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시론] 이강인 선수를 어떻게 할 것인가

[최영미 시론] 이강인 선수를 어떻게 할 것인가

현대티비 0 400

클린스만의 뒤를 이어 축구 국가대표팀을 지휘하게 된 황선홍 감독이 2026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전에 나갈 선수들의 명단을 발표하기 하루 전날에도 축구팬들은 물론 정치권에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이미 여러 차례 이강인을 비판한 어느 지자체 시장은 '이강인의 인성이 단체경기에 부적합하다'는 발언을 했다. 그를 비롯한 기성세대의 분노를 이해하나 이강인 선수에 대한 도를 넘은 비난은 한국 축구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선수들 사이의 갈등을 봉합하지 못한 한국 코치들과 축구협회 자문위원들의 책임도 크다. 어린 선수니까 실수할 수 있다. 한국은 물론 해외 언론에서도 비중 있게 다룬, '탁구 게이트'로 불리는 이번 사태를 통해 나는 오히려 희망을 보았다.

이렇게 쓰고 나니 내게 쏟아질 비난, 돌팔매가 눈에 보여 겁이 좀 난다. 독해력이 부족한 독자는 내 글을 오해할 수도 있겠다. 한국 사회에서도 선후배 위계가 심하기로 유명한 스포츠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구나, 주장의 권위에 도전할 만큼 개성이 강하고 실력도 있는 선수들이 등장해 자기 목소리를 냈다는 것. 그만큼 한국 사회가 성장했고 권위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증거가 아닐까. 나는 전체보다 개인을 믿는 사람이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문화 판에서도, 보수적인 문학동네에서도 권위에 도전하는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면 얼마나 좋을까.

황선홍 한국 축구대표팀 임시 감독이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태국과의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2연전에 출전할 대표팀 명단 발표 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은 평론가들뿐만 아니라 독자들도 아주 보수적이다. 해외에서 알아주는 커다란 문학상을 타지 못한 작가들은 보호받지 못하며 책도 잘 팔리지 않는다. 자신의 눈이 아니라 권위 있는 아무개의 견해에 의존하는 독자가 많기에, 유명한 문학교수나 평론가 나으리들, 영향력 있는 인터넷 활동가들(요즘은 이런 이들을 '인플루언서'라고 부른다)의 한마디가 출판시장을 쥐고 흔든다. 1인 출판사를 운영하며 나는 언론의 서평뿐만 아니라 인터넷 서점의 리뷰나 인플루언서들의 포스팅, 그리고 광고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를 목격했다. 신간을 홍보하기 위해 크고 작은 출판사들이 공짜로 책을 나눠주고 리뷰를 올려 달라며 서평단을 조직한다. 보통의 독자들은 리뷰가 많이 달린 책, 우호적인 평으로 도배된 책, 무슨 무슨 문학상을 받은 책에 열광한다. 눈에 보이는 '사재기'는 없어진 듯하나 눈에 보이지 않는 '리뷰 사재기'는 횡행하는 현실. 공정한 경쟁을 해치는 나쁜 관행이 어디 이뿐이랴. 더 쓰면 뭐 하리. 축구 이야기나 하자.

황선홍 감독은 3월11일 서울 축구회관에서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태국과의 경기에 참가할 대표팀 명단을 발표했다. 이강인을 포함한 유럽파 대다수가 이름을 올렸고, K리그 득점왕이었던 주민규가 처음 태극마크를 다는 영광을 누렸다. 카타르월드컵에서 골을 넣었는데도 클린스만 감독에게 외면당했던 미드필더 백승호 선수도 명단에 포함되어 나를 기쁘게 했다. 이강인은 아시안컵 요르단과의 경기 전날에 벌어진 손흥민 선수와의 다툼이 알려지며 하극상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자 런던의 손흥민 선수를 찾아가 직접 사과했고, 다른 대표팀 선수들에게도 사과했다.

황 감독은 "이번 일은 두 선수만의 문제가 아닌 팀원과 코칭스태프 등 모든 팀 구성원의 문제로 모두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며 "운동장에서 일어난 일은 운동장에서 푸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이강인 선발 이유를 밝혔다. "이강인을 부르지 않는다면 위기는 넘길 수 있지만, 다음에 부른다고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파리올림픽에서도 이강인을 쓰겠다는 뜻을 밝혔다. 황 감독의 인터뷰를 보고 안심이 되었다. 이런 사람이 진짜 지도자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기사제공 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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