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기운은 KIA 쪽으로? 누가 호랑이 목에 방울을 달까

우주 기운은 KIA 쪽으로? 누가 호랑이 목에 방울을 달까

맛돌이김선생 0 29
지난 9월 25일 KIA 타이거즈 양현종(왼쪽), 장현식(오른쪽)을 비롯한 투수들이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24 한국시리즈 출정식에서 정규 시즌 우승 트로피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한국 프로야구의 가을야구 시스템은 페넌트레이스 1위 팀에 일방적으로 유리하도록 설계돼 있다. KBO리그는 대부분의 프로 스포츠 종목에서 널리 쓰이는 토너먼트 방식 대신, 마치 비디오 게임 같은 계단식 구성을 채택했다. 포스트시즌에 턱걸이한 5위와 4위는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출발한다. 그 뒤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까지 세 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최종 보스(정규시즌 1위)와 만날 자격이 주어진다. 최소 7경기, 최대 12경기에 달하는 혈투에서 살아남아도,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리그 최강팀을 이기기는 쉽지 않다.

준플레이오프부터 시작하는 3위나 플레이오프에 직행한 2위는 사정이 조금 낫지만, 맨 꼭대기에서 기다리는 1위와 비교하면 불리한 조건인 건 마찬가지다. 그러니 KBO리그 가을야구를 보면서 하위 스테이지에 해당하는 와일드카드, 준플레이오프가 리그 최강자를 가리는 한국시리즈보다 더 치열하고 흥미진진하게 느껴졌더라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1위에 기울어진 한국의 가을야구 시스템은 역사가 증명한다. 역대 KBO리그에서 1986년 이후 단일리그로 펼쳐진 33시즌 가운데 페넌트레이스 우승 팀이 한국시리즈까지 우승한 건 총 28번이다. 84.8%의 한국시리즈가 정규시즌 1위의 대관식으로 끝났다. 2001년 이후로 범위를 좁히면 21세기에 열린 총 23차례 한국시리즈에서 '하극상'은 단 세 번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것도 2001년 삼성처럼 외국인 에이스(발비노 갈베스)가 '태업' 문제를 일으키거나, 2015년 삼성처럼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주축 선수 3명이 '원정 도박 파문'에 연루돼 전력에서 이탈하는 대형 악재가 터져야 가능했다. 부상이나 야구 외적 변수 없이 100% 전력을 갖고도 시리즈에서 패한 1위 팀은 사실상 2018년 SK 와이번스에 우승을 내준 두산 베어스가 유일하다.

그렇다면 올해 한국시리즈도 1위 KIA의 우승이라는 너무나 뻔한, 한편으로는 당연한 결말로 끝나는 것일까. 숫자만 보면 그럴 가능성이 높다. KIA엔 역대 1위들의 압도적인 한국시리즈 전적 외에도 또 다른 부적이 있다. 해태 타이거즈 시절부터 이어온 한국시리즈 승률 100%의 전통이다.

2위와의 승차 9게임… 압도적 공격력

KIA는 창단 이후 총 11차례 한국시리즈에 올라 11번 모두 우승을 차지한 팀이다. 단 한 번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내준 적이 없다. KIA로 팀명이 바뀐 21세기에도 한국시리즈 절대 강자의 면모는 여전했다. 2009년엔 당대 최강팀 SK 와이번스를 7차전 혈투 끝에 꺾고 우승했고, 2017년엔 3년 연속 우승팀 두산 베어스를 물리치고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올 시즌 7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KIA는 통산 12번째 우승으로 '한국시리즈 불패' 신화를 이어가길 원한다.

전력상으로도 KIA는 막강한 팀이다. 정규시즌 87승 2무 55패 승률 0.613으로 유일하게 6할대 승률을 기록했다. 2위 삼성 라이온즈(78승 2무 64패, 승률 0.549)와는 무려 9경기 차다. 참고로 작년 우승팀 LG와 2위 KT 위즈는 정규시즌 6.5경기 차, 2022년 우승팀 SSG 랜더스는 2위 LG와 단 2경기 차였다. 올 시즌 KIA보다 2위팀을 크게 따돌렸던 1위 팀을 찾으려면 2018시즌 두산(2위 SK와 14.5경기 차)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특히 KIA의 전력에선 압도적 공격력이 돋보인다. 타격 전 부문에서 상위권을 차지한 '슈퍼스타' 김도영을 중심으로 한 KIA 타선은 리그에서 가장 많은 858득점을 기록했다. 팀 타율 0.301로 불가능에 가까운 3할대 팀타율을 달성했다. 팀 OPS도 0.828로 유일하게 0.800 이상을 기록했다. 팀 홈런 3위(163개)에 팀 도루 4위(125개)로 힘과 스피드의 조화가 돋보인다.

