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내 비전은 한국과는 달라” 아본단자 감독은 베스트 7이 아닌 베스트 시스템을 원한다
마르첼로 아본단자 감독은 베스트 7이 아닌 베스트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
흥국생명이 24일 인천 삼산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4-2025 V-리그 여자부 1라운드 경기에서 GS칼텍스를 3-0(25-20, 25-18, 26-24)으로 꺾고 개막 후 연승을 달렸다. 블로킹(3-8)과 서브 득점(4-8)에서 밀렸지만 공격 성공률(51.06%-31%)과 범실 관리(15-21)에서 앞서면서 승점 3점을 챙겼다.
이날 경기의 최다 득점자는 김연경이었다. 60.71%로 17점을 올리며 맹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선발로 나서지 않았음에도 김연경 못지않은 존재감을 발휘한 선수가 있었다. 바로 김다은이었다. 김다은은 이날 6-13까지 뒤처진 3세트에 정윤주 대신 코트를 밟아 75%의 공격 성공률로 6점을 터뜨리며 게임 체인저로 활약했다. 3세트 24-24 듀스에서 경기를 끝내는 연속 득점을 책임지기도 했다.
당연히 경기 후 인터뷰에서 마르첼로 아본단자 감독 역시 김다은의 이름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그는 “김다은이 재활도 열심히 하고, 훈련에도 열심히 임한 선수였는데 그 결실을 경기에서 멋지게 보여줘서 정말 기쁘다”며 멋진 활약을 펼친 김다은을 극찬했다.
그러자 아본단자 감독에게 김다은에 대한 질문 하나가 추가로 던져졌다. 두 경기 연속 선발 조합이었던 김연경-정윤주 OH 조합에 김다은이 주전으로 파고들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러자 아본단자 감독은 “가끔은 내가 가지고 있는 배구에 대한 비전이나 아이디어와 한국의 그것이 다른 경우가 있어서, 질문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멘트로 운을 뗐다.
이후 아본단자 감독은 자신의 배구 철학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나는 베스트 7을 정해놓는 스타일이 아니다. 팀의 확실한 배구 시스템을 만들고, 이후에는 모든 선수들이 그 안에 잘 적응해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 방향성”이라며 중요한 것은 누가 먼저 뛰느냐가 아닌 선수들이 어떤 시스템 속에서 뛰느냐 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아본단자 감독은 “나는 김다은, 정윤주, 김미연, 최은지까지 누구든 우리의 시스템에 잘 적응해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싶을 뿐이다. 당연히 김연경처럼 절대 뺄 수 없는 선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우리 팀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 안에서 모든 선수들이 잘 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 목표”라는 말도 덧붙였다. 앞서 이야기했던 내용의 연장선에 있는 말이었다.
요약하자면 아본단자 감독이 원하는 방향성은 압도적인 역량을 갖춘 필수 선수 외에는 누가 먼저 들어가는지가 중요하지 않을 정도로 안정적인 체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의 선수 개개인 역할 역시 명확하게 정돈돼 있는 팀을 갖추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선수들은 시스템 속에서 개개인이 해야 할 역할을 언제든 수행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그의 뜻대로 이러한 팀이 완성되면 가장 유연한 선수 기용이 가능해진다. 예컨대 정윤주 대신 김다은이, 또는 김다은 대신 정윤주가 코트를 밟을 때만 가능한 플레이에 과도하게 의존할 필요가 없어진다. 누구든 최근의 컨디션이 좋은 선수가 들어가 흥국생명이라는 팀이 시스템적으로 가다듬은 컬러와 강점을 잘 살릴 수 있는 팀 플레이를 구사해서, 준비된 승리 플랜대로 게임을 풀어 가면 되는 것이다. 현재까지 흥국생명이 보여준 방향성에 비추어 이러한 승리 플랜을 파악해본다면 속공-파이프의 적극적인 활용을 통한 이지선다와 이에서 파생되는 날개에서의 빠른 세팅 볼 플레이가 있을 것이다.
물론 선수 개개인의 수준과 장단점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하기에, 아본단자 감독이 원하는 준비가 모든 선수들에게 같은 수준으로 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부터는 아본단자 감독의 역량이 시험대에 오를 부분이다. 선수 개개인을 팀의 시스템에 억지로 끼워 맞추는 쪽으로만 가지 않고, 자신의 ‘시스템 퍼스트’ 방향성을 밀어붙이되 선수들의 특장점도 어느 정도 포용 및 활용할 수 있는 전술적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다행히 흥국생명의 시즌 출발은 산뜻하다. 두 경기에서 깔끔하게 승점 6점을 챙겼다. 아본단자 감독이 두 경기에서 잘 해냈듯이 남은 34경기에서 본인이 원하는 ‘베스트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선수 개개인의 역량까지도 활용할 수 있는 명장의 면모를 보여줄 수 있을지 지켜보는 건 흥미로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