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토커] '150억이 농담 아닐지도' 포수 강백호, 심상치 않다... 우승후보 상대 '4안타' 압도적 존재감
"(강)백호를 처음부터 포수 시켰으면 150억 원 선수가 되지 않았겠어요?"
4일 수원 케이티 위즈파크에서 펼쳐진 KIA 타이거즈전은 그 전날(3일) 이강철 KT 위즈 감독의 농담이 결코 농담으로만 들리지 않았던 경기였다.
KT는 4일 수원시 장안구에 위치한 수원KT위즈파크에서 펼쳐진 2024 신한은행 SOL Bank KBO 리그 홈 경기(총 1만 722명 입장)에서 KIA에 3-6으로 패했다.
선발 윌리엄 쿠에바스가 6이닝 동안 108구를 던지며 10피안타 2볼넷 5탈삼진 5실점 역투를 펼쳤다. 타선이 7안타 빈타에 시달린 것이 아쉬웠다. KIA는 ABS(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Automatic Ball-Strike System)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선발 이의리가 5이닝 6피안타(1피홈런) 2볼넷 7탈삼진 2실점 탈삼진 쇼로 맞불을 놨다. 타선도 김태군 외에는 전원 안타를 기록, 12안타로 쉴 새 없이 KT를 몰아붙였고 장현식(1⅓이닝)-최지민(⅔이닝)-전상현(1이닝)-정해영(1이닝)으로 이어지는 불펜은 철벽과 같았다. KIA는 KT에 위닝 시리즈를 달성하며 시즌 7승 2패로 리그 2위를 유지했다. KT는 2승 9패로 여전히 꼴찌를 벗어나지 못했다.
우승 후보라 불릴 만한 경기력이었지만, KIA도 경기 내내 단 한 명의 타자 때문에 끝날 때까지 긴장감을 놓지 못했다. KT 7안타 중 절반이 넘는 4안타를 홀로 친 강백호(25) 때문이다. 이날 4번 및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한 강백호는 4타수 4안타(1홈런) 2타점 2득점을 기록했다.
일당백의 압도적인 존재감이었다. 강백호는 KT가 0-3으로 뒤진 2회 말 첫 타석에서 바깥쪽으로 달아나는 이의리의 슬라이더를 밀어 쳐 좌측 담장 바로 앞에 떨어지는 2루타를 때려냈다. 김민혁의 적시타 때 홈을 밟았고 이후 KT의 모든 득점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백미는 4회 초 두 번째 타석이었다. KT가 1-3으로 뒤진 4회 초 선두타자로 나서 몸쪽으로 빠르게 파고드는 이의리의 시속 143㎞ 빠른 볼을 그대로 후려쳐 우측 담장 밖으로 날려버렸다. 비거리 135m의 시즌 2호 포였다. 5회 말에는 바깥쪽으로 낮게 떨어지는 슬라이더를 기술적으로 걷어 올려 외야 중앙으로 향하는 타구를 만들었다. 그조차도 빨라 유격수 박찬호가 다이빙 캐치로 잡는 데 만족해야 했다. KT가 2-6으로 뒤진 7회 말 2사 1, 2루에서는 최지민의 초구 슬라이더를 가볍게 당겨쳐 우전 1타점 적시타로 연결했다. 4안타 경기를 완성하는 순간이었다.
8회부터는 포수 마스크를 쓰며 홈플레이트 뒤에서 심상치 않은 존재감을 과시했다. 8회 주권, 9회 이선우와 호흡을 맞추며 김선빈을 삼진으로 잡아낸 것을 포함해 2이닝을 실점 없이 막았다. 9회 초 안타로 출루한 박찬호의 도루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악송구로 1사 3루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김도영과 소크라테스 브리토를 땅볼로 돌려세워 이닝을 끝냈다.
이강철 KT 감독이 장기적으로 그리는 구상이 현실화한 순간이었다. 경기 시작 4시간 전 강백호는 약 30분간 그라운드에서 포수 훈련을 받았다. 포구와 송구 동작을 확인하다가 팀 배팅 시간에는 외야로 나가 파울플라이 연습을 했다. 3루 관중석 쪽 그물망은 홈플레이트 뒤 그물망 역할을 했다.
