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토커]골프·엄마·행복…안선주의 속사정
현대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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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06:46
2022년, 안선주는 조용히 KLPGA투어 국내 개막전 출전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내가 아는 그 안선주가 맞나?' 하는 반응도 잠시, 그녀의 복귀를 반기는 사람도 있는 반면 일본에 있어야 할 선수가 왜 한국에서 뛰냐는 비판적인 시선도 있었다. 자신을 향한 목소리를 모두 묵묵히 감내한 안선주는 이제 KLPGA투어 복귀 3년 차를 맞이했다. 어느덧 프로 데뷔 19년 차 베테랑. 살얼음판 같은 경쟁 속에서 인생의 절반 이상을 보낸 안선주는 말한다. "만년 2인자였던 나지만 이제야 조금 길이 보인다."
■ KLPGA투어에 복귀하고 3년째다. 이제 젊은 후배들과 경쟁하는 건 적응됐을까?
여전히 조금씩 녹아드는 중이다. 오래전에 선배들이 우리를 보면 "너희 정말 골프 잘한다"고 항상 말했는데, 이젠 내가 똑같이 후배들에게 그러고 있다. 젊은 친구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고, 그 시기를 거쳐온 나 역시 대단한 것 같다. 그런 게 새롭기도 하다.
■ 처음 투어에 복귀했을 때를 떠올려보자. 기대나 설렘, 걱정 등 만감이 교차했을 것 같다.
기대나 설렘은 없었고 걱정이 제일 컸다. 과연 젊은 후배들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3년이 지난 지금은 '이 친구들에게 뒤처지지 않게 더 노력해야겠다' 하는 생각밖에 없다. 또 후배들과 경쟁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예전에는 경쟁하다 보면 다 꼴 보기 싫었다. 근데 지금 후배들을 보면 뭘 해도 귀엽다. (장)하나도 나를 너무 잘 챙겨주고, (박)현경이도 내가 대회장에서 혼자 저녁을 먹을 것 같으면 먼저 연락해서 "언니, 같이 식사할까요?" 하고 물어본다. 그런 마음이 정말 고맙다.
■ 젊은 선수들이 활약하는 걸 보면 옛날 생각도 날 것 같다.
내가 한창 투어 활동을 하던 시기를 '춘추전국시대'라고 하지 않았나. 절대 강자 없이 잘하는 선수가 몰려 있었다. 신지애, 이보미, 김하늘, 최나연, 유소연, 박희영, 서희경…. 예전에 비하면 지금은 많은 선수가 우승 경쟁을 한다. 그만큼 레벨이 많이 높아졌다는 얘기다. 전 세계적으로 어떤 투어든 다 레벨이 올라가서 예전처럼 한국 선수가 휩쓰는 것은 어렵겠지만, 그래도 지금 후배들에게 어떤 방해 요소만 없다면 우리나라 골프의 장래는 여전히 밝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 방해 요소라면?
부모님?(웃음) 어른들 말이다. 부모님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내게는 부모님이 방해 요소가 맞았다. 나는 아빠로부터 독립하고 더 잘된 케이스 아닌가. 부모님이 꼭 필요한 선수도 있겠지만, 나는 독립한 후 더 자유로워졌다. 부모에게서 독립하면 스스로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진다. 빨래도 내가 해야 하고 짐도 들어야 하고. 그렇지만 독립하면 오히려 연습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는다. 부담감이 크기 때문이다. 힘들 때는 '아빠를 다시 불러야 하나? 엄마한테 와달라고 할까?' 하는 생각이 분명히 든다. 나는 그런 말을 하기 싫어서 정말 독한 마음을 먹고 열심히 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도 상황 판단을 잘하라고 말한다. 나의 경우 이제 남편도 대회장에 오지 않는다.
■ 프로에 데뷔하고 19년이 흘렀다. 한국과 일본에서 우승도 했지만, 쌍둥이 엄마가 되는 등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한 번도 골프 선수로서 행복했던 적이 없다. 지난 시간은 내게 너무 불쌍한 세월이었다. 성적에만 연연하며 살았다. 이제는 내 행복을 찾아도 되지 않을까? 골프를 그만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힘든 기억보다는 행복하게 마무리하고 싶어서 나만의 행복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물론 아이들을 봐주시는 엄마에겐 정말 죄송하다.
