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토커]8대 기준을 한 줄로 정리하자면…, "아무튼 좋은 감독 뽑겠습니다"
현대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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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7 13:13
▲ 김태석의 축구 한 잔
얼핏 보면 뭔가 당연하게 느껴지는 말들이라 기준이 있어 보이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그냥 아무나 할 수 있는 얘기다. 그래서 이 전력강화위원회가 밝힌 감독 선임 기준 내용을 보면 실망스럽다. 전력강화위원회가 어떤 감독을 선임해야 A대표팀의 전력 강화를 도모할 수 있는지에 대한 디테일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정해성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장은 2일 오후 3시 서울시 종로구 신문로에 위치한 대한축구협회 축구회관에서 차기 A대표팀 감독 선임 절차와 관련한 브리핑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정 위원장은 ▶ 경기 계획을 마련하고 실행할 수 있는 전술적 역량, ▶ 취약 포지션 해결위한 선수 육성 능력, ▶ 명분 있는 성과, ▶ 풍부한 대회 경험, ▶ 선수는 물론 협회나 연령별 대표팀과 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소통 능력, ▶ 리더십, ▶ 최상의 코칭스태프 구성 능력, ▶ 이를 종합했을 때 성적을 낼 수 있을지 여부를 기준으로 세웠다.
이른바 대표팀 감독 선임을 위한 8대 선임 기준이라 할 수 있겠는데, 그냥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분명히 옳은 얘기다. 경기 계획을 마련 및 실행해야하고, 대회 경험도 많아야 하며, 소통 능력과 리더십이 출정하고, 최상의 코칭스태프 구성 능력 등을 보여 결국 성적을 낼 줄 아는 감독을 말한다. 좋은 지도자다. 그런데 좀 더 차분히 다시 살피면 이상한 느낌이 든다. 이건 감독 선임 기준이라 느껴지지 않는다.
정 위원장이 언급한 이러한 덕목들은 무릇 한 나라의 A대표팀을 이끌어야 할 감독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기본적 소양이다. 현재 우리 대표팀 전력 보강에 필요한 지도력을 가진 감독을 뽑을 수 있는 기술적 잣대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를테면 현재 대표팀의 약점을 보완하거나 강점을 가다듬을 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래서 현재 대표팀에는 어떤 지도자가 어울릴지 혹은 필요할지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성공 혹은 실패 여부를 떠나 사례를 들겠다.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본은 2014 FIFA 브라질 월드컵에서 알제리의 16강 돌풍을 일으켰던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을 선임했다.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 체제에서 패스와 볼 점유율을 바탕으로 경기를 지배하려는 축구의 한계를 느꼈던 일본은 보다 직선적이고 피지컬적 승부를 벌일 줄 알아야 한계를 넘을 수 있다고 판단해 이에 부합하는 축구 스타일을 지닌 할릴호지치 감독을 선임했다.
'듀얼(일대일 경합)'을 강조했던 할릴호지치 감독의 지도를 당시 일본 선수들이 제대로 흡수하지 못했던 점, 무엇보다 할릴호지치 감독의 독선적 지도법에 대한 분란 때문에 결국 이 선택은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당시 일본이 내린 선택이 비합리적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모든 선택에는 성공 혹은 실패 가능성이 늘 수반되는 법일 뿐이다. 대신 그들은 자신들의 약점(피지컬과 듀얼)을 분명히 캐치해서 새 감독(할릴호지치)을 선임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결과가 좋지 못했지만 이런 프로세스는 도리어 합리적이다.
대표팀 감독 선임과 관련해 최근 줄곧 모범 사례로 등장하고 있는 김판곤 전 전력강화위원장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로 조명할 수 있다. 그때는 무작정 어떤 지도자를 뽑겠다는 게 아니었다.
당시 한국 축구에 필요한 보완점이 무엇인지 고민해 내린 방향 제시를 우선했다. 그래서 나온 게 김 전 위원장이 거론했던 '능동적(pro-active) 축구'였고, 그 바탕에서 여기에 부합하는 여러 지도자를 접촉한 뒤에야 파울루 벤투 감독을 선임됐다.
당시 감독 선임이 잘됐다고 평가되는 가장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과연 한국 축구는 어떤 축구를 하고 싶은지에 대한 기술적 고찰이 선행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게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픈 기억이지만, 2023 AFC 카타르 아시안컵은 한국 축구의 민낯을 제대로 보인 악몽이었다는 점에서 고맙게도 우리가 어떤 지도자를 뽑아야 하는지 더욱 쉽게 기술적으로 리뷰하고 처방을 내릴 수 있는 대회가 됐다. 그리고 그 대회가 끝난 지 이제 두 달이 넘어간다. 황선홍 임시 감독이 잘 버텨준 덕에 또 한 번 고마운 순간을 맞이하게 됐다. 나름 넉넉히 고민할 시간을 벌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른바 선임 기준을 보니 호평을 받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저 8대 기준을 한 줄로 정리하자면 '아무튼 좋은 감독을 뽑겠습니다'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대한축구협회 내부에서 가장 테크니컬해야 할 전력강화위원회가 내놓은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실망이 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