또 일부 스타 플레이어에만 의존하지 않는 두꺼운 선수층이 장점이다. 하위타순에 해당하는 6~9번 타순의 타율(0.290)과 OPS(0.765)가 전부 1위다. 대타 타율도 0.340으로 10개 팀 중에 유일하게 3할대를 기록했다. 하위타선은 물론 벤치 멤버까지 잘 치는 타자들이 즐비해 상대 투수로서는 피해가거나 쉬어갈 곳이 없다. 타선에 비해 상대적으로 마운드가 약하다는 편견이 있지만 KIA의 팀 평균자책점은 4.40으로 전체 1위다. 특히 세이브 1위(31세이브) 정해영을 중심으로 불펜투수로는 보기 드문 10승 투수 전상현, 신인왕 후보 곽도규와 '마당쇠' 장현식이 버티는 승리조 불펜이 탄탄하다.



휴식 취한 1위팀 투수의 무서움

숫자로 보이지 않는 팀 분위기, 선수단 문화도 KIA의 강점이다. KIA의 한 코치는 "그간 여러 팀에서 일해봤지만 올해 KIA처럼 모든 구성원이 팀의 '우승'을 목표로 똘똘 뭉친 팀은 처음 본다"며 "스프링캠프 때부터 선수들이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다들 '올해는 우승 한번 해보자' '우승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며 같은 목표를 공유했다. 구단부터 감독, 코치진, 선수들까지 모든 구성원이 한마음으로 뭉쳤기에 시즌 중에 어떤 어려움이 와도 흔들리지 않고 이겨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다른 코치 역시 "올해 KIA는 베테랑 선수와 신인급은 물론 중고참에 해당하는 선수들까지 모두가 각자 자기 역할을 정말 잘해줬다. 특히 그간 중간급 선수 중에는 확고하게 자기 자리를 잡지 못해 선수단 내에서 목소리를 내는 데 소극적이었던 선수들이 있었는데, 이 선수들이 올해는 솔선수범하고 후배들을 잘 이끌면서 선수단 내에서 가교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러면서 다들 개인 성적도 좋아서 자연히 팀이 강해졌다"고 전했다.

여기에 이범호 감독의 초보답지 않은 뛰어난 지도력이 긍정적이고 활기찬 팀 문화를 만들었다. 어린 선수들이 감독이나 코치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자기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평가다. 이런 팀 분위기는 정규시즌 숱한 위기를 겪으면서도 KIA가 선두 자리를 지킨 원동력이 됐다. KIA는 올 시즌 외국인 투수, 이의리 등 주축 선수들의 부상 악재가 끊이지 않았다. 시즌 개막 때 선발투수 5명 중 4명이 부상으로 시즌 중 모습을 감췄다. 한때는 마운드가 무너져 역대 한 경기 최다실점인 30점을 주고 지는 경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KIA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안정을 찾고 제자리로 돌아오면서 놀라운 '회복탄력성'을 발휘했다. 특히 직접적으로 순위 경쟁을 벌이는 2위와의 맞대결에서 19승 3패(0.863)를 기록하며 추격을 따돌렸다. 2위 삼성과의 정규시즌 상대 전적은 12승 4패, 3위 LG와 13승 3패로 절대적 우위를 자랑한다.

