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토커]노르망디 상륙작전 훈련장으로 쓰인 손턴 골프클럽(하)

[카토커]노르망디 상륙작전 훈련장으로 쓰인 손턴 골프클럽(하)

현대티비 0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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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로 잔디를 깎을 수 있는 지역은 전체 코스의 3분의1도 되지 않는다. 곳곳에 스크럽이 보인다.


골프코스는 아름답다. 세상의 모든 골프코스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름답다. 고유한 특징을 가진 골프코스에 등수를 부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코스 평가기관이 랭킹을 매길 때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는 코스가 얼마나 자연적인가 또는 얼마나 자연스러운가 하는 점이다. 로열 카운티다운, 로열 포트러시와 로열 도녹이 높은 점수를 받는 이유도 자연미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골프클럽마다 코스의 자연미를 강조하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어느 골프클럽은 코스 조성 시에 흙을 1㎥도 옮기지 않았다고 말한다. 코스의 형태와 지면 굴곡이 불도저 사용 없이 이뤄졌다면 높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다. 어느 골프클럽은 나무를 자르지 않고, 그 지역에 없던 식물을 새로 심지 않는다. 외부종의 인위적 도입으로 한 지역의 지배종이 갑작스럽게 바뀌는 일이 없도록 신중을 기한다. 어느 골프클럽은 잔디에 물을 주지 않거나 최소한으로 주는 것을 강조한다. 어느 골프클럽은 골프코스에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는 것을 자랑한다. 어느 골프클럽은 코스관리를 위해 기계 사용을 최소화한다. 어느 골프클럽은 친환경 에너지를 만들고, 장비를 전기로 가동하여 탄소배출 제로에 도전한다. 어느 골프클럽은 양과 말이 코스의 풀을 뜯어 먹게 하여 목가적 분위기를 높인다. 초식동물이 풀을 뜯으면 식물 종다양성은 30% 증가한다. 지배종은 웃자라는 경향이 있는데, 초식동물이 지배종 생장을 막아 확장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자연적일수록 더 많은 골퍼의 사랑을 받고, 자연스러울수록 높은 점수를 얻지만, '자연적' '자연스러운'이라는 단어도 생각만큼 명확한 것은 아니다. 골프코스가 태생적으로 자연 파괴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골프클럽의 친환경 정책이 악어의 눈물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골프코스가 태생적으로 자연 파괴적인 것은 아니다. 세상에 자연 친화적 골프코스는 많고, 자연보호라는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은 골프클럽도 존재한다. 그중 한 곳이 잉글랜드 데번에 위치한 손턴 골프클럽이다.



36홀에 400여종 식물이 서식

손턴 골프클럽의 36홀 골프코스는 네 종류의 자연보호 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뛰어난 자연 경관지역(Area of Outstanding Natural Beauty), 특별 과학적 관심지(Site of Special Scientific Interest), 특별 자연보호구역(Special Area of Conservation)과 유네스코 생물권보호구역(UNESCO Biosphere Reserve)이 그것이다. 손턴 골프클럽은 골프코스에서 작업할 때 내추럴 잉글랜드(Natural England)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린, 티샷박스, 페어웨이와 퍼스트컷은 기계로 잔디를 깎을 수 있지만, 이외의 지역은 기계를 동원해 식물을 자를 수 없다. 식물이 씨앗을 떨어트리는 늦가을까지 와일드 러프에서 종다양성을 해치는 작업은 할 수 없다.

그 결과로 400여종의 식물이 와일드 러프에서 서식하고 있다. 지상에 둥지를 트는 댕기물떼새(lapwing), 풀쇠개개비(sedge wabler), 쇠흰턱딱새(whitethroat), 윈챗(whinchat)과 같은 새들이 있다. 댕기물떼새는 손턴 골프클럽의 로고이기도 하다. 그 밖에 각종 거북이, 달팽이, 모래뱀 등도 살고 있다.

손턴 골프코스가 다른 링크스 코스보다 생물 종다양성이 뛰어난 이유는 을 통해 설명된다. 을 보면 해변과의 거리에 따라 모래 형질과 듄(dune·모래언덕)의 형태가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전형적 링크스 코스는 해변을 따라갔다가 돌아오는 구조이기 때문에 홀과 해변의 거리가 일정하다. 손턴과 같이 골프코스가 홀마다 방향을 바꾸고 일부 홀이 경작지까지 깊숙이 들어가는 경우에는 9개의 서로 다른 듄을 만나게 된다. 다른 모래 형질에는 다른 생물이 서식한다.

