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G 박정태 2군 감독 선임이 논란에 휩싸인 까닭
天花
0
10
01.12 12:04
프로야구 SSG 랜더스(이하 랜더스)가 지난해 12월 31일 롯데 자이언츠의 레전드인 박정태(56) 전 해설위원을 퓨처스(2군) 감독으로 선임한 데 대해 야구계 안팎의 논란이 거세다. 1군도 아닌 2군 사령탑의 임명에 대해 왜 이렇게 말이 많을까. 선임 과정과 자질 문제에 대해 시시비비가 적지 않은 탓이다.
먼저, 부산 지역을 근거지로 하는 롯데 원클럽맨이 갑작스레 인천 연고지로 옮긴 배경이다. 랜더스 구단에서는 '악바리 근성'이 강한 박정태를 앞세워 2군 선수들의 정신력을 높이려는 의도라고 밝혔다. 하지만 많은 팬과 야구인들은 외삼촌을 영입한 '조카 추신수'의 역할에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추신수(43)는 박정태 2군 감독 선임 나흘 전인 지난해 12월 27일 구단주 보좌역 겸 육성 총괄로 임명받았다. 팬들이 '외삼촌-조카'의 혈연에 주목하는 이유다. 구단의 부인과 달리 박정태의 느닷없는 영입에는 조카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다는 추측이 돌고 있다.
조카 추신수가 외삼촌 박정태 영입?
적지 않은 매체들은 박정태 감독의 선임을 왜 부정적으로 보고 있을까. 첫째, 그의 12년 공백을 들고 있다. 박 감독은 1991년 시즌부터 14년간 롯데의 주전 2루수 겸 중심타자로 활약했다. 그는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5번이나 골든글러브상을 수상했다. 은퇴 후 메이저리그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마이너팀인 밴쿠버 커내디언스 타격 코치(2005년, 정식 유급코치는 아님), 롯데 타격코치(2006~2009년, 2012년), 롯데 2군 감독(2009~2011년), 국가대표팀 타격코치(2012년)를 지냈다. 따라서 현장을 떠난 지 12년 만의 복귀다. 12년? 강산이 한 번 바뀌고도 남을 긴 세월이다. 야구 기술과 훈련방법이 엄청 변화됐을 뿐 아니라 신세대들의 바뀐 생각과 감성을 따라잡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다.
야구계에서는 '3할 타자도 사흘 쉬면 타격감을 잊어버린다' '해설위원도 1주일만 현장을 안 보면 해설 아닌 말장난을 할 수밖에 없다'는 속설들이 있다. 12년 전의 정신력과 기술로는 신세대 선수들을 제대로 가르치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세 차례 음주 전과'도 논란 키워
두 번째는 '왜 세 차례 음주 전과자냐'는 것이다. 박 감독은 2019년 1월 만취 상태에서 도로에 주차한 채로 대리운전 기사를 기다리다 차를 옮겨 달라는 시내버스 기사와 시비가 붙었다. 버스 운전대를 잡고 운전을 방해하기까지 했다. 이로 인해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보호관찰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받아 전과자 낙인이 찍혔다. 당시 KBO 종사자가 아니어서 징계를 받지 않았지만 이전의 두 차례 음주운전 사실까지 밝혀져 '삼진 아웃'으로 지도자 복귀는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었다.
그런데 버젓이 복귀를 했다. 이는 메이저리거 강정호(38)에 비추면 형평에 맞지 않는다. 강정호는 2016년 세 번째 음주운전으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소속이어서 KBO 리그와는 무관했다. 그런데도 박정태의 복귀에 대해 KBO는 한마디 언급도 없다. 왜 랜더스의 눈치를 보는 걸까. 구단은 박 감독이 사건 이후 반성의 자세로 공익 활동을 꾸준히 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설명했지만, 굳이 논란의 인물을 선임했어야 했냐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KBO는 오는 1월 31일 선수단 등록 때 박정태에게 어떤 조치를 내릴지, 혹은 '아무 일도 없다'고 지나칠지를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 번째로 그의 '악바리 정신'은 '낡은 외투'라는 지적이다. 20대 선수들은 자녀가 한두 명인 가정에서 태어나 정신력만 강조하는 강한 압박감엔 거부반응을 보여 훈련에 역효과를 낼 수가 있다. 메이저리그 코치처럼 훈련방법을 이론적으로 잘 이해시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도우미'가 돼야 한다. 취임 첫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궈낸 KIA 이범호(44) 감독의 '형님 리더십'이 좋은 본보기다.
