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규·정근우·이종욱에서 신민재로···한국야구 국제대회 필살기 ‘스피드’를 다시 보았다
야구대표팀 신민재가 15일 프리미어12 일본전을 치르고 있다. 연합뉴스
16일 프리미어12 도미니카전에서 역전 3루타를 친 박성한. 연합뉴스
지난 15일 대만 타이베이 톈무야구장에서 열린 프리미어12 일본전에서 다시 확인된 것은 한국야구가 국제대회에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방향성이었다.
이날 한국 대표팀은 3-6으로 역전패했지만 2015년 프리미어12 준결승 맞대결 이후 만난 일본과 승부에서 가장 가슴 설레는 경기를 했다. 3-2에서 3-4로 리드를 넘긴 5회말 불펜진 운용이 결과적으로 후회할 만한 장면으로 남았지만 KBO리그를 끌어가는 젊은 선수들이 일본 대표팀과 겨뤄볼 만했다는 점에서 메시지가 있었다.
한번 더 입증된 것은 힘과 세기에서는 국제무대 톱클래스에 닿지 못하는 한국야구가 주루와 수비에서의 스피드로 무장했을 때는 어느 팀을 만나도 굉장히 ‘까다로운 팀’이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일본을 압박했던 것도 발이었다. 2-2로 5회초 1사 2루에서 2루주자 신민재가 기습 3루 도루를 성공시킨 다음에는 일본 배터리가 당황한 듯 바빠졌다. 일본 배터리가 주자에 시선을 더 두는 흐름에서 후속타자 윤동희의 좌중간 2루타로 한국은 역전에 성공했다.
0-6에서 9-6으로 대역전승을 일군 16일 도미니카전도 5점을 몰아낸 ‘약속의 8회’가 도드라졌지만 드라마가 시작된 것은 빠른 선수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6회였다, 박성한과 최원준이 볼넷으로 나간 뒤 홍창기의 1루수 땅볼로 1사 2·3루. 이어 나온 신민재의 투수 땅볼에 상대 투수 조엘리 로드리게스가 1루 악송구를 하면서 추격의 2득점으로 연결됐고, 분위기도 바뀌었다. 1루로 빠르게 접근하는 신민재의 주력이 투수 송구에도 영향을 미칠 만한 장면이었다.
한국 야구대표팀이 베스트 멤버가 출전한 국제대회에서 일본 대표팀과 대등한 수준에서 싸웠던 시간은 2006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신호로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이은 2009년 WBC까지다. 그중 2008년 올림픽에서는 준결승 일본전 승리 여세로 금메달까지 따냈는데 당시 KBO리그 흐름은 스피드가 화두가 돼 새바람이 불던 시간이었다.
2008 베이징올림픽 야구 금메달 이후 환호하는 선수단. 이종욱 이용규 정근우 고영민 등 당시 대표팀의 다리 역할을 했던 선수들이 보인다. 경향신문 DB
2009 WBC 일본전에서 2루 도루를 하는 이용규. 경향신문 DB
리그 정상을 다툰 SK와 두산이 나란히 주루와 수비에서 속도 경쟁에 불을 붙였고, 2009년 챔피언 KIA를 다른 구단들도 하나씩 그에 대비하며 리그의 체감 스피드가 달라졌다. 당시 대표팀 경기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 선수들도 이용규(당시 KIA), 정근우(당시 SK) 등 속도와 센스를 갖춘 ‘유니크한’ 자원들이었다. 또 고영민(당시 두산), 이종욱(당시 두산) 등 다양한 색깔의 ‘스피드맨’이 가세한 시간이었다. 베이징 대회에서는 일본 대표팀 포수 아베 신노스케가 2루 도루를 시도하는 이종욱을 한박자 늦게 포착하고 ‘중전안타’를 날리듯 2루 너머 악송구를 한 것이 전설의 장면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KBO리그를 2010년대 중반 이후로 타자들의 힘과 투수들의 구속은 대체로 증가했으나 속도와 세기 그리고 정확도에서는 도드라진 성장을 가져가지 못했다. 2015년 프리미어12 이후 일본전 9연패로 몰린 배경 중 하나였다. 이번 대회에서는 한국야구가 가장 무서워질 수 있는 ‘필살기’를 재확인하고 있다. 속도다.
안승호 기자 siwo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