생물 종다양성을 위한 노력 덕분에 골프공이 러프로 들어가는 것조차 골퍼가 누리는 즐거움의 일부가 된다. 친환경적 노력 덕분에 골퍼는 자연의 신비를 만끽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골프클럽이 제초제, 해충제와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골프코스의 토양이 저마다 다르고, 잔디의 종류가 다르며, 기후가 다르기 때문에 사용이 불가피한 경우가 있다. 그런 면에서 골프코스가 환경을 파괴한다는 주장에는 근거가 있다. 골프코스를 옹호하는 주장 중에는 '골프코스가 농경지에 비해 단위 면적당 농약 사용량이 적기 때문에 골프코스의 환경 파괴적 요소가 과장되어 있다'는 논지도 있다.

그러나 골프코스를 경작지와 비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원래의 골프코스는 해변과 경작지 사이의 듄에 생겨났다. 경작이 불가능한 지역이기 때문에 링크스 코스에서 골퍼와 농부 간 갈등은 일어나지 않았다. 토끼와 꿩을 잡는 사냥꾼과 잦은 마찰을 빚은 것과 대조적이다. 우리나라 인랜드 코스도 경작지를 골프코스로 바꾼 것이라기보다는 산림지역을 코스로 바꾼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골프코스가 경쟁해야 하는 곳은 경작지가 아니라 야생의 자연이다. 손턴 골프클럽의 경우라면 천연 자연과 비교해도 환경적인 면에서 뒤지지 않는다.

사진 오른쪽에 식물이 없는 모래지역이 있다. 이런 지역의 비율을 10%로 유지해야 한다.


내버려두는 것이 자연보호는 아니다

인간이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인간적인 것이 아니듯이 자연이 하고 싶은 대로 놓아두는 것이 자연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생물 종다양성이 급격히 감소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현재 멸종 위기에 처한 종의 수가 2만6000개에 달하는데, 이는 6500만년 전에 발생한 대멸종의 시기와 비슷한 정도라고 한다. 인간의 산업활동이 미친 영향이 크다. 우리가 생물 종다양성을 위해 멸종위기의 동식물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지구 생태계의 균형을 위해서다. 하나의 생물종이 멸종하면 연쇄적으로 다른 생물종도 위협을 받게 된다. 멸종 위기종을 보호함으로써 지구 생태계를 더 안전하고, 인간의 미래를 더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

여러 이유로 생물종은 끊임없이 사라지고 생겨난다. 어느 지역에 번성하는 종이 다른 종과의 경쟁에서 밀리면서 지배종이 변하는 일은 종종 발생한다. 이를 자연천이(natural succession)라고 한다. 어느 멸종이 자연천이의 일부이며, 어느 멸종이 인간 경제활동의 결과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의 산업활동이 왕성하기 이전의 자연상태를 이상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자연의 변화에 어느 정도 제동을 걸기로 결심했다.

'갯벌이 사라진다'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한국해양수산부 발표에 의하면 갯벌의 경제적 가치는 같은 면적 숲 가치의 10배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갯벌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고, 이러한 현상은 지구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인간의 거주 공간이 이전보다 더 바다 쪽으로 가까워지고, 간척사업이 많이 진행되는 것도 갯벌이 사라지는 한 이유다.

갯벌이 사라지는 것과 더불어 일어나는 현상이 듄의 소멸이다. 듄의 소멸은 자연적인 현상이지만 인간의 활동이 그 현상을 가속화시켰다. 첫째, 해변에 주택, 캠핑 단지, 도로, 철도 등을 건설하였고, 해변가에 방파제를 설치하면서 듄 생태계를 파괴했다. 둘째, 해변 여가활동이 증가하면서 듄에서 오프로드 자동차와 모토바이크를 즐기고, 여러 레저시설을 세웠다. 셋째, 대기오염으로 증가한 질소, 암모니아와 이산화황이 땅으로 스며들어 토지가 비옥해져서 산성 모래 토양에서 자라는 식물에 불리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넷째, 사람들은 듄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가시류 나무를 심기도 했다. 정원 쓰레기를 듄 지역에 버리면서 없던 식물종이 등장하고 영역을 넓혀 갔다. 다섯째, 농부들이 화학비료를 과도하게 사용하여 경작지에 인접한 모래 형질이 변하기 시작했다.