'흔들 타법'의 지도력엔 한계 있을 수도
네 번째로 타격 지도력의 한계다. 그는 1982년 리그 출범 후 5000명이 넘는 1군 등록선수 중 유일한 '흔들 타법' 소유자다. 타석에서 몸을 흔들며 타격하는 독특한 방법으로 자신은 성공했지만 정상적인 타격 자세를 지향하는 선수들에겐 먹혀들기가 어렵다. 국내에서 6년간 타격코치를 지냈지만 뚜렷한 성과가 없다는 평가도 있다. 이젠 코치가 아닌 2군 감독이긴 하나 감독의 임무 중 타격 지도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므로 지도력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받게 된다.
야구계에서 박 감독의 행보를 예의주시하는 건, 2군에서 제대로 1군용 선수를 육성하지 못하면 팀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2군 운영이 원활치 못하면 '육성 총괄'인 추신수 보좌역에게 불똥이 튈 수 있다. 랜더스는 지난 시즌 kt 위즈와 72승 2무 70패(0.507)로 동률을 이뤄 사상 첫 정규시즌 5위 결정전을 치렀다. 단판 승부에서 kt에 3 대 4로 역전패를 당해 와일드카드 결정전 진출이 좌절, 1년 차 감독 이숭용(54)이 궁지에 몰렸다. 김원형(53) 전 감독은 취임 첫해인 2022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쟁취했으나 이듬해 3위에 그치자 중도 사퇴를 당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한때 추신수의 감독 직행 소문이 돌았다. 참모진의 만류로 정용진 구단주(그룹 회장)가 인내심을 발휘, 올해 성적을 지켜보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구단주 보좌역은 KBO 리그 사상 최초의 직함으로, 구단과 모 그룹 사이에 탄탄한 연결고리를 맺는 역할을 한다.(메이저리그에서는 140년 역사상 구단주 보좌역은 유례가 없고 단장 보좌역은 몇 차례 있었다.) 추신수는 아시아선수 최초로 '20(홈런)-20(도루) 클럽'을 달성하는 등 메이저리그 16년의 화려한 경력을 바탕으로 정 구단주의 엄청난 신뢰와 애정을 받고 있다. 선수단 운영에 관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는 소문도 있다. 이숭용 감독이 올해 가을 야구를 성사시키지 못하면 추 보좌역이 '차기 감독'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웬만한 랜더스 팬들도 감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외삼촌 박정태와 조카 추신수는 '한배'를 탄 운명이다. 2군 선수를 잘 키워 1군 성적에 큰 보탬이 된다면 추 보좌역의 감독행에 청신호가 된다. 그렇지 못한다면 추 보좌역의 사령탑 승격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물론 정 구단주의 신망이 워낙 두터운 만큼 2군 운영의 성패가 차기 감독의 잣대가 될 수 없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하지만.
추신수의 무보수 명예직 또한 논란거리
한편 추 보좌역이 무급으로 근무하는 데 대해 다소 비판적인 시각이 있다. 1000억원 가까운 자산가인 추 보좌역이 1억원 안팎의 연봉을 마다하고 백의종군하는 건 어쩌면 미담(美談)이다. 하지만 이는 나쁜 전례가 될 수 있다. 무보수 명예직으로 봉사하는 건 명분이 하나도 없다. 급여를 정상적으로 받아서 급여 전액을 사회에 기부하는 게 개인으로나 구단으로나 명분을 쌓는 일이다. 추 보좌역은 "선수단 쪽에 더 많은 투자와 지원을 요청하는 의미로 무보수 근무를 자원했다"고 밝혔으나 대기업 소속원으로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하여간 추 보좌역은 선수단의 현황을 수시로 구단주에게 보고하며 팀 전력 향상에 일조하게 된다. 박정태 감독도 지난 1월 5일 인천 강화군에 위치한 SSG 퓨처스 필드로 첫 출근해 2군 운영의 청사진을 마련한다. 여러 논란 속 박 감독은 인터뷰 요청을 고사하며 일에 매진하겠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