시뮬레이션 결과도 KIA 쪽으로 크게 기운다. 득점과 실점으로 구하는 피타고라스 기대승률을 바탕으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KIA는 포스트시즌에 올라온 어느 팀과 대결해도 한국시리즈에서 이긴다는 결과가 나왔다. 2위 삼성과의 시리즈에선 4승 2패로 우승할 확률이 18.62%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5차전 우승이 16.81%, 7차전 우승도 13.77%로 나타났다. KIA의 삼성 상대 우승 확률은 56.79%다. 3위 LG와는 조금 더 치열한 승부가 예상된다. KIA가 LG 상대로 우승할 확률은 52.57%로 LG의 확률(47.43%)과 비교해 5%가량 높게 나타났다. 역시 6차전 승부 끝에 우승하는 경우의 수가 17.41%였고 5차전이 15.23%, 7차전 우승은 13.27%로 나타났다. LG의 경우 6차전 승부 끝에 우승할 확률이 16.86%로 나왔고, 7차전까지 갈 경우 13.42%로 오히려 KIA보다 유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LG가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를 거쳐 올라올 경우, 지난해 통합우승팀과 올시즌 최강팀의 흥미진진한 명승부가 기대된다.

물론 현실의 야구에서 승부는 모니터 위의 숫자대로 결정되지 않는다. 한국시리즈에서는 대부분의 1위가 우승했지만 경기 내용을 들여다보면 쉽게 우승한 팀은 없었다. 4전 전승으로 1위가 우승한 한국시리즈도 자세히 보면 시리즈 1차전, 2차전까지는 팽팽한 접전이 펼쳐진 경우가 많았다. 역대 가장 일방적인 시리즈로 꼽히는 1994년 한국시리즈도 1차전은 연장 11회까지 가는 대혈투였다. LG는 기대하지도 않았던 대주자 김선진의 홈런으로 간신히 2위 태평양에 2대 1 승리를 거뒀다. 작년 한국시리즈도 결과는 LG의 4승 1패 우승이지만 1차전은 2위팀 KT가 승리했고, 2·3차전까지 1점 차 피말리는 혈투가 벌어졌다.

1위팀은 정규시즌이 끝난 뒤 한국시리즈까지 장기간 휴식기를 갖는다. 팀 훈련과 연습경기를 갖긴 하지만 실전 감각 면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리즈 초반에는 경기 감각이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감각이 빨리 돌아오면 수월하게 시리즈를 풀어가지만, 시리즈 초반이 꼬이거나 선수들이 제 감각을 찾는 데 애를 먹으면 한국시리즈가 어렵게 흘러간다. 그래서 1차전 선발투수의 역할이 중요하다. 선수들의 경기 감각이 돌아오기 전까지 선발투수가 강력한 구위로 상대 타선을 압도해야 한다.

충분한 휴식을 취한 1위팀 투수의 공은 지칠 대로 지친 상대팀 타자들에게 엄청난 위력으로 다가온다. 정규시즌에서 상대했을 때보다도 훨씬 더 압도적이고 강하게 느껴진다. 이 체력적인 차이는 한국시리즈 경기가 길어질수록 점점 더 크게 벌어진다. 1·2차전에서 대등한 승부를 벌이던 팀들이 3차전 이후 무너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외국인 에이스의 부활이 관건

KIA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외국인 에이스 제임스 네일이 중요한 변수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네일은 올 시즌 26경기에 등판해 12승으로 팀 내 최다승을 기록했다. 평균자책점 2.53으로 팀은 물론 리그 전체에서도 가장 위력적인 투수로 군림했다. 그러나 지난 8월 24일 NC전에서 타구에 턱을 맞는 불의의 사고로 시즌아웃 당했다. 턱관절 골절로 수술을 받고 현재 재활 중인 상황이다. 일단 회복 속도가 빠르고 선수 본인의 의지도 강해 KIA는 네일의 한국시리즈 합류를 자신하고 있다.

만약 네일이 시즌 때와 같은 구위와 컨디션으로 합류해 1차전을 책임진다면 KIA는 시리즈를 유리한 흐름으로 가져갈 수 있다. 그러나 네일이 합류하지 못하거나, 정상적인 모습이 아닐 경우 KIA의 시리즈 투수 운영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물론 국내 에이스 양현종과 외국인 좌완 에릭 라우어가 있지만 이들이 2·3차전에 등판하는 것과 1·2차전에 나오는 건 차이가 크다. 또 KIA는 1~3선발 외의 선발투수진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하긴 어렵다. 불펜투수들을 활용해 마운드 전략을 짜는 방법도 있지만 '1선발 네일'을 기용하는 것에 비할 바는 아니다.
 
배지헌 스포츠춘추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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