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토커]비선수 출신 지도자의 길, 신한은행 이휘걸 코치
현대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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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0 15:06
비선수 출신 코칭스태프. 닉 널스나 에릭 스포엘스트라 같은 인물이 우승도 하는 NBA와는 달리 한국에서는 흔치 않은 케이스다. 한국 프로 농구 팀에는 비선수 출신에 대한 편견을 깨나가면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가는 이들이 있다. 신한은행의 이휘걸 코치가 대표적. 진중한 대화를 통해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봤다.
*본 기사는 루키 2024년 3월호에 게재됐습니다.
육상 선수에서 프로팀 코치까지
대학 1학년 때까지 육상 선수였던 이 코치는 군대에 다녀온 뒤 프로팀 체력 트레이닝을 접하게 됐고, 계기가 되어 농구계에 진입하게 됐다. 생소한 분야였지만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이호근 감독의 부름을 받아 삼성생명에 합류했다.
"처음 고등학교 농구팀에 갔는데 그때는 체력 트레이너라는 표현을 썼어요. 남자 대학부나 프로팀에도 체력 트레이너가 거의 없을 때였어요. 그래서 아마추어 지도자분들이 되게 신선하게 생각하셨어요. 예를 들어 본인들이 쉽게 가르칠 수 없는 점프를 높게 뛴다거나, 사이드 스텝을 빨리 움직이는 방법 같은 걸 알려주니까 만족도가 컸던 것 같아요."
"프로에 왔을 때 이호근 감독님께서 감사하게도 많은 역할을 주셨어요. 처음에 워밍업하는 시간이나 트레이닝하는 시간 자체를 많이 할애해주셔서 많은 것들을 가르칠 수도 있었고 테스트해볼 수도 있었어요. 그래서 이호근 감독님을 처음에 만난 게 저로서는 행운이었습니다."
"남자 선수는 운동 신경이 타고난 선수들이 비교적 농구를 많이 선택해요. 근데 여자 선수는 운동 능력 때문에 농구를 했다기보다는 부족한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어요. 그러니까 운동 효과나 흡수력에서 차이가 많았어요. 다치기도 많이 다쳤고 여자 선수에게 맞는 훈련 방법을 고민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죠."
컨디셔닝 코치로 건너간 중국 상해 프로팀 생활은 이 코치의 코칭 인생에 있어서 큰 전환점이 됐다. 정상일 감독과 합을 맞췄고 지금 사령탑인 구나단 감독과의 인연도 중국에서 시작됐다. 그뿐만 아니라 훌륭한 코치들과 경쟁을 펼치면서 배운 게 정말 많았다. 이후 정상일 감독의 부름을 받고 구나단 감독과 함께 신한은행에 코칭스태프로 합류하게 됐다.
"견문이 넓어졌습니다. 좋은 코치가 있어야 좋은 선수가 나온다는 말처럼 상해 농구팀의 야오밍 대표도 좋은 지도자를 많이 데려왔습니다. 농구 지도자뿐만 아니라 컨디셔닝이나 스트랭스, 심리 코치까지 세분화해서 지도자를 데려오니까 그 사람들의 메뉴얼만 봐도 제가 견문을 넓히기에 좋은 환경이었어요. 그리고 그들과 경쟁까지 하면서 배운 게 정말 많았죠."
"그간 한국의 컨디셔닝 코치들은 웨이트 트레이닝이나 보강 위주의 코칭을 하는 걸로 많이 접목됐어요. 하지만 중국에서 본 코치들은 웨이트는 기본이고 코트 안에서 하는 농구적인 움직임을 가지고 있는 동작들을 가지고 드릴이나 프로그램을 만들기 때문에 한국과는 큰 차이가 있었어요."
"그래서 정상일 감독님께서 절 인정해주시고 많은 걸 보여주시길 원하셨어요. 같이 고민도 하고 농구에 대해서 많이 알려주셨어요. 사실 농구를 알아야 선수들의 몸을 만들 수 있고 어떤 힘을 쓰는지 알 수 있거든요. 직접 훈련 파트너도 해보고 해야 세부적으로 알 수 있는 게 많은데 정상일 감독님 덕분에 많이 배우고 생각할 수 있었죠."
