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토커] '3년 224이닝' 후폭풍, 필승조→추격조 강등…자존심 지킨 1승이었다
[스포티비뉴스=잠실, 김민경 기자] "구위가 안 좋다."
올해 이승엽 두산 베어스 감독이 우완 불펜 김명신(31)을 이야기할 때마다 꺼냈던 말이다. 김명신은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3시즌 동안 224이닝을 책임지면서 9승, 36홀드, 1세이브, 평균자책점 3.78을 기록한 대체불가 필승조였다. 2021년 67이닝, 2022년 79⅔이닝, 2023년 79이닝을 던졌으니 후폭풍이 오지 않는 게 이상했다. 해당 기간 두산 불펜 투수 가운데 200이닝을 넘긴 건 김명신이 유일했다. 팔이 잘 지치는 않는 유형의 투수라 자부했던 김명신도 누적된 피로는 무시할 수 없었다. 지난 시즌을 마치자마자 관리를 시작해 스프링캠프도 2군과 함께하며 무리하지 않고 몸을 끌어올리는 작업을 했으나 정해진 운명은 피할 수 없었다.
김명신은 올 시즌 결국 필승조에서 물러났다. 19경기에서 2승1패, 4홀드, 17이닝, 평균자책점 10.59에 그쳤다. 구위가 떨어진 것도 문제지만, 올해부터 자동볼판정시스템(ABS)이 도입되면서 스트라이크존을 갖고 노는 제구로 재미를 봤던 김명신은 손해 아닌 손해를 봤다. 또 올해 두산에 유독 시속 150㎞를 웃도는 강속구를 던지는 파이어볼러들이 많아지면서 김명신이 설 자리는 더더욱 좁아졌다. 올해 필승조로 도약한 최지강, 이병헌, 김택연을 비롯해 이영하, 홍건희 등이 그렇다. 정철원과 김강률도 기본적으로 빠른 공을 장착한 투수들이다. 시속 140㎞ 초중반대로 형성되는 직구를 지닌 김명신은 여기서도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추격조 강등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 감독은 "구속보다는 공의 힘이 떨어져 있고, 변화구 제구가 많이 벗어난다. (김)명신이는 구속보다 강약 조절하면서 제구가 강점인데, 그런 게 아직은 안 나오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김명신은 8일 잠실 KIA 타이거즈전에서 그동안의 울분을 푸는 투구를 펼쳤다. 선발투수 김유성이 ⅓이닝 2실점에 그친 뒤 강판한 가운데 2번째 투수로 김명신이 등판했다. 김명신의 주요 임무는 가능한 긴 이닝을 끌어주는 것이었다. 지난 4일 창원 NC 다이노스전부터 7일 잠실 KIA전까지 두산은 4연승을 질주했으나 이중 3경기에서 연장 혈투를 치른 여파로 가동할 수 있는 불펜 수가 한정적이었다. 필승조도 가능한 3연투를 막으며 관리하고 있다고 하나 붕괴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이병헌(33⅓이닝), 최지강(31이닝) 등 시즌 초반부터 중용됐던 투수들은 이미 빨간불이 들어왔고, 5월부터 본격적으로 중용되기 시작한 홍건희(25⅓이닝) 이영하(27이닝)도 지쳐 있었다.
김명신은 50구를 던지면서 3⅔이닝을 끌어줬다. 지난 1일 잠실 LG 트윈스전 이후 일주일 만에 등판인 만큼 이 정도 버틸 힘은 남아 있었다. 6피안타(1피홈런) 1탈삼진 3실점을 기록했으나 4회까지 버텨주면서 필승조를 한두 명이라도 더 아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줬다.
이닝이 지날수록 김명신은 점점 우리가 알던 모습으로 돌아왔다. 4회초 김도영-나성범-최형우로 이어지는 KIA 강타선을 삼자범퇴로 처리하는 장면이 그 증거였다. 김명신은 김도영을 시속 142㎞짜리 직구로 1루수 파울플라이로 처리한 뒤 나성범과 최형우는 각각 포크볼과 커브를 결정구로 활용해 2루수 땅볼과 3루수 뜬공으로 처리하면서 기분 좋게 임무를 마무리했다.
두산 타선은 김명신의 분투에 보답하듯 4회말 대거 5점을 뽑으면서 6-5로 경기를 뒤집었다. 김명신이 승리투수 요건을 갖춘 순간이었다. 두산은 9회까지 접전을 펼친 끝에 9-8로 신승했고, 김명신은 값진 시즌 2번째 승리를 수확했다. 김명신 이후로도 이영하(1이닝)-김강률(⅓이닝)-이병헌(1이닝 1실점)-최지강(⅔이닝)-박정수(⅔이닝)-이교훈(⅔이닝 2실점)-김택연(⅔이닝) 등 7명이 더 나와야 했으나 김명신이 없었다면 더 끔찍한 상황과 직면할 뻔했다.
두산은 9일 현재 시즌 성적 37승27패2무로 3위에 올라 있다. 2위 KIA 타이거즈(36승26패1무)와는 경기차가 나지 않고, 1위 LG 트윈스(38승25패2무)와는 1.5경기차에 불과하다. 당장 선두권 싸움을 욕심낼 수 있는 상황이긴 하나 선발진은 여전히 불안 요소다. 외국인 원투펀치 라울 알칸타라와 브랜든 와델이 각각 부상으로 이탈했다 돌아온 이후로는 제 기량을 펼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 특히 외국인 투수들이 7~8이닝을 끌어주는 투구를 하지 못하면서 불펜을 계속 끌어 쓰니 벌써 과부하 조짐이 보이고 있다. 국내 투수 가운데는 곽빈을 제외하면 꾸준히 6이닝 이상 투구를 기대할 선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김명신이 롱릴리프로라도 힘을 보태준다면 큰 힘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