■ 선수로서 마음가짐이 달라진 거라고 보면 될까?
맞다. 선수 생활 초창기에는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부담감, 결혼하고 아이들이 생긴 후에는 식구가 늘었다는 부담이 또 생겼다. 그래서 많이 힘들었지만 다 내려놓으니 지금은 내 행복을 조금씩 찾아가는 느낌이다. '행복 바이러스를 늘리면 골프 경기에서도 더 나은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행복해지려고 했다. 그 결과가 골프에서 드러나고 있어서 좋다.
■ 그렇다면 다행이다. 과거의 안선주처럼 20대의 젊은 선수들을 만나면 매주 치르는 경쟁에 지치고 힘들어하는 경우가 정말 많다.
냉정하게 말하면 그 나이 때는 어쩔 수 없다. 나도 20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투어에 나섰다. 출산 직후에도 나갔다. 아직도 골프가 안 되면 화난다. 완벽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스스로 다그쳐왔기 때문에 지금도 완벽에 대한 강박이 있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는데 완벽을 추구한다. 내가 서른일곱 살이 돼서야 이런 걸 깨달았다. 우승하면 마냥 좋을 것 같나? 그렇지도 않다. 우승 후에 찾아오는 공허함이 정말 크다. 사람들이 축하해주고 메시지도 몇백 개씩 와 있지만, 이런 걸 뒤로하고 막상 자려고 누우면 허전함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그래서 우승한 날 방에서 남몰래 운 적도 많다.
■ 엄마 골퍼로서 힘든 점은 무엇일까?
나보다는 친정엄마가 너무 힘들다. 그래도 너무 감사하게 "네가 행복하면 된다"고 하신다. 내가 요즘 행복하다고 하니 엄마는 힘들어도 딸을 위해 참아주신다. 부모님은 고지식한 면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내가 골프만 잘하면 된다. 나는 성적으로 보여주면 된다.
■ 그렇다면 여자 골프 선수로서의 삶은 어떤 것 같나?
너무 불쌍하다. 골프 선수 안선주의 인생은 누가 봐도 좋아 보인다. 돈도 많이 벌고, 어딜 가도 '프로님' 소리를 듣고, 내가 타고 싶은 차도 타고, 하고 싶은 것도 하고. 특히 나는 한국에서든 일본에서든 우승도 해봤다. 그렇지만 인간 안선주로서는 한 번도 내 인생을 내 맘대로 살아본 적이 없다. 부모님도 내게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지 않냐"고 한다. 나는 부모님께 반문한다. 내가 원하는 게 뭔데? 쳇바퀴 같은 생활에 평범한 삶이 너무 어렵다. 친구들과 앉아서 수다 떨고, 영화 보고, 여행 가고, 그런 일상이 없지 않나.
■ 예전 인터뷰를 보니 서른에 은퇴하겠다고 했다. 근데 벌써 서른하고도 7년이 지났다.
그때는 내가 경솔했다.(웃음) 내 이름이 일본어로 '산주'인데, 이게 '30'이라는 발음과 비슷하다. 그래서 의미 부여를 하다가 '나는 서른에 은퇴하겠다!' 하는 나름 폭탄 발언이었다. 그때는 골프가 너무너무 싫었다. 한국에서는 못한 신인왕과 상금왕을 일본에서 해냈으니 한풀이를 다 한 상태였다. 거기다 부모님과 마찰도 있어서 '나는 돈 버는 기계야? 골프만 치는 기계인가?' 이런 반발심이 생겼는데, 남편까지 똑같은 소리를 하더라. '와, 아니 나도 좀 편하게 살자.' 이런 것도 허락하지 않는 주변 사람들이 야속했다. 그래서 일찍 관둔다고 했는데 지금 보니 내가 제일 오래 하고 있다. 그래서 '함부로 입방정 떨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워낙 변덕이 심하다. 나도 내가 변덕이 심한 걸 안다. 그렇기에 이제는 섣불리 관두겠다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 한국 여자 골프 선수들은 보통 서른이 되면 은퇴를 고민하더라. 남자 선수나 해외 선수들보다 빠른 편인데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우리나라 여자 골퍼들의 선수 생명이 짧긴 하다. 남자 선수들은 군대에 가면 공백기를 갖지 않나. 물론 군대가 너무 힘들긴 하지만 말이다. 근데 여자 선수들은 어릴 때부터 내내 부모에게 시달린다. 점점 목표 의식도 잃고 의욕도 없어진다. 그러니 나이가 들면서 뭔가 더 해내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 같다. 또 내 경험상으로 여자는 스물아홉에서 서른으로 넘어갈 때 몸 컨디션이 좀 바뀐다. 그런 상황에 얼마나 빨리 적응하느냐가 삶의 질을 좌우하는 것 같다. 나도 이때가 제일 힘들었다.
