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토커] 디지털 리더십의 전창진, “달라진 세상, 내가 맞춰야 한다”

존잘남 [카토커] 디지털 리더십의 전창진, “달라진 세상, 내가 맞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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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스마 넘치던 전창진 감독이 부드러운 리더십을 포용한 것은 유연한 마음가짐에서 나온 전략적 선택이다.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 옥상 정원에서 취한 포즈에서 우승 감독의 여유가 느껴진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옛날엔 내 의견 셌다. 요즘엔 져준다. 100%다.”

껄껄 웃는 전창진 부산 케이씨씨(KCC) 감독의 얼굴에 21년 프로감독의 시간이 찰나처럼 스친다. 만 30대 나이에 챔피언전 트로피를 들어 올렸고(2003년 원주 TG삼보), 잇따라 원주에서 두번 더 프로농구를 제패했다. 올해는 60대로 통산 4번째 정상에 올라 최연소·최고령 챔피언전 우승 감독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탁월한 지도력과 용병술, 지략은 변함이 없다.

배경엔 생각의 속도가 빠른 전 감독의 변신술이 있다. 그는 “과거에는 운동에 고지식할 정도로 몰입하고, 선수들을 독하게 몰아쳤다. 하지만 옛날 말이다. 지금은 비시즌에 골프도 쳐주고, 밥 사달라고 부르면 나가서 선수에게 풀서비스 한다”고 했다.

전 감독은 전형적인 통제형 지도자였다. 기관차처럼 앞에서 끌고 나가면 선수들은 쫓아와야 했다. 시즌 들어가기 전 태백에서 이뤄진 체력훈련은 혹독하기로 유명했다. 수시 면담을 통해 선수들의 사적인 어려움마저 하나부터 열까지 파악한다. 밀고 당기는 밀당 리더십으로 팀을 틀어쥔다. 비슷한 스타일의 프로야구의 레전드 김성근 감독의 용병술을 주의 깊게 연구한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전 감독은 “야단치고 욕하는 방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아야 했고,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야 했다. 지금은 내 주장보다 선수들의 말을 듣는데, 강양택 코치가 많이 도와줬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한 셈이다”라며 웃었다.

케이씨씨엔 최준용과 허웅 등 개성 강한 선수들이 있다. 이들은 전 감독 앞에서 훈련 방식이나 패턴 플레이와 관련해 이러저러한 제안을 한다. 예전 같으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전 감독은 선수들의 아이디어를 실전에서 활용한다. “잘 되면 팀이 이기는 것이고, 지면 선수들도 반성한다. 그게 팀을 좀 더 경쟁력 있게 만드는 것 같다.”

2023~2024 프로농구 챔피언으로 팀을 이끈 전창진 부산 케이씨씨(KCC) 감독이 최근 한겨레신문을 방문해 활짝 웃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경기 다음날 선수들이 체육관에 모여 부족한 부분을 다듬는 일도 없앴다. 지금은 선수들이 알아서 휴식하고, 체력 관리해 몸을 만들어서 나타난다. 물론 이렇게 선수단이 소통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잦은 선수 부상과 대표팀 차출로 인한 공백도 제동을 걸었다. 그는 “지난 시즌 초반부터 선수들을 짜깁기해 경기에 나가는 형편이었다. 온전히 한 팀으로 훈련한 것은 6라운드 끝날 때쯤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전화위복이라는 말처럼, 치밀한 전 감독은 만족스럽지 못한 정규 5위의 성적을 지렛대로 선수들의 자존심을 자극했다. 달라진 분위기는 플레이오프 들어 완전히 다른 팀을 연출했다.

수원 케이티(kt)와의 챔피언전에서 4승1패로 압승한 것이 방증이다. 1차전 대승 뒤 2차전에서 케이티의 주포 패리스 배스의 신들린듯한 외곽포에 무너지면서 위기를 맞았지만, 전 감독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전 감독은 “배스의 체력이 끝까지 받쳐주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상대 허훈의 득점이 많아질수록 우리에게 나쁠 것은 없었다”고 했는데, 그의 연륜과 승부감각을 보여준다.

시즌 중 부진으로 인한 마음고생도 다 보약이 됐다. 팬들은 “슈퍼 팀 뭐 하느냐”고 힐난했고, 트럭시위까지 벌였다. 자신을 챙겨준 구단에 너무 미안해, 전 감독은 사퇴를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상에서 마침표를 찍었고, 결과로 평가받는 스포츠 세계에서 그는 최후에 웃었다. 안 되는 팀은 실패의 온갖 이유가 노출되지만, 잘 되는 팀은 우승 한 가지로 지복을 누린다.

전창진 감독과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 허웅.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전주 연고지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두고두고 안타깝다. 그는 “전주에는 고정 팬들이 아주 많다. 예전부터 이상민, 추승균, 조성원 등 스타 선수들이 팬 기반을 다졌다. 팬들의 충성도가 매우 높은 곳이었는데, 정말 전주 팬들과 이별하는 것이 너무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첫 우승을 맛봤던 원주 지역에 대해서는 “농구가 도시 브랜드다. 농구의 메카”라고 했고, 부산을 두고는 “잠재력이 큰 곳이다. 이기면 많이 온다”고 평했다.

시즌이 늦게 끝나면서 전 감독은 쉴 틈도 없다. 당장 아시아쿼터 선수 확보를 위해 5월 말 필리핀을 방문해야 하고, 6월 초에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리는 클럽컵 대회에 출전해야 한다.

이미 새 시즌 구상에 들어간 전 감독은 “미래는 점칠 수 없지만, 선수들이 우승이라는 고기를 먹어봤다. 다음 시즌에도 더 집중하고 노력하는 모습으로 부산 팬들에게 기쁨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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