링크스 골프코스를 가진 골프클럽이 부여받은 사명 중 하나가 듄 생태계를 지키는 것이다. 듄이 아름답고 골프 치기에 좋기 때문에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다. 듄은 바닷물이 만조나 폭풍 등으로 경작지나 거주지로 침입하는 것을 막아준다. 해수면이 높아지는 환경에서 듄의 역할이 더 중요해지고 있지만, 지난 80년간 듄은 갯벌보다 빠르게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다. 이에 따라 생물 종다양성도 위협받고 있다.

스크럽이 잘 제거된 동코스의 모습. 흰 카트길은 조개껍질 조각으로 조성되어 있다.


듄 생태계의 최대 위협은 스크럽

듄 생태계의 최대 위협 요인 중 하나는 스크럽(scrub)의 번성이다. 스크럽은 한 서식지가 다른 서식지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식물군을 말한다. 듄 생태계의 스크럽은 고스와 쐐기나무를 비롯한 가시류, 참나무, 자작나무, 버드나무 등을 통칭한다.

스크럽이 듄에 생기면, 스크럽은 질소고정(nitrogen fixation)을 일으킨다. 나무뿌리에 있는 박테리아가 공기나 토양에 있는 비활성 질소분자를 암모니아와 같은 질소화합물로 만든다. 스크럽은 척박한 땅에서도 스스로 질소비료를 만들어 생장하는 셈이다. 스크럽은 우월한 생존 능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지배종이 되고, 다양한 허브 식물을 제압한다. 결과적으로 토양의 안정성이 지나치게 높아져 듄의 이동성과 역동성이 크게 감소한다.

로열 도녹 골프코스에 가면 노란 꽃을 피우는 고스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링크스 코스의 상징과 같은 고스는 풍광을 아름답게 하지만 빠르게 생장하여 잔디 지역을 잠식한다. 로열 도녹 골프클럽의 캡틴 데이비드 벨은 자신이 어릴 적에는 고스가 골프코스에서 차지하는 면적이 지금의 10분의1도 되지 않았다고 기억한다. 코스 관리자의 주된 업무 중 하나가 고스의 팽창을 막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골프클럽 그린키퍼의 중요 업무는 그린과 페어웨이가 좋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손턴 골프클럽의 그린키퍼에게도 같은 책무가 있다. 전체 126ha(헥타르) 땅 중에 그린, 티샷 박스, 페어웨이와 길이 차지하는 면적은 43ha에 불과하다. 그들에게는 다른 중요한 책무가 주어졌는데, 그것은 와일드 러프로 조성되어 있는 83ha에서 듄 생태계를 지키는 일이다. 경작지와 가까운 골프코스에서 듄 생태계를 지켜내면, 골프코스를 포함한 전체 듄 지역 1300ha를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다.

이를 위한 우선적 과제는 스크럽을 제거하는 것이다. 스크럽 제거는 대부분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자연보호 지역에서 기계 사용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스크럽을 뿌리째 뽑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때로는 땅 위에 둥지를 트는 새들이 가시나무 덤불 속에 서식하기 때문에 스크럽을 완전히 제거할 수도 없다. 적당량의 스크럽에 관한 기준은 코스 관리자가 판단할 몫이다.

두 번째 과제는 식물이 자라지 않는 민둥 모래지역을 전체 골프코스의 10%로 유지하는 것이다. 모래를 바람에 노출하면 듄의 역동성이 증가한다.

세 번째 과제는 듄 슬랙(Dune Slack·앞 에서 두 번째 듄 슬랙 부위) 지역의 비중을 전체 코스에서 5%까지 늘려 유지하는 것이다. 보통의 링크스 코스는 워터해저드 지역을 되도록 없애려고 하지만, 손턴 골프클럽은 종다양성을 위해 물을 담고 있는 지역을 일정하게 가져가려고 한다.

손턴 골프클럽의 동코스는 세계 100대 골프코스 중 95위에 선정되었다. 골프코스를 평가하는 데에 있어 역사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그러나 노르망디 상륙작전 훈련장이었다는 사실은 골프 외적인 역사로 평가에 반영되지 않는다. 수백 명에 달하는 골프코스 평가자가 복잡한 듄 생태계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은 단순히 유네스코 생물권보존지역이라는 사실만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듄 생태계를 충분히 이해하게 된다면, 그들의 평가가 얼마나 박한 것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골프코스와 자연의 긴장 관계를 고민하는 골퍼라면 손턴 골프클럽의 동코스와 서코스는 반드시 플레이해 보아야 할 코스다.

아름다운 골프코스로 동코스에 진을, 서코스에 선을 달아 주고 싶다. 그러고 나서 로열 카운티다운, 로열 포트러시와 로열 도녹 중 어느 코스에 미를 줄지 고민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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