■ 신지애는 최근 인터뷰에서 은퇴 시점에 대해 "몸이 허락하는 데까지 하고 싶은데, 그게 아마 마흔쯤이지 않을까?"라고 아리송하게 얘기했다.
아, 격하게 공감한다. 지애나 나나 골프하기 좋은 피지컬은 아니다. 키가 작으니까 남들보다 더 많은 근육을 써야 하고,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한다. 나 역시 디스크 수술을 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고 생각이 바뀐 지 얼마 안 됐다. 나는 올해 무조건 그만두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내가 이렇게 행복하게 골프를 한다면 후배들과 경쟁할 수 있는 한 계속해보고 싶다. 근데 그게 아마 마흔이지 않을까 싶다. 내년 또는 길어야 내후년이다. 내가 살을 뺀 후 몸이 더 좋아졌다. 이 몸을 유지한다면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 말 나온 김에 물어보고 싶다. 살을 얼마나 뺀 건가?
인바디로 쟀을 때 딱 22.5kg 빠졌는데 근육은 3kg밖에 안 빠졌다. 거의 체지방만 뺀 거다. 진짜 지독하게 다이어트를 했다. 한 달 동안 탄수화물은 입에도 안 댔다. 운동도 정말 많이 했다. 내 인생에 이렇게 운동을 많이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했다. 극도의 예민함을 넘어섰다. 주변에서 "그냥 밥 먹으면 안 돼?" 하더라. 이렇게 예민하게 굴 거면 먹으라고. 그래도 '안 돼, 할 거야' 하고 버텼다. 지금도 아침과 점심은 잘 챙겨 먹지만 저녁에는 탄수화물을 먹지 않는다.
■ 보통 체격이 바뀌면 스윙이 바뀐다고 하지 않나. 스윙의 변화를 이겨내는 것도 어려웠을 것 같다.
아직 적응 중이긴 하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어드레스 때 간격을 멀찍이 서곤 했는데 지금은 배가 들어가니 간격이 애매했다. 그래도 적응하고 나니 훨씬 좋다. 걷는 것도 편하고, 지치는 것도 덜하다.
■ 골프에 대한 부담감, 엄마로서의 책임감, 시즌 준비, 다이어트까지 모두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아이들이라 말하고 싶지는 않다. 가정을 책임지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그보다 올해는 정말 행복하게 골프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 힘들게 뺀 살을 다시 찌우고 싶지 않았고, 어린 후배들 사이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했다.
■ 지금까지 쌓은 커리어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받을 만한 삶이고, 현실에 안주할 법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목표를 세우고 달려나가는 이유가 있을까?
한때 목표가 없었던 적이 있다. 2018년 일본에서 상금왕을 하고 2019년에 목표 의식이 사라졌다. 그때 목 디스크 때문에 몸이 워낙 안 좋기도 했다. 그러니 되게 나태해졌다. 지금은 그때보다 목표 의식이 더 뚜렷하다. '행복하게 골프를 하면서 우승 트로피까지 들어보자!' 주변에서는 엄마로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면 좋겠다고 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건 나를 위해, 타인과 가족이 아닌 나를 위한 골프를 한번 행복하게 해보자는 목표가 정말 크다.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 그렇다면 안선주만의 '롱런'할 수 있는 비결은?