본격적으로 포수 훈련을 시작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강백호는 서울고 시절부터 투수와 포수로 뛰면서 빼어난 타격을 보여줘 천재 타자로 불렸다. 그 잠재력을 인정받아 2018년 KBO 신인드래프트 2차 1라운드 1순위로 KT에 지명됐다. 하지만 프로에 데뷔해서는 타격 재능을 살리고자 외야수와 1루수로 주로 뛰었다.
2019년 이강철 감독 부임 후 이날까지 5번의 포수 출전이 있었고, 올 시즌 전에 이뤄진 두 번의 출전은 모두 포수가 없어 궁여지책으로 나간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달 31일 대전 한화전에서 강백호가 보여준 모습이 이강철 감독의 마음을 흔들었다. KT가 1-13으로 크게 뒤진 8회 말 포수 마스크를 쓴 강백호는 임종찬의 적시타 때 우익수 조용호의 크게 벗어나는 송구를 슬라이딩해 잡아내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전까진 ABS로 인해 프레이밍 기술이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면서 혹시나 했던 이 감독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이제는 프레이밍이 필요 없는 것 같다. 블로킹 잘하고 송구 잘하는 포수가 1등 아닌가. 이제 어떻게 잡는지는 의미 없다"면서 "그럼 (강)백호를 (포수) 시켜야 한다. ABS 체제에서는 그냥 잡기만 하면 된다. 프레이밍은 안 해도 된다"고 말한 바 있다.
3일 경기 전 인터뷰에서는 "(한화전에서) 볼 빠진 걸 (강)백호가 블로킹해내는 장면을 보셨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포수를 몇 년 안 하다가 그렇게 잡는 게 쉽지 않은데 정말 타고났다. 포수에게서 보이는 팔 스윙이 나온다. 포수에 최적화된 몸 같다"고 감탄하면서 "처음부터 포수를 시켰으면 150억짜리 선수가 되지 않았겠나"라고 농담을 건넨 바 있다.
무엇보다 제자의 좀처럼 볼 수 없던 미소에서 생각을 굳혔다. 강백호는 외야와 1루 어디에서도 좋은 수비를 보여주지 못하면서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KT도 강백호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지명타자로 내보내 경기를 운영해 왔다. 그런 강백호가 포수를 하면서는 생기가 돌았다. 이 감독은 "대전 경기 끝나고 다들 잘 어울린다고 했다"며 "난 (강)백호가 수비를 나가면서 웃는 모습은 처음 봤다. 그동안에는 수비를 나갈 때나 들어올 때 항상 긴장하는 모습이었는데 (포수를 할 때는) 웃으면서 들어왔다"고 눈여겨봤다.
만약 강백호가 백업 포수 역할을 조금씩 해준다면 KT가 엔트리를 운영하는 데도 긍정적인 요소가 많다. 강백호가 포수를 조금씩이라도 소화해줄 수 있다면 상황에 따라 외야에 한두 명의 야수를 더 쓸 수 있다. 주전 포수 장성우(34)의 체력 안배도 할 수 있다. 그동안 장성우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KT는 트레이드 카드를 찾거나 백업 포수 육성에도 공을 들였지만,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물론 아직은 먼 미래다. 강백호가 포수를 보던 2015~2017년 무렵보다 커터, 스위퍼 등 변화무쌍한 구종들이 많고, 무엇보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변화구는 수준 자체가 다르다. 기본적인 포구부터 다시 배워나가야 하는 만큼 '선발 포수' 강백호는 아직 요원하다. 그러나 이 감독의 구상에 포수 강백호는 하나의 카드로 자리 잡았다.
이 감독은 "현재로서는 지명타자라 수비 이닝을 (3일 경기 이상으로) 늘릴 순 없다. 그 정도(2이닝)가 제일 적당하다"며 "내가 실전에 (강백호를 포수로) 넣는 걸 장난으로 넣진 않는다. 다만 나중에 시킨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며 "지금은 이것저것 할 것이 많다. 기본이 돼야 한다. 본인은 다 잡을 수 있다고 하는데 커터 같은 변화구를 잡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앞으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지켜보려 한다"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