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님들도 우리 팀을 아예 바꿨다고 느끼지 않는가?”...아본단자도 극찬한 ‘이고은 효과’, 흥국생명의 팀 컬러를 바꿨다
“기자님들이 봐도 우리 팀을 아예 바꿨다고 느끼지 않는가?”
흥국생명의 마르첼로 아본단자 감독이 2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2024~2025 V리그 여자부 5라운드 정관장과의 홈경기를 세트 스코어 3-1로 승리한 뒤 남긴 말이다.
흥국생명에게 지난달 30일과 2일 정관장과의 4,5라운드 맞대결은 선두 수성의 최대 고비로 여겨졌다. 연전을 앞두고 정관장의 팀 분위기는 최고조였다. 파죽의 13연승을 달리며 3위를 넘어서서 선두까지 집어삼킬 기세였다. 연전 이전 승점은 흥국생명이 53, 정관장이 46. 정관장이 연전에서 승점을 최대 6점을 챙길 경우 두 팀의 승점 차는 1 차이로 줄어들 수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지난달 30일 3-2 흥국생명 승리. 2일 3-1 흥국생명 승리. 1승1패만 해도 흥국생명에게 유리한 결과였는데, 2연전을 모두 잡으며 승점 5를 챙겼다. 흥국생명은 승점 58(20승5패)가 되며 2위 현대건설(승점 50, 16승8패)는 물론 3위 정관장(승점 47, 17승8패)와의 격차를 크게 벌렸다. 정관장은 2연전 패배로 사실상 정규리그 1위 가능성이 매우 희박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전 승리의 숨은 공신은 흥국생명의 주전 세터 이고은이었다. 지난달 30일 4라운드 경기에선 아시아쿼터 미들 블로커 피치(뉴질랜드)에 대한 견제가 그리 세지 않자 그의 전매특허인 외발 공격을 19번이나 시도해 13개를 성공시키게 했다. 전위 세 자리만 소화하는 미들 블로커임에도 피치는 당시 22점으로 팀내 최다득점을 올리며 정관장 블로커들을 농락했다.
2일 경기에서 정관장의 화두는 당연히 피치 견제였다. 고희진 감독은 경기 전 “오더 싸움을 통해 피치 앞에 장신 블로커를 많이 만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언대로 피치 앞에 부키리치가 자주 붙었고, 피치의 이동 공격을 잡아내는 장면도 나왔다. 이날 피치의 이동 공격 시도는 단 10개에 그쳤고, 성공도 4개로 성공률은 40%로 뚝 떨어졌다.
이고은은 상대의 피치 견제를 역이용했다. 피치에 대한 견제가 높다는 것은 자연히 반대 측면인 왼쪽의 블로커들이 헐겁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고은은 아웃사이드 히터 김연경과 정윤주의 공격 점유율을 높였다. 김연경은 한결 수월해진 블로킹 견제를 뚫고 51.22%의 공격 성공률로 24점을 몰아쳤다. 정윤주도 48.39%의 공격 성공률로 18점을 몰아쳤다.
흥국생명과 정관장의 연전은 ‘배구는 세터 놀음’이라는 격언을 또 한 번 실감케했다.
경기 뒤 아본단자 감독은 이고은을 치켜세웠다. 그는 “이고은이 팀을 바꿨다. 지난 시즌에도 이런 배구를 하고 싶었지만, 이고은이 오면서 대른 배구를 보여드릴 수 있게 됐다. 우리 팀은 대부분 경기에서 4명의 공격수가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린다. 리그에서 이런 팀은 드물다. 이는 세터의 역량이다. 이고은은 정말 잘 해주고 있다”며 칭찬했다.
이고은은 2년 연속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에 머문 흥국생명과 아본단자 감독이 팀 체질 개선을 위해 올 시즌을 앞두고 트레이드해온 카드다. 그간 기량은 주전급이지만, ‘위닝팀’보다는 ‘루징팀’에 주로 머물면서 자신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던 이고은. 우승을 노리는 흥국생명에 입성했을 때만 해도 ‘이고은으로 우승할 수 있겠느냐’라는 의구심 섞인 시선을 받았지만, 이고은은 묵묵하게 자신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아본단자 감독의 주문사항을 제대로 수행해내며 흥국생명의 팀 컬러를 바꿔냈다.
가장 단적인 사례가 흥국생명 공격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김연경의 공격루트 변화다. 지난 시즌만 해도 김연경은 후위에 가면 존재감이 거의 사라지는 선수였다. 당시 주전 세터였던 이원정(現 페퍼저축은행)은 김연경의 파이프 옵션을 거의 사용하지 못했다. 김연경의 지난 시즌 전체 공격 중 후위 공격이 차지하는 비율은 단 7.2%(128/1766)에 그쳤다. 반면 올 시즌에는 13.0%(116/894)로 대폭 올라간다. 여전히 전위 공격이 대다수를 차지하지만, 이제 흥국생명을 상대하는 팀들은 김연경의 파이프 옵션에 대한 견제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윤주와 함께 수훈선수로 인터뷰실에 들어선 이고은은 “상대인 정관장이 최근 경기력이 좋아서 부담이 컸는데, 2연전을 모두 승리해 기분 좋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아본단자 감독의 칭찬에 대해 얘기하자 “평소에도 칭찬할 때는 칭찬해주시지만, 쓴 소리할 때는 왁~ 소리도 지르며 질책하신다. 생각하는 플레이가 어긋나면 딱 집어 얘기를 해준다. 그렇게 쓴 소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날 피치의 활용을 줄인 것에 대해 묻자 이고은은 “아무래도 상대가 피치 견제를 위해 블로킹 스위치도 많이 하는 모습을 체그했다. 로테이션에서도 피치 앞에 높이를 더 높이려고 하길래 그 반대쪽으로 플레이를 활용하려고 노력했더니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고은은 IBK기업은행에서 뛰던 시절인 2016∼2017시즌 김사니의 백업세터로 챔프전 우승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올 시즌은 ‘주전 세터’로서 챔프전 우승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는 ““매경기 똑같이 준비한다. 연승할 때도 그렇고 쳐질때도 그렇고 훈련할 때 모든 걸 쏟아부으면서 집중하고 있다. 우선 한경기 최선을 다하다보면 좋은 결과 있지 않을까. 매경기 집중할 생각”이라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