골프가 너무 싫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골프를 사랑한다. 그래서 여전히 후배들과 경쟁하고 있는 것 같다. 골프는 애증 관계다. 부모와 자식 같다. 내가 아빠한테 느끼는 그런 감정인가? 안 보면 보고 싶고, 보고 있으면 그만 보고 싶고. 그래도 마음만은 한없이 사랑하는.
■ 만약 아이들이 커서 골프를 하고 싶다고 한다면 선수로 키울 생각이 있나?
나는 안 시키고 싶다. 그 힘든 과정을 알기 때문에. 만약 나를 넘을 수 있다면 시키겠다. '엄마 안선주'는 되고 싶지만, 내 아이들이 '안선주의 자식'으로 불리는 건 원치 않는다. 너무 스트레스라는 걸 안다. 찰리 우즈도 '타이거 우즈의 아들'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지 않나. 너무 안쓰럽다. 아버지의 그림자 안에서 얼마나 시련이 클까? 나는 내 아이들이 그런 시련을 겪지 않길 바란다.
■ 정리하자면 올해 안선주의 목표는 '행복'이다. 이를 위해 수반돼야 할 과제가 있다면?
일단 주변을 다 쳐냈다.(웃음) 나는 독립적인 성격이다. 뭐든지 혼자하고 싶어 하는 스타일이다. 나는 혼밥도 싫지 않다. 고깃집에 혼자 가서 고기 구워 먹고 올 수도 있다. 혼자서도 충분히 잘할 수 있는데, 그동안 "너는 혼자서 못해" 이런 소리를 들으면서 정신이 피폐해졌다. 그래서 혼자 다니는 지금이 좋다.
■ 올해 안선주의 관전 포인트는?
후배들처럼 공을 멀리 보내진 못한다. 비거리도 30~40m씩 차이 나니까 거의 포기했다. 그래도 어린 친구들에 비해 내가 조금은 더 노련하지 않을까? 또 그동안 주변에서 "웃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도통 안 웃으니까. 왜냐하면 나는 정말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골프를 잘해야 했고, 우승도 많이 해야 했고, 돈도 많이 벌어야 했다. 웃을 여유가 없었다. 앞으로는 "잘 웃네", "예전에 TV에서 보던 모습이랑 다르네"라는 소리를 듣는 내 모습을 기대하시길 바란다.
■ KLPGA투어에 복귀하고 3년째다. 이제 젊은 후배들과 경쟁하는 건 적응됐을까?
여전히 조금씩 녹아드는 중이다. 오래전에 선배들이 우리를 보면 "너희 정말 골프 잘한다"고 항상 말했는데, 이젠 내가 똑같이 후배들에게 그러고 있다. 젊은 친구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고, 그 시기를 거쳐온 나 역시 대단한 것 같다. 그런 게 새롭기도 하다.
■ 처음 투어에 복귀했을 때를 떠올려보자. 기대나 설렘, 걱정 등 만감이 교차했을 것 같다.
기대나 설렘은 없었고 걱정이 제일 컸다. 과연 젊은 후배들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3년이 지난 지금은 '이 친구들에게 뒤처지지 않게 더 노력해야겠다' 하는 생각밖에 없다. 또 후배들과 경쟁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예전에는 경쟁하다 보면 다 꼴 보기 싫었다. 근데 지금 후배들을 보면 뭘 해도 귀엽다. (장)하나도 나를 너무 잘 챙겨주고, (박)현경이도 내가 대회장에서 혼자 저녁을 먹을 것 같으면 먼저 연락해서 "언니, 같이 식사할까요?" 하고 물어본다. 그런 마음이 정말 고맙다.
■ 젊은 선수들이 활약하는 걸 보면 옛날 생각도 날 것 같다.
