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헤더 꼭 해야 할까…비 오는데도 시작→155분 중단, 누구를 위한 경기인가


[OSEN=한용섭 기자] 더블헤더, 과연 누구를 위한 걸까.
지난 19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SSG 랜더스와 경기는 2차례 우천 중단이 되면서 총 155분간 경기가 중단됐다. 역대 중단 시간 2위 기록.
경기 시작 전부터 비가 내렸지만, 경기감독관과 심판진은 오후 2시 경기 개시를 강행했다. 1회초 LG 공격이 시작되자마자 2분 만에 경기가 중단됐다. 16분 후에 경기가 재개됐지만, 계속해서 비가 내리자 4회초 심판진은 또다시 경기를 중단시켰다.
LG가 2-0으로 리드하는 상황, 심판진은 무려 2시간 19분을 기다린 끝에 경기를 다시 시작했다. 정상적인 경기라면 이미 끝나고도 남을 오후 5시40분에 4회초 1사 1,2루에서 재개됐다. 이날 SSG랜더스필드를 찾은 1만8727명의 관중들 중에서 수천명은 이미 귀가한 뒤였다. 3시간 가까이 쏟아진 빗줄기에 외야석은 텅텅 비었고, 내야 곳곳에도 빈자리는 많았다.
기상청 일기예보를 너무 맹신한 건지, 심판진은 자신있게 경기를 시작했는데, 변수가 많은 봄 날씨의 변덕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2시간 35분(155분)이나 기다린 것은 더블헤더 공포가 뒤에 있기 때문이다. 이날 경기가 우천 취소됐더라면 20일 더블헤더를 치러야 했다.

프로야구 현장의 목소리는 더블헤더를 절대 반기지 않는다. 연승으로 잘 나가는 팀도, 연패로 부진한 팀도 더블헤더는 달갑지 않다. 하루에 2경기를 하게 되면 주전들의 체력 소모가 심하다. 선발 로테이션에 추가로 1명이 필요하게 되고, 불펜도 부담이 가중된다. 또 하루 2경기를 관중석에서 응원한다는 것은, 아무리 열정적인 팬들이라도 힘들다.
10개 구단 감독들의 생각은 똑같다. 어떤 감독도 더블헤더를 반기는 감독은 없다. 모두 부담스러워한다. 선수층이 얇은 KBO리그는 팀 마다 28명 엔트리도 2군에서 올릴 선수가 마땅치 않아 빡빡하게 운영하고 있다. 시즌 초반 20경기가 지난 시점에 벌써부터 몇몇 구단은 불펜 혹사, 불펜 과부하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더블헤더가 실시되면, 필승조가 하루 2경기에 모두 등판해야 하는 상황도 생길 수 있다. 과부하는 부상 우려로 연결된다.
올해는 시즌이 끝나고 국제대회도 없다. 3월 22일 개막, 시즌은 일찍 시작됐다. 11월 중순에 한일 대표팀 평가전이 잡혔지만, 더블헤더를 하지 않더라도 11월 중순까지 한국시리즈를 충분히 끝낼 수 있다.

관중을 위해서도 더블헤더는 반갑지 않다. 안전 문제가 있다. 더블헤더에서 2만명이 넘는 관중들이 1차전이 끝나고 나가고, 다시 2만명이 넘는 관중이 들어오는 과정에서 안전 사고 위험도 있다. 창원NC파크 구조물 낙하로 관중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서 안전 문제는 화두가 됐다. KBO는 지난 4일 관중 밀집 시 안전 관리 강화에 집중하기 위해 더블헤더 미편성 기간을 13일까지 연장하기도 했다.
1000만 관중 시대다. KBO리그는 팬들에게 좀 더 질 좋은 경기를 보여줘야 한다. 더블헤더를 하면, 한 경기에는 주전 일부가 빠지고 백업으로 경기를 치르게 된다. 한 관계자는 “팬들에게 좋은 경기를 보여주는 것이 1000만명 이상 관중 수를 늘려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더블헤더를 하면, 1경기는 버리게 되는 셈이다”고 말했다.
KBO는 시즌에 앞서 더블헤더의 미편성 기간을 기존 3월 및 7~8월에서 3월 및 6월 2일부터 8월 31일까지로 확대했다. 매년 이상 기후로 인해 무더위가 지속되며 야구장을 찾는 팬들과 경기력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런데 KBO는 시즌 중간에 미편성 기간을 4월 13일까지 확대했다. 5월도 더블헤더 미편성 기간으로 정하지 못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모두가 부담스러워 기피하는 더블헤더를 의식해서, 우천 취소 결정에 눈치를 보게 된다. 또 경기 도중 우천 중단에 대한 매뉴얼도 없다.
염경엽 감독은 155분 중단 다음날인 20일 우천 취소에 대한 매뉴얼을 제안했다. 염 감독은 “매뉴얼이 없으니 심판들도 이도저도 못할 수밖에 없다. 한 번 경기를 하면 그 경기가 무의미하게 날아가게 해서는 안된다. 일단 비가 오더라도 경기를 했다면 정말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3시간이든 10시간이든 기다려서라도 5회를 마친다는 규정이 있어야 한다. 규정이 없으니 선수들도 취소되나 안되나 우왕좌왕, 감독들도 우왕좌왕, 심판들도 (눈치보느라) 난처하다”라고 말했다.
또 “경기 시작 전부터 기상 레이더 등을 보고 5회까지 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있을 때만 경기를 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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