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게 빛났다, 김수지가 보여준 캡틴의 품격
[여자배구] 24일 현대건설전 서브득점 2점 블로킹 3개 활약, 흥국생명 개막 9연승흥국생명이 안방에서 열린 현대건설과의 선두 결정전에서 승리를 거뒀다.
마르첼로 아본단자 감독이 이끄는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는 24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4-2025 V리그 여자부 2라운드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와의 홈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1(25-17,35-37,27-25,25-12)로 승리했다. 0-3, 또는 1-3으로 패할 경우 선두 자리를 내줄 수도 있던 흥국생명은 현대건설을 상대로 1차전에 이어 또 다시 승점 3점을 따내며 선두 자리를 굳게 지켰다(9승 무패).
흥국생명은 외국인 선수 투트쿠 부르주가 26.6%의 성공률로 14득점에 그치며 평소보다 부진했지만 50%의 성공률로 28득점을 기록한 김연경과 개인 최다인 21득점을 올린 정윤주로 이어지는 '토종쌍포'가 불을 뿜었다. 그리고 이날 흥국생명 승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선수가 또 있었다. 중요한 순간 3개의 블로킹과 2개의 서브득점으로 흥국생명 승리에 큰 힘을 보탠 '캡틴' 김수지가 그 주인공이다.
김해란-김연경-김미연으로 이어진 흥국생명 주장
▲ 김수지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만37세의 나이에 흥국생명의 새 주장에 선임됐다. |
ⓒ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
프로 스포츠에서는 학원 스포츠에 비해 주장의 역할과 비중이 그리 크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배구에서 주장의 역할은 다르다. 배구에서 주장은 코트에서 멘탈이 흔들리는 선수들을 다독이는 역할뿐 아니라 우리 팀에게 불리한 판정이 내려졌을 때 코트 위 선수들 중 유일하게 주심에게 항의를 할 수 있다. 각 구단에서 경험이 많고 코트를 보는 눈이 넓은 베테랑 선수에게 주장을 맡기는 이유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미들블로커 김나희(수원시청)가 주장을 맡았던 흥국생명은 2017년 FA 시장에서 김해란 리베로를 영입하면서 김해란을 곧바로 주장으로 선임했다. 김해란은 뛰어난 수비와 침착한 성격으로 팀 동료들을 잘 이끌면서 2019-2020 시즌까지 주장직을 수행했다. 2018-2019 시즌 흥국생명의 마지막 챔프전 우승 당시 팀의 주장을 맡은 선수 역시 김해란 리베로였다.
2020년 김해란 리베로가 출산을 위해 은퇴를 하면서 흥국생명의 주장은 김미연이 이어 받았다. 김미연이 주장에 선임되자마자 '배구여제' 김연경이 11년의 해외 생활을 마치고 국내로 복귀했다. 흥국생명은 김연경 복귀 후에도 주장은 계속 김미연이 맡게 될 거라 발표했지만 김미연이 컵대회에서 부상을 당하면서 김연경이 주장을 맡았다. 그에게는 오히려 속이 후련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흥국생명은 2020-2021 시즌 김연경과 이재영-이다영 세터(GS파니오니오스)가 한 팀에 모이면서 '드림팀'을 결성했지만 2021년 2월에 터진 '쌍둥이 자매 폭력사건'으로 팀 전력이 크게 흔들렸다. 결국 김연경 주장이 팀을 이끌었던 2020-2021 시즌의 흥국생명은 챔프전에서 GS칼텍스 KIXX에게 3연패를 당했고 김연경은 2021년 중국 상하이 브라이트 유베스트로 이적하면서 다시 주장직을 내려 놓았다.
2021년 한 시즌 만에 다시 주장을 맡은 김미연은 지난 시즌까지 세 시즌 동안 흥국생명의 주장을 역임했다. 김연경은 1년 만에 다시 흥국생명으로 복귀했지만 흥국생명은 그의 복귀 후에도 두 시즌 연속으로 준우승을 기록하며 유니폼에 별을 추가하지 못했다. 결국 지난 시즌을 끝으로 주장직에서 물러났고 지난해 흥국생명으로 복귀한 김수지가 이번 시즌 흥국생명의 새 주장에 선임됐다.
만 37세에 주장 맡아 흥국생명 9연승 견인
▲ 현재 V리그에서 통산 1000블로킹을 기록 중인 '현역' 선수는 양효진과 김수지 뿐이다. |
ⓒ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
2005-2006 시즌 신인 드래프트 전체 3순위로 현대건설에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한 김수지는 지난 시즌까지 프로에서 19시즌을 보낸 베테랑이다. 그렇지만소속팀에서도, 대표팀에서도 팀의 중심이 된 적은 거의 없었다. 커리어 내내 김수지가 받았던 개인상은 2016-2017 시즌 속공 부문 1위(56.03%)에 오르면서 받았던 미들블로커 부문 베스트7이 유일했다.
김수지는 IBK기업은행 알토스 시절이던 2018-2019 시즌 한 차례 주장을 맡은 적이 있지만 당시엔 기업은행의 전성기가 꺾인 상태였고 김수지는 한 시즌 만에 주장직을 표승주(정관장 레드스파크스)에게 넘겼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는 김수지의 플레이 스타일도 그렇지만 경기의 절반 가량을 리베로와 교체되는 미들블로커 포지션의 특성상 김수지가 전면에 나서 팀을 이끌 기회는 많지 않았다.
김수지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흥국생명의 주장에 선임됐다. 황연주(현대건설)와 임명옥 리베로(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 다음으로 리그에서 두 번째로 나이가 많아 사실 주장을 맡을 연차는 지났다. 하지만 아본단자 감독은 김수지가 안정적으로 선수들을 챙기면서 팀을 이끌 적임자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흥국생명은 '김수지 주장 체제'에서 이번 시즌 V리그 개막 후 9연승을 질주하고 있다.
승점 3점을 빼앗기면 1위 자리를 내줄 수도 있었던 24일 현대건설전에서도 김수지의 활약은 조용하게 빛났다. 이날 2개의 서브득점과 3개의 블로킹, 그리고 블로킹 1위(이다현)와 3위(투트쿠),5위(양효진),8위(아닐리스 피치)가 모두 뛴 경기에서 양 팀 합쳐 가장 많은 13개의 유효블로킹을 기록했다. 그리고 미들블로커 포지션임에도 13개의 디그를 기록하며 수비에서도 많은 기여를 했다.
김수지는 국가대표 주전 미들블로커로 다 년 간 활약하면서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2016 리우 올림픽 8강, 2020 도쿄 올림픽 4강 멤버로 활약했다. 하지만 정작 V리그 우승 반지는 현대건설 시절이던 2010-2011 시즌에 따냈던 1개가 전부다. 경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승 횟수가 많지 않은 김수지로서는 주장을 맡은 이번 시즌에 커리어 두 번째 우승 반지를 차지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