내가 한창 투어 활동을 하던 시기를 '춘추전국시대'라고 하지 않았나. 절대 강자 없이 잘하는 선수가 몰려 있었다. 신지애, 이보미, 김하늘, 최나연, 유소연, 박희영, 서희경…. 예전에 비하면 지금은 많은 선수가 우승 경쟁을 한다. 그만큼 레벨이 많이 높아졌다는 얘기다. 전 세계적으로 어떤 투어든 다 레벨이 올라가서 예전처럼 한국 선수가 휩쓰는 것은 어렵겠지만, 그래도 지금 후배들에게 어떤 방해 요소만 없다면 우리나라 골프의 장래는 여전히 밝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 방해 요소라면?
부모님?(웃음) 어른들 말이다. 부모님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내게는 부모님이 방해 요소가 맞았다. 나는 아빠로부터 독립하고 더 잘된 케이스 아닌가. 부모님이 꼭 필요한 선수도 있겠지만, 나는 독립한 후 더 자유로워졌다. 부모에게서 독립하면 스스로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진다. 빨래도 내가 해야 하고 짐도 들어야 하고. 그렇지만 독립하면 오히려 연습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는다. 부담감이 크기 때문이다. 힘들 때는 '아빠를 다시 불러야 하나? 엄마한테 와달라고 할까?' 하는 생각이 분명히 든다. 나는 그런 말을 하기 싫어서 정말 독한 마음을 먹고 열심히 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도 상황 판단을 잘하라고 말한다. 나의 경우 이제 남편도 대회장에 오지 않는다.
■ 프로에 데뷔하고 19년이 흘렀다. 한국과 일본에서 우승도 했지만, 쌍둥이 엄마가 되는 등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한 번도 골프 선수로서 행복했던 적이 없다. 지난 시간은 내게 너무 불쌍한 세월이었다. 성적에만 연연하며 살았다. 이제는 내 행복을 찾아도 되지 않을까? 골프를 그만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힘든 기억보다는 행복하게 마무리하고 싶어서 나만의 행복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물론 아이들을 봐주시는 엄마에겐 정말 죄송하다.
■ 선수로서 마음가짐이 달라진 거라고 보면 될까?
맞다. 선수 생활 초창기에는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부담감, 결혼하고 아이들이 생긴 후에는 식구가 늘었다는 부담이 또 생겼다. 그래서 많이 힘들었지만 다 내려놓으니 지금은 내 행복을 조금씩 찾아가는 느낌이다. '행복 바이러스를 늘리면 골프 경기에서도 더 나은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행복해지려고 했다. 그 결과가 골프에서 드러나고 있어서 좋다.
■ 그렇다면 다행이다. 과거의 안선주처럼 20대의 젊은 선수들을 만나면 매주 치르는 경쟁에 지치고 힘들어하는 경우가 정말 많다.
냉정하게 말하면 그 나이 때는 어쩔 수 없다. 나도 20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투어에 나섰다. 출산 직후에도 나갔다. 아직도 골프가 안 되면 화난다. 완벽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스스로 다그쳐왔기 때문에 지금도 완벽에 대한 강박이 있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는데 완벽을 추구한다. 내가 서른일곱 살이 돼서야 이런 걸 깨달았다. 우승하면 마냥 좋을 것 같나? 그렇지도 않다. 우승 후에 찾아오는 공허함이 정말 크다. 사람들이 축하해주고 메시지도 몇백 개씩 와 있지만, 이런 걸 뒤로하고 막상 자려고 누우면 허전함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그래서 우승한 날 방에서 남몰래 운 적도 많다.
■ 엄마 골퍼로서 힘든 점은 무엇일까?
나보다는 친정엄마가 너무 힘들다. 그래도 너무 감사하게 "네가 행복하면 된다"고 하신다. 내가 요즘 행복하다고 하니 엄마는 힘들어도 딸을 위해 참아주신다. 부모님은 고지식한 면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내가 골프만 잘하면 된다. 나는 성적으로 보여주면 된다.
■ 그렇다면 여자 골프 선수로서의 삶은 어떤 것 같나?
