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토커] "쟤 남겨" 미생을 살린 한마디→56억 포수를 키웠다, 경험자가 전하는 '달 감독의 남자가 되는 …
김경문 한화 이글스 감독(가운데)이 4일 KT 위즈전에서 1회말 위기를 잘 막아낸 포수 최재훈을 독려하고 있다. /사진=김진경 대기자"쟤 남겨."
육성선수로 가까스로 프로에 합류해 누구보다 절박했던 최재훈(35·한화 이글스)에게 이 한 마디는 야구선수로서 커리어를 바꾸는 큰 힘이 됐다.
16년 후 다시 만난 사령탑의 새 팀 데뷔전에서 첫 승을 안겨주기 위해 더욱 힘을 냈던 이유다.
김경문(66) 감독이 이끄는 한화는 4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KT 위즈와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방문경기에서 최재훈의 3타수 2안타 1볼넷 2타점 1득점 맹타에 힘입어 8-2 대승을 거뒀다.
특별한 인연이다. 2008년 두산에 육성선수로 입단할 때 지휘봉을 잡고 있던 게 김경문 감독이다. 그러나 최재훈은 2008년 1군에서 단 한 경기에 대수비로 나선 게 전부였고 이후 두산은 잠재력을 확인해 일찌감치 경찰야구단에 입대시켰다. 그 사이 김경문 감독이 2011년 중도 사퇴하며 둘의 인연은 짧게 끝난 듯 보였다.
그렇기에 의아한 점이 있었다. 한화 구단 유튜브 채널 이글스TV를 통해 공개된 김경문 감독 취임 후 선수단과 첫 미팅 현장에서 그는 가벼운 인사만 나눈 다른 선수들과 달리 최재훈을 향해 "좀 잘해주라 좀"이라며 이례적인 이야기를 건넨 것이다.
적시타를 날린 최재훈이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사진=김진경 대기자4일 팀 승리를 이끈 최재훈의 입을 통해 김 감독의 특별한 당부에 대한 배경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재훈은 "제가 신고(육성)선수로 입단했을 때 캠프에 같이 갔다. 신고선수와 다른 선수들은 한국으로 돌아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오기가 있어서 뭐라도 보여주고 가야 겠다 생각했고 어깨(송구)를 보여줬다"며 "그랬더니 감독님께서 '쟤 남겨'라고 말씀하셨고 그 소리를 듣고 기분이 좋게 끝까지 남아있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뿐 아니라 당초 육성선수 규정상 6월부터 등록이 가능했는데 김 감독은 최재훈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5월부터 함께 동행시켰다. "감독님께서 보고 싶다고 하셔서 그렇게 됐다. 고마운 감독님"이라고 말했다.
짧지만 육성선수에 불과했던 최재훈에겐 매우 강렬한 인상이었다. 육성선수는 신인 드래프트에서 정규 라운드에 구단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연습생 개념으로 구단이 품는 선수를 말한다. 훈련을 통해 가능성이 보이지 않으면 프로 무대에 발을 들이지 못하고 팀을 떠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렇기에 김경문 감독의 그 한마디로 자신의 선수 인생에 크나 큰 영향을 받은 최재훈으로선 은인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감독이었다. 경찰청에서 급성장한 최재훈은 양의지라는 큰 산에 막혀 백업 포수에 그쳤다. 트레이드 시장에서 많은 팀들이 눈독을 들였던 그는 2017년 결국 트레이드 카드로 한화 유니폼을 입었다. 이후 한화의 주축 포수가 된 그는 2022년을 앞두고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5년 총액 54억원에 한화에 잔류했다. 2008년 데뷔 시즌 때만 해도 꿈도 꿀 수 없었던 일. 다시 만난 프로 첫 감독의 데뷔전이 최재훈에게도 특별할 수 없었다.
은사에게 새 팀에서 첫 승을 안겨주기 위해 더욱 집중해 타격을 했고 느린 발에도 전력을 다해 주루플레이를 펼쳤다. 선발 황준서가 3이닝 만에 물러났지만 불펜 투수들을 잘 리드하며 대승을 이끌어냈다.
최재훈이 팀을 승리로 이끈 뒤 수훈 선수 인터뷰에서 소감을 전하고 있다. /사진=안호근 기자최재훈은 "감독님이 첫 부임해서 저한테 잘하라고 해주셔서 진짜 잘해야 되겠다라는 마음으로 진짜 임했는데 그래서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 같다"며 첫 미팅 때 장면에 대해선 "웃으면서 잘하라고 하셨는데 그게 '너만 잘하면 된다'고 들려서 조금 무서웠다. 그래서 무섭다니까 감독님께서 '내가 때리기라도 했냐'고 하셨고 아니라고 답했다. 감독님께서 편하게 해 주시고 응원도 많이 해주셔서 선수들도 덩달아 힘이 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김 감독도 "변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정작 잘 모르는 어떤 선수들에 비해서 여전히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게 최재훈이다. 그는 "그때는 카리스마가 있으셔서 다가가기가 어렵고 말도 걸기가 힘든 분이었다"며 "지금은 조금 내려놓으신 것 같다. 편하게 해주신다. 예전에도 응원을 해주셨지만 박수도 쳐주시고 더 해주시니 힘이 났다"고 맹타의 비결을 전했다.
전날 고참들과 김 감독의 식사 자리가 있었지만 정작 최재훈은 무서워 제대로 말을 못했다고. 팀의 승리를 이끈 그는 "이제 마음 편안하게 얘기를 한 번 해보려고 한다"며 "고기를 비싼 걸 먹어서 그런지 다 잘하더라. 한 번 더 사달라고 해야겠다"고 웃었다.
김 감독은 선수들이 위축되지 말고 더 활기차게 적극적으로 경기에 임하기를 바랐다. '믿음의 야구'로 대표되는 김 감독은 자신이 추구하는 태도를 보이는 선수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며 성장의 동력을 제공했다.
김 감독으로부터 동기부여를 받아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최재훈은 16년이 지나 베테랑으로서 후배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제가 본 감독님께서는 그라운드에서는 진짜 열심히 뛰어다니고 공수교대 할 때에도 뛰어다니는 등 그런 패기 있는 모습을 좋아하신다"며 "벤치에 있더라도 파이팅을 많이, 크게 외치고 하면 감독님께서 좋게 봐주신다. 그런 부분에서 적극적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육성선수로서 명장을 만났던 그는 감독의 특별 당부까지 주전 포수로 발돋움했다. 커리어 시작을 함께 했던 최재훈이 선수생활 막바지에 제대로 조우한 김경문 감독과 함께 어떤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을지 기대감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