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토커] "주전도 아닌데, 오지 말라고 했었어요"…'역대 4위' 29G 연속안타? 그보다 더 소중했던 부모…
[마이데일리 = 수원 박승환 기자] "오지 말라고 했었다"
롯데 자이언츠 손호영은 19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2024 신한은행 SOL Bank KBO리그 KT 위즈와 팀 간 시즌 7차전 원정 맞대결에 3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해 4타수 1안타 1타점 1득점으로 활약했다.
정말 선수에게는 맞는 유니폼이 있는 듯하다. 손호영은 지난 2020년 신인드래프트 2차 3라운드 전체 23순위로 LG 트윈스의 선택을 받았다. 시카고 컵스 마이너리그 시절에는 이렇다 할 성과를 얻지 못했지만, 보유한 잠재력에서 워낙 고평가를 받고 있었던 만큼 손호영을 지명한 LG도 큰 기대감을 가졌다. 그리고 손호영은 데뷔 첫 시즌 23경기에 출전해 11안타 타율 0.367로 가능성을 드러냈다.
그러나 좋은 흐름은 오래가지 않았다. 부상 등으로 인해 손호영은 2021시즌 1군에서 8경기에 출전하는데 그쳤고, 2022시즌에는 36경기에 나서 19안타 3홈런 14타점 타율 0.257 OPS 0.741로 나쁘지 않은 모습이었으나, 지난해 27경기 출전에 머무르는 등 4시즌을 뛰는 동안 결국 꽃을 피우지 못했다. 이로 인해 손호영은 올해 1군 스프링캠프에도 합류하지 못하는 등 입지가 크게 좁아지게 됐다.
이러한 가운데 롯데와 LG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한동희의 부상으로 인해 주전 3루수를 잃게 된 롯데가 어떻게든 공백을 메우고, 시즌 초반의 부진한 스타트를 만회하기 위해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손호영이라는 즉시전력감이 필요했던 롯데는 150km를 넘나드는 빠른 볼을 뿌리는 것은 물론 병역 문제까지 해결한 사이드암 '파이어볼러' 우강훈이라는 미래의 자원을 내주는 출혈까지 감수했다.
트레이드 당시에는 가타부타 많은 말들이 나왔지만, 손호영의 영입을 결정한 것은 올해 롯데가 내린 최고의 선택으로 이어지고 있다. 손호영의 방망이가 불을 뿜기 시작한 것은 지난 4월 17일 LG 트윈스전이었다. 당시 손호영은 '친정'을 상대로 멀티히트 경기를 펼치더니, 5월 3일 삼성 라이온즈와 맞대결까지 14경기 연속 안타를 터뜨리며 폭주했다. 이후 예상치 못한 햄스트링 부상으로 한 달 정도의 공백기를 갖게 됐으나, 이는 손호영에 타격감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지난 2일 NC 다이노스전에 앞서 1군의 부름을 받은 손호영은 2루타 2개를 포함해 멀티히트를 터뜨리며 화려한 복귀 신고식을 치렀고, 이튿날 KIA 타이거즈를 상대로 홈런포를 폭발시키며 좋은 흐름을 이어갔다. 손호영은 지난 16일 LG전에서 시즌 6호 아치를 그리는 등 멀티히트를 기록하며 27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했다. 경기가 끝난 뒤 손호영은 '5위로 올라섰다'는 말에 "의식하지 않는다. 언제든 깨질 준비가 돼 있다"고 쿨하게 답하며 더그아웃을 빠져나갔다.
기록은 계속됐다. 손호영은 전날(18일) 팀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시즌 7호 홈런을 터뜨리면서 28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 KBO 역대 단독 4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이날도 손호영의 방망이는 불을 뿜었다. 손호영은 단 1안타에 그쳤으나, 그 비중은 매우 컸다. 1회초 무사 1, 3루 찬스에서 KT의 '107억 에이스' 고영표를 상대로 선취점을 뽑아내는 안타였던 까닭. 손호영의 적시타를 시작으로 롯데는 1회부터 9명의 타자가 모두 타석에 들어서며 5점을 뽑아내며 기선제압에 성공, 이후에도 KT 마운드를 두들긴 결과 13-5로 완승을 거뒀다.
이제 손호영의 앞에는 김재환(두산 베어스, 30경기), 박정태(31경기), 박종호(39경기)까지 단 세 명의 선수만 남았다. 특히 향후 세 경기에서 모두 안타를 생산하게 되면 롯데의 프랜차이즈 스타 '탱크' 박정태를 넘어설 수 있게 된다. 29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한 소감은 어떨까. 그는 "정말 1도 상관이 없다. 내일 깨져도 상관이 없다. 안타를 계속 치고 싶은 것은 팀의 승리를 위해서 치고 싶다는 생각"이라고 덤덤한 소감을 밝혔다.
연일 맹타를 휘두르면서 29경기 연속 안타를 만들어냈지만, 손호영에게 들뜬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의 상황에 만족하거나, 안주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 그는 "작년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아닌 내가 무슨 대기록을 한다부터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주변에서는 많이 신경을 써주시는데, 정말 전혀 신경 안 씁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래도 주변에서 신경을 써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은 가득하다. "그건 너무 고맙다. 가끔 이정훈이나 말을 하지, 선수단은 기록에 대해 많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배려해 주는 것 같아서 감사하다"고 미소를 지었다.
손호영은 현재 롯데에선 없어선 안 될 존재다. 그만큼 경기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이날도 1회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면, 고영표에 꽁꽁 묶일 뻔했다. 롯데는 1~2회 득점 이후 3~5회까지 고영표를 상대로 힘도 쓰지 못했기 때문. 손호영은 "다들 전력 분석을 열심히 한 것 같다. 특히 우리팀을 상대로 너무 강해서 집중을 했던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고영표 선배는 워낙 잘 던지는 선배가 아닌가. 실투도 없는 편이라 '하나만 제대로 노리자'는 마음으로 임했다"며 "LG 시절 한 번 상대를 해봤는데, 두 타석을 못 쳐서 그날 2군으로 내려갔었다"고 멋쩍게 웃었다.
이날 경기는 손호영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29경기를 기록했기 때문이 아니다. 바로 부모님이 사실상 처음으로 야구장을 찾았기 때문이다. "본가가 의왕 쪽에 있는데, 그전까지는 부모님을 모시지 못했다. 오지 말라고 했었다. LG 시절 한 번 야구장에 오셨는데, 그때는 마지막에 인사하는 모습만 보셨다. 주전도 아니었고, 나를 보고 싶어서 오셨는데, 다른 선수가 뛰는 모습만 보다가 가시면 부모님 마음이 좋지 않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듯했던 손호영은 이내 "오늘은 당연히 스타팅이라 생각해서 오시라고 했다"고 활짝 웃었다.
첫 타석 이후 안타를 생산하진 못했으나, 아들이 첫 타석부터 안타를 생산하며 KBO 역대 4위 기록을 작성하는 모습은 분명 뿌듯했을 터. 손호영은 "그동안 못 쳤던 것을 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타격감이 언제 떨어질지 모르지만, 이 상황을 즐기고 유지하려고 노력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손호영의 위대한 도전은 20일 경기에서도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