너무 불쌍하다. 골프 선수 안선주의 인생은 누가 봐도 좋아 보인다. 돈도 많이 벌고, 어딜 가도 '프로님' 소리를 듣고, 내가 타고 싶은 차도 타고, 하고 싶은 것도 하고. 특히 나는 한국에서든 일본에서든 우승도 해봤다. 그렇지만 인간 안선주로서는 한 번도 내 인생을 내 맘대로 살아본 적이 없다. 부모님도 내게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지 않냐"고 한다. 나는 부모님께 반문한다. 내가 원하는 게 뭔데? 쳇바퀴 같은 생활에 평범한 삶이 너무 어렵다. 친구들과 앉아서 수다 떨고, 영화 보고, 여행 가고, 그런 일상이 없지 않나.
■ 예전 인터뷰를 보니 서른에 은퇴하겠다고 했다. 근데 벌써 서른하고도 7년이 지났다.
그때는 내가 경솔했다.(웃음) 내 이름이 일본어로 '산주'인데, 이게 '30'이라는 발음과 비슷하다. 그래서 의미 부여를 하다가 '나는 서른에 은퇴하겠다!' 하는 나름 폭탄 발언이었다. 그때는 골프가 너무너무 싫었다. 한국에서는 못한 신인왕과 상금왕을 일본에서 해냈으니 한풀이를 다 한 상태였다. 거기다 부모님과 마찰도 있어서 '나는 돈 버는 기계야? 골프만 치는 기계인가?' 이런 반발심이 생겼는데, 남편까지 똑같은 소리를 하더라. '와, 아니 나도 좀 편하게 살자.' 이런 것도 허락하지 않는 주변 사람들이 야속했다. 그래서 일찍 관둔다고 했는데 지금 보니 내가 제일 오래 하고 있다. 그래서 '함부로 입방정 떨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워낙 변덕이 심하다. 나도 내가 변덕이 심한 걸 안다. 그렇기에 이제는 섣불리 관두겠다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 한국 여자 골프 선수들은 보통 서른이 되면 은퇴를 고민하더라. 남자 선수나 해외 선수들보다 빠른 편인데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우리나라 여자 골퍼들의 선수 생명이 짧긴 하다. 남자 선수들은 군대에 가면 공백기를 갖지 않나. 물론 군대가 너무 힘들긴 하지만 말이다. 근데 여자 선수들은 어릴 때부터 내내 부모에게 시달린다. 점점 목표 의식도 잃고 의욕도 없어진다. 그러니 나이가 들면서 뭔가 더 해내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 같다. 또 내 경험상으로 여자는 스물아홉에서 서른으로 넘어갈 때 몸 컨디션이 좀 바뀐다. 그런 상황에 얼마나 빨리 적응하느냐가 삶의 질을 좌우하는 것 같다. 나도 이때가 제일 힘들었다.
■ 신지애는 최근 인터뷰에서 은퇴 시점에 대해 "몸이 허락하는 데까지 하고 싶은데, 그게 아마 마흔쯤이지 않을까?"라고 아리송하게 얘기했다.
아, 격하게 공감한다. 지애나 나나 골프하기 좋은 피지컬은 아니다. 키가 작으니까 남들보다 더 많은 근육을 써야 하고,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한다. 나 역시 디스크 수술을 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고 생각이 바뀐 지 얼마 안 됐다. 나는 올해 무조건 그만두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내가 이렇게 행복하게 골프를 한다면 후배들과 경쟁할 수 있는 한 계속해보고 싶다. 근데 그게 아마 마흔이지 않을까 싶다. 내년 또는 길어야 내후년이다. 내가 살을 뺀 후 몸이 더 좋아졌다. 이 몸을 유지한다면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 말 나온 김에 물어보고 싶다. 살을 얼마나 뺀 건가?
인바디로 쟀을 때 딱 22.5kg 빠졌는데 근육은 3kg밖에 안 빠졌다. 거의 체지방만 뺀 거다. 진짜 지독하게 다이어트를 했다. 한 달 동안 탄수화물은 입에도 안 댔다. 운동도 정말 많이 했다. 내 인생에 이렇게 운동을 많이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했다. 극도의 예민함을 넘어섰다. 주변에서 "그냥 밥 먹으면 안 돼?" 하더라. 이렇게 예민하게 굴 거면 먹으라고. 그래도 '안 돼, 할 거야' 하고 버텼다. 지금도 아침과 점심은 잘 챙겨 먹지만 저녁에는 탄수화물을 먹지 않는다.
