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인터뷰] 이효동의 제2인생 "유소년 배구 활성화로 후배들의 길 개척하겠다"

[SW인터뷰] 이효동의 제2인생 "유소년 배구 활성화로 후배들의 길 개척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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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모지였던 유소년 배구 시장을 개척하겠다.”
 
 왼손잡이 세터. 스포트라이트보다는 뒤에서 묵묵히 팀을 위해 뛰었다. 신인 때부터 “후배들에게 롤모델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만큼 코트에 애정을 갖고 구슬땀을 흘렸다. 그러던 그가 2018∼2019시즌을 끝으로 미련 없이 코트를 떠났다. 유소년 배구 시장 개척하겠다는 큰 꿈을 그렸다. ‘2392개 세트’, 한국프로배구 V리그 역대 14호 기록을 남기고 코트를 떠나 이제는 어엿한 유소년 배구클럽을 운영하는 대표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이효동 아스트로하이 대표이자 한국유청소년배구협회장을 만났다.
 
 이효동 대표는 중학교 2학년이 돼서야 배구에 뛰어들었다. 시간이 필요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떡 잎이 달랐다. 고2부터 서서히 존재감을 알렸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 이 대표의 아버지는 1984년 LA 올림픽 한국 남자 배구대표팀 출신 배구인 이용선이다. 당시 대표팀은 강만수, 김호철, 노진수, 정의탁, 문용관, 장윤창, 이종경, 류중탁 등 정예 멤버로 5위에 오르는 등 한국 남자 배구 전성기를 이끌었다. 눈에 띄는 점은 배구 2세들이다. 이효동뿐만 아니라 류윤식(은퇴) 역시 류중탁의 아들이다.  뒤늦게 재능을 꽃피운 이 대표는 본인의 진가를 드러내며 경희대에 입학했고, 기대주로 프로 구단의 시선을 모았다. 그렇게 2010년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5순위로 현대캐피탈 유니폼을 입으며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이 대표는 “경희대 시절부터 기량이 올라왔고 결국 프로에 진출할 수 있다”며 “험난한 길이었지만, 프로에서는 10년 뛰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선수생활을 엄청 오래한 것도 아니고, 적게 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값진 경험을 했다”며 “은퇴가 조금 이르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셨고, 가족들도 선수를 더 하길 바랐다. 하지만 배구로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 싶었다”고 은퇴 뒷이야기를 전했다.
 
 사실 이 대표의 마지막 선수생활은 OK저축은행 소속이었던 2019∼2020시즌이다. 하지만 손가락 부상으로 애를 먹으며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시즌 종료 후 임의탈퇴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조용하게 은퇴했다. 당시 구단의 만류도 있었지만, 본인의 의지가 강했다. 임의탈퇴로 마무리한 이유도 타 구단의 영입 제안이 지속해서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타 구단에서 영입을 제안했다. 고심 끝에 정중하게 거절했다. 프로 무대를 누비는 것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에게 가치 있는 일은 바로 유소년 배구 시장을 개척하는 일이었다. 이 대표는 “사실 은퇴 후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시기에 2개 구단에서 복귀 제안이 들어왔다”며 “첫 번째 제안에서는 은퇴 문제로 시간을 끌면 이것도 저것도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정중하게 거절했다. 이어 유소년 배구 지도를 시작했을 때 또 한 번 다른 구단에서 현역 복귀를 제안했다. 다만 가르치는 아이들을 놓고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유소년들이나 생활 체육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배구의 매력을 전파하고 싶었던 마음이 던 것 같다”고 전했다.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이 대표는 “사실 은퇴하고 보니 구단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엘리트 지도자나 프로팀 코치를 제외하면 은퇴 선수들이 배구 관련 일을 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선택지의 한계가 있더라”며 “장기적으로 심판이나 분석관도 고민했다. 다만 이 같은 어려움은 앞으로 은퇴할 후배들도 똑같이 느낄 거라 생각했다. 새로운 길을 가면서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주변의 시선이 달갑지만은 않았다. 지금은 김연경 바람을 타고 유소년 배구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축구나 농구에 비해 규모, 시설면에서 턱없이 부족한 시기였다. 여기에 편견도 있었다. 이 대표는 “처음 유소년 배구 사업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누가 돈을 주고 배구를 배우느냐’, ‘유소년을 가르쳐서 어떻게 먹고사냐’ 등 배구계에서의 따가운 시선있었다”며 “현재 유소년 배구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문화 자체가 없었고, 시장도 없는 수준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앞서 언급했지만, 내가 이 길을 개척해야 후배들도 은퇴 후 다양한 일로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밀고 나갔다”고 전했다.
 
 이 대표가 사업의 힌트를 얻었던 것은 농구였다. 그는 “주변에서 비관적으로 바라봤지만, 농구를 모티브로 삼았어요. 농구선수 출신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하다 보니 배구도 충분히 활성화될 수 있겠다는 자신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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