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흐름 바꾸는 V리그 '스페셜리스트'들
[여자배구] '서베로' 문정원부터 기업은행 '더블 스위치' 작전까지지난해 KIA 타이거즈에 입단한 좌완 곽도규는 2년 차가 된 올해 71경기에 등판해 4승2패2세이브16홀드 평균자책점 3.56의 좋은 성적을 올렸다. 특히 삼성 라이온즈와의 한국시리즈에서는 4경기에 등판해 4이닝 무실점으로 2승을 챙기며 KIA의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곽도규는 올 시즌 우타자를 상대로 .241의 피안타율을 기록했지만 좌타자를 상대로는 피안타율 .182를 기록하며 '좌승사자'로 명성을 떨쳤다.
농구에서는 매 시즌이 끝난 후 최고의 식스맨을 선정해 시상한다. 지난 시즌 남자프로농구에서는 원주DB프로미의 박인웅이 식스맨상을 수상했고 여자프로농구에서는 삼성생명 블루밍스의 키아나 스미스가 식스우먼상을 받았다. NBA에서는 식스맨상 수상 후 주전으로 도약하는 선수도 있지만 식스맨상을 통산 3회 수상한 자말 크로포드나 루 윌리엄스처럼 '전문 식스맨'으로 활약하는 선수도 있다.
야구가 선발투수, 농구가 주전 5명 만으로 경기를 치르기 쉽지 않은 것처럼 배구 역시 7명의 주전 선수 만으로 긴 시즌을 원활하게 치르기는 매우 힘들다. 따라서 경기 중간에 코트에 투입되는 '스페셜리스트'들의 활약이 경기 흐름을 바꾸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곤 한다. 이들은 비록 풀타임 주전으로 활약하진 못해도 자신이 가진 장점을 앞세워 승부처마다 코트에 투입돼 높은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서브와 수비로 존재감 보이는 선수들
▲ 문정원은 대표팀에 리베로로 선발될 정도로 리그 최고 수준의 수비를 자랑하는 선수다. |
ⓒ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 |
배구에서 각 팀이 가장 흔하게 사용하고 있는 '스페셜리스트'는 원 포인트 서버로 투입돼 후위에서 수비와 서브 리시브까지 참여하는 '서베로(서브+리베로)'다. 물론 서베로가 코트에 들어가면 후위공격 옵션이 하나 줄어든다는 단점이 있지만 수비와 서브 리시브에서 약점이 있는 아웃사이드히터 대신 서베로가 투입되면 그 팀은 수비를 잘하는 리베로 2명을 동시에 활용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현재 V리그에서 '서베로' 자리에 가장 잘 어울리는 선수는 바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의 문정원이다. 문정원은 특유의 돌고래 서브를 앞세워 3번이나 서브 1위를 차지했고 리시브 효율 50%를 넘긴 시즌도 세 번이나 될 정도로 리그에서 서브와 리시브에서 엄청난 강점을 가진 선수다. 실제로 문정원은 도로공사가 두 차례 챔프전 우승을 차지했을 당시 붙박이 주전 선수로 활약한 바 있다.
외국인 선수와 함께 도로공사의 공격을 책임지던 박정아(페퍼저축은행 AI페퍼스)가 팀을 떠나면서 도로공사는 '2인 리시브'를 사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도로공사는 이번 시즌 문정원보다 전새얀과 김세인이 주로 출전하고 있다. 하지만 전새얀과 김세인의 리시브 효율은 각각 31.98%와 24.47%에 불과하기 때문에 김종민 감독은 중요한 순간마다 문정원을 서베로로 투입해 서브와 수비를 강화하고 있다.
개막 후 9연승으로 선두를 질주하고 있는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도 리시브가 약한 정윤주가 후위로 빠질 때 수비 강화를 위한 교체를 단행하곤 한다. 지난 시즌과 이번 시즌 초반까지는 박수연의 투입 횟수가 많았지만 2라운드부터는 도수빈이 정윤주의 서브 차례가 끝나면 수비 강화를 위해 투입되는 경우가 많다. 도수빈은 지난 시즌 디그 부문 2위(세트당 4.95개)에 올랐던 흥국생명의 주전 리베로였다.
정관장 레드스파크스는 지난 6월 트레이드를 통해 도로공사로부터 왼손잡이 아포짓 스파이커 신은지를 영입했다. 그리고 신은지는 이적 첫 시즌부터 정관장의 원 포인트 서버로 쏠쏠한 활약을 해주고 있다. 물론 신은지는 문정원처럼 리시브가 강한 선수는 아니기 때문에 서브 차례가 끝나면 다시 웜업존으로 돌아간다. 회전이 많은 신은지의 까다로운 서브는 이번 시즌 정관장의 큰 무기가 되고 있다.
공격수 3명 전위에 두는 기업은행의 작전
▲ 기업은행의 간판스타 김희진은 이번 시즌 전위에 공격 보강을 위해 투입되는 '스페셜리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
ⓒ IBK기업은행 알토스 |
뛰어난 공격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수비에서 약점을 보여 주전 경쟁에서 밀려난 선수들이 외국인 선수의 부진을 틈타 교체 투입돼 좋은 활약을 통해 팀에 활기를 불어넣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선수가 페퍼저축은행의 박은서다. 2021-2022 시즌 신인 드래프트 전체 2순위로 페퍼저축은행의 창단 멤버가 된 박은서는 호쾌한 공격력과 강한 서브를 겸비한 유망주로 입단 초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프로 입단 후 세 시즌 동안 한 번도 리시브 효율 30%를 넘지 못했고 이 때문에 주전으로 활약할 기회를 번번이 놓쳤다. 이번 시즌 역시 벤치에서 시즌을 시작한 박은서는 외국인 선수가 뛰지 못한 3경기에서 주전 아포짓 스파이커로 출전해 3경기에서 35득점을 기록했다. 그리고 지난 22일 도로공사전에서는 교체 선수로 투입돼 13득점을 올리며 페퍼저축은행의 연패 탈출을 견인했다.
프로 입단 후 외국인 선수에 밀려 미들블로커로 변신한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의 나현수는 24일 흥국생명과의 경기에서 1세트 레티치아 모마 바소코 대신 교체 투입돼 오랜만에 '아포짓 스파이커'로 활약했다. 비록 현대건설은 이날 1-3으로 패하며 승점을 올리는 데 실패했지만 나현수는 43번의 공격을 시도해 팀 내에서 두 번째로 많은 14득점을 기록하면서 현대건설의 새로운 옵션으로 떠올랐다.
IBK기업은행 알토스는 수년 간 팀의 간판 스타로 활약했던 김희진과 2022-2023 시즌 주전 세터였던 김하경이 이번 시즌 각각 빅토리아 댄착, 천신통 세터와의 주전경쟁에서 밀렸다. 하지만 김호철 감독은 경기 중반 빅토리아가 후위로 빠지고 천신통이 전위로 올라올 때 빅토리아를 김하경 세터로, 천신통을 김희진으로 교체하는 '더블 스위치'를 사용하곤 한다. 두꺼운 선수층의 기업은행이기에 가능한 작전이다.
물론 후위공격 2위(41.38%)를 기록 중인 빅토리아의 후위 공격을 잠시 쓰지 못하는 점은 아쉽지만 더블 스위치를 하면 전방에 공격수 3명을 배치하면서 세터가 코트에서 없어지는 위험 부담도 지울 수 있다. 상대적으로 신장이 작고 운동 능력이 떨어지는 세터가 전위에서 언제나 상대 공격수의 집중 공략 대상이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업은행은 더블 스위치 작전을 통해 유리한 포메이션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