이었던 셈이다.

박세리는 대한민국의 골프 대중화를 이끈 역사적인 인물이며 한국 골프의 세계화를 이끈 개척자이기도 하다. 박세리로 인해 국민들이 위로와 희망을 얻었으며 대한민국의 골프산업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기자회견 도중 자존심 강한 박세리가 뜨거운 눈물을 흘릴 때 오랜 세월 알고 지낸 기자 입장에서 안타까움을 넘어 애잔함까지 느껴졌다. 이제는 우리가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는 박세리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를 건넬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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