■ 보통 체격이 바뀌면 스윙이 바뀐다고 하지 않나. 스윙의 변화를 이겨내는 것도 어려웠을 것 같다.
아직 적응 중이긴 하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어드레스 때 간격을 멀찍이 서곤 했는데 지금은 배가 들어가니 간격이 애매했다. 그래도 적응하고 나니 훨씬 좋다. 걷는 것도 편하고, 지치는 것도 덜하다.
■ 골프에 대한 부담감, 엄마로서의 책임감, 시즌 준비, 다이어트까지 모두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아이들이라 말하고 싶지는 않다. 가정을 책임지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그보다 올해는 정말 행복하게 골프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 힘들게 뺀 살을 다시 찌우고 싶지 않았고, 어린 후배들 사이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했다.
■ 지금까지 쌓은 커리어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받을 만한 삶이고, 현실에 안주할 법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목표를 세우고 달려나가는 이유가 있을까?
한때 목표가 없었던 적이 있다. 2018년 일본에서 상금왕을 하고 2019년에 목표 의식이 사라졌다. 그때 목 디스크 때문에 몸이 워낙 안 좋기도 했다. 그러니 되게 나태해졌다. 지금은 그때보다 목표 의식이 더 뚜렷하다. '행복하게 골프를 하면서 우승 트로피까지 들어보자!' 주변에서는 엄마로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면 좋겠다고 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건 나를 위해, 타인과 가족이 아닌 나를 위한 골프를 한번 행복하게 해보자는 목표가 정말 크다.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 그렇다면 안선주만의 '롱런'할 수 있는 비결은?
골프가 너무 싫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골프를 사랑한다. 그래서 여전히 후배들과 경쟁하고 있는 것 같다. 골프는 애증 관계다. 부모와 자식 같다. 내가 아빠한테 느끼는 그런 감정인가? 안 보면 보고 싶고, 보고 있으면 그만 보고 싶고. 그래도 마음만은 한없이 사랑하는.
■ 만약 아이들이 커서 골프를 하고 싶다고 한다면 선수로 키울 생각이 있나?
나는 안 시키고 싶다. 그 힘든 과정을 알기 때문에. 만약 나를 넘을 수 있다면 시키겠다. '엄마 안선주'는 되고 싶지만, 내 아이들이 '안선주의 자식'으로 불리는 건 원치 않는다. 너무 스트레스라는 걸 안다. 찰리 우즈도 '타이거 우즈의 아들'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지 않나. 너무 안쓰럽다. 아버지의 그림자 안에서 얼마나 시련이 클까? 나는 내 아이들이 그런 시련을 겪지 않길 바란다.
■ 정리하자면 올해 안선주의 목표는 '행복'이다. 이를 위해 수반돼야 할 과제가 있다면?
일단 주변을 다 쳐냈다.(웃음) 나는 독립적인 성격이다. 뭐든지 혼자하고 싶어 하는 스타일이다. 나는 혼밥도 싫지 않다. 고깃집에 혼자 가서 고기 구워 먹고 올 수도 있다. 혼자서도 충분히 잘할 수 있는데, 그동안 "너는 혼자서 못해" 이런 소리를 들으면서 정신이 피폐해졌다. 그래서 혼자 다니는 지금이 좋다.
■ 올해 안선주의 관전 포인트는?
후배들처럼 공을 멀리 보내진 못한다. 비거리도 30~40m씩 차이 나니까 거의 포기했다. 그래도 어린 친구들에 비해 내가 조금은 더 노련하지 않을까? 또 그동안 주변에서 "웃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도통 안 웃으니까. 왜냐하면 나는 정말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골프를 잘해야 했고, 우승도 많이 해야 했고, 돈도 많이 벌어야 했다. 웃을 여유가 없었다. 앞으로는 "잘 웃네", "예전에 TV에서 보던 모습이랑 다르네"라는 소리를 듣는 내 모습을 기대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