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팀과 최약팀을 오가는 ‘도깨비팀’의 전형...정관장, ‘흥정연전’ 2전 전패로 챔프전 직행 티켓은 물 건너갔다 [남정훈의 …
20년의 V리그 역사에서 남녀부 통틀어 가장 오랜 기간 왕좌 위에서 군림한 것은 신치용 감독이 이끌던 삼성화재였다. 이들은 2007~2008시즌부터 2013~2014시즌까지 챔피언결정전 7연패라는 ‘대위업’을 달성했다.
일각에서는 당시 삼성화재의 배구를 외국인 선수에게만 의존하는 ‘몰빵배구’라 폄하했지만, 몰빵배구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다른 팀들도 외국인 선수의 공격 점유율을 45% 이상, 때로는 5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몰빵배구를 구사했지만, 삼성화재의 그것을 이겨내지 못했다.
이유가 있다. 배구는 세 번의 터치를 거쳐 상대에게 넘기는 스포츠다. 공격은 마지막 세 번째 터치다. 앞의 두 번의 터치를 제대로 해내야만 외국인 선수의 공격력을 극대화시키는 배구가 완벽하게 구현될 수 있다. 과거 ‘삼성화재 왕조’는 석진욱(KBSN스포츠 해설위원), 여오현(IBK기업은행 수석코치)가 코트 후방에서 완벽한 리시브와 수비를 담당하고, 세터 유광우(대한항공)의 안정적인 경기운영과 토스, 외국인 선수에게 쏠린 공격부담을 덜어줄 2옵션 아포짓 박철우(KBSN스포츠 해설위원), 상대 공격의 예봉을 꺾고, 세터나 리베로가 토스를 올리지 못하는 상황에는 세터 역할까지 해낸 미들 블로커 고희진(정관장 감독), 지태환(삼성화재 코치)까지 외국인 선수를 제외한 코트 위의 6명이 완벽하게 자기 역할을 해줬다.
반복된 훈련으로 숙달된 기본기와 연결 동작으로 자신들의 배구의 정수를 찍어줄 외국인 선수에게 최적의 환경을 제공해줬다. 삼성화재가 무수한 패배 위기 속에서도 상대를 이겨낸 힘은 결국 기본기와 연결이었던 셈이다. 여기에 쓸 데 없는 범실을 줄이고, 승부처에서 오히려 더 침착해지는 집중력이 더해져 그들은 무적으로 군림했다.
삼성화재 왕조의 일원이었던 고희진 감독은 지도자가 된 이후에도 과거 삼성화재 시절의 철학을 강조한다. 기본기와 연결동작, 쓸데 없는 범실 줄이기. 그러나 고 감독이 이끄는 정관장은 2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2024~2025 V리그 여자부 5라운드 흥국생명과의 원정 경기에서 기본기, 연결동작, 범실 싸움에서 밀리며 세트 스코어 1-3(21-25 25-22 10-25 23-25)로 패했다.
지난달 30일 4라운드 맞대결에 이어 사흘 만에 열린 5라운드 맞대결까지 공교롭게도 연전으로 치러진 흥국생명과의 두 번의 맞대결. 이전까지 파죽의 13연승을 달리던 정관장으로선 연전을 모두 잡으면 흥국생명과의 승점 차를 1점 차까지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모두 패배다. 30일에는 풀 세트 접전 끝에 2-3으로 패해 13연승 행진이 끊겼고, 2일 맞대결에는 그나마 승점 1도 챙기지 못했다. 승점 6을 챙길 수 있는 기회에서 단 1만 챙기고 말았다. 연전이 끝나니 선두 흥국생명(승점 58, 20승5패)과 3위 정관장(승점 47, 17승8패)의 격차는 11로 벌어졌다. 아직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정규리그 1위로 챔프전에 직행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사라진 정관장이다.
이날 경기가 마무리된 4세트 23-24 상황을 보자. 흥국생명 이고은의 토스를 받아 때린 김연경의 퀵오픈이 블로킹에 바운드되어 너무나도 완만하게 정관장 코트로 들어왔다. 받기만 하면 바로 반격해 듀스를 만들 수 있는 상황. 그러나 리베로 노란은 이해할 수 없는 역동작에 걸리며 주춤했다가 공을 향해 몸을 날렸지만, 공은 그대로 코트 위로 데굴데굴 구르고 말았다. 플라잉 디그를 시도할 공도 아니었고, 역동작에 걸릴 만큼 공이 제대로 맞고 튀는 상황도 아니었다.
이 장면 하나만으로 이날 정관장이 얼마나 기본기나 연결동작에서 상대에게 열세였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가운데에 떨어지는 쉬운 공을 서로 미루다 그대로 코트에 떨어뜨리고, 쉽게 수비해 올릴 수 있는 공도 제대로 연결하지 못하는 동작이 너무나 빈번하게 나왔다. 기록되지 않은 범실은 더 많았고, 기록된 범실에서도 29-18로 흥국생명보다 11개나 더 저지르며 자멸한 정관장이다.
정관장이 자랑하는 1옵션인 메가(인도네시아)는 이날 45.1%의 공격 성공률로 24점을 기록했다. 시즌 평균보다 성공률이 다소 떨어졌지만, 준수한 공격 성공률이다. 그러나 기록을 뜯어보면 달라진다. 이날 메가는 상대 블로커들에게 무려 10차례나 공격이 막혔다. 공격 효율이 21.57%로 성공률에 비해 반절 이상 떨어진 이유다. 블로커들에게 10차례나 막힌 것은 메가 본인이 공을 끌고 내려와 때린 것도 있지만, 메가에게 연결된 공이 흥국생명 블로커들이 막기 쉽게, 메가의 스킬로 다양한 앵글 중 한 코스를 고르는 게 아닌, 어느 한 앵글을 강요받는 연결을 해줬다는 얘기다. 고희진 감독도 “연결이 붙기도 했고, 메가도 끌고 내려오면서 공격을 했다.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고 감독은 경기 뒤 경기 총평에 대해 묻자 “오늘 흥국생명 선수들의 수비나 투지, 집중력이 상당히 좋았다”며 입을 뗐다. 이는 곧 정관장의 수비나 투지, 집중력이 좋지 않았다는 얘기다. 고 감독 역시 “우리는 하지 말아야할 범실을 많이 했다. 훈련 때 강조하는 게 경기에서 나온다”라며 아쉬워한 뒤 “흥국생명은 서브나 수비, 연결 동작이 좋았다. 오늘은 그 부분에서 갈렸다. 우리는 수비나 연결에서 쉬운 볼이 코트에 떨어지는 게 많았다”고 평가했다.
정관장은 메가와 부키리치(세르비아)로 이어지는 여자부 최고의 ‘쌍포’를 갖춘 팀이다. 수비와 연결동작만 매끄러우면 누구도 이길 수 없는 강팀이 된다. 그러나 수비나 연결동작이 좋지 않으면? 메가와 부키리치가 연신 범실을 저지르며 아무도 이길 수 없는 약팀이 된다. 이날 3세트 10-25로 졌던 상황이 딱 그랬다. ‘도깨비팀’의 전형이다.
정관장의 다음 상대는 2위 현대건설. 7일 대전 홈으로 불러들여 일전을 치른다. 이날마저 패한다면 정관장은 2위 자리도 쉽지 않아진다. 7일 현대건설을 상대하는 정관장은 어떤 팀일까. 누구도 이길 수 없는 강팀? 아무도 이길 수 없는 약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