정상일 감독이 이끄는 신한은행은 하위권 평가에서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하는 등 성공적으로 도약했다. 하지만 2021년 7월, 정 감독이 건강 문제로 갑작스럽게 사퇴하면서 구나단 감독-이휘걸 코치 2인 체제가 됐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82년생 동갑내기 두 명은 2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정상일 감독님 물러나셨을 때 진짜 큰일이다 싶었죠.(웃음) 되게 존재감이 크신 분이었어요. 특히 농구보다 정 감독님의 아우라나 선수들을 장악하는 리더십 부분에 있어서 더 크게 빈자리가 느껴지고 고민이 많았어요. 가장 중요한 건 선수들에게 어떻게 동기부여를 시킬지였죠. 정말 큰 도전이었고 어떻게 보면 구나단 감독이나 저에게 큰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첫 번째로 문화를 바꾸려고 했어요. 한국의 선후배 문화, 코트 안에서의 선후배 문화 같은 걸 바꾸는 것에 대해서 가장 많이 신경 썼어요. 그리고 구나단 감독님은 소통을 강조하셨어요. 선수들이 사실 코칭스태프한테 와서 전술적인 이야기를 하는 걸 예전에는 되게 두려워했거든요. 예를 들면 '하라는 대로 해' 문화에서 어떤 점이 가장 좋았고 그런 부분을 거리낌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위기 속에 성장하는 신한은행과 이휘걸 코치
구나단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뒤 2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신한은행에는 매년 위기가 찾아왔다. 2022년 비시즌에는 간판스타 김단비가 이적했고, 지난 시즌을 끝으로 최고참 한 채진이 은퇴했다.
그런 상황에서 신한은행은 이번 시즌 전반기 2승에 그치는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다. 좌절할 법도 했지만 코칭스태프와 선수단은 포기하지 않았고, 반등에 성공하며 플레이오프 경쟁을 펼쳤다. 비록 플레이오프 진출은 좌절됐지만 교훈이 많았던 시즌이다.
"(김)단비가 떠날 때 멘탈이 많이 붕괴됐죠.(웃음) 한 가지만 잘하는 게 아니라 동료를 살리는 능력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뛰어난 선수 중 한 명이에요. 한 명의 스탯이 아니라 그 선수가 만들어줬던 스탯까지 다 빠지는 거라 어떻게 시즌을 치러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코트 안에 있을 때 (한)채진이를 바라본 것보다 없었을 때의 자리가 생각보다 훨씬 컸어요. 부족함을 채워주고 다리 역할을 하던 선수가 없어지니까 도움을 받았던 선수도 또 멘붕이 온 거죠. 단비의 후광은 '단비 언니가 있어서 내가 슛 한 번 더 쏠 수 있구나'처럼 보이는 거였다면 채진이의 후광은 보이지 않는 후광이었어요. 연습경기할 때부터 크게 와닿았고 농담 삼아 다시 복귀시키자는 말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이번 시즌은 농구 코치를 하면서 이렇게 많이 져본 적도 처음이었고 부상 선수가 많이 나온 것도 처음이었어요. 지면서 오히려 더 많은 걸 배웠어요. 실망보다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뭐부터 해야 할지 다시 한번 고민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쉽지 않은 여정이었음에도 이 코치는 동반자인 구나단 감독을 비롯해 신한은행 가족들이 있었기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올 시즌부터 새로 합류해 힘을 보태고 있는 이시준 코치에게도 감사 표현을 잊지 않았다.
"구나단 감독님은 농구를 잘 알면서 미친 사람이에요. 농구를 대하는 것도 진심이고 어떤 구성으로 어떻게 전술을 짜야 할지 누구보다도 고민을 많이 하고 공부를 많이 하는 사람이에요. 동반자이자 친구인데 되게 리스펙하게 되고 옆에서 더 잘 도와줘야겠다는 생각도 들죠."
"회장님과 행장님, 이전에 있었던 김태경 사무국장님과 지금 방영범 사무국장님까지 저희를 100% 신뢰해주신다는 걸 느꼈어요. 특히 올해 초반에 성적이 정말 좋지 않았는데 항상 연락오셔서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고 격려해주셔서 힘도 나고 책임감이 더 생기게 됐습니다."
"이시준 코치가 온 게 정말 큰 도움이 되죠. 어찌됐든 저는 주가 스트랭스 컨디셔닝 코치잖아요. 농구적으로는 조금 거든 것뿐이었는데 구나단 감독님도 그런 부분에 있어서 더 상의할 사람이 필요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농구적인 부분에서 지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와서 코칭스태프나 선수들에게 훨씬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아요."
비선수 출신 코치로 프로에 몸 담은지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이휘걸 코치는 그를 향한 편견과 싸우고 있다. 그는 주변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강조하는 한편 후배들을 위해 본인이 더 좋은 영향력을 전파하겠다는 의지도 전했다.
"지금도 편견이 있고 안 좋은 시선으로 보시는 분들이 계세요. 사실 저는 농구 지도자들이 더 빛날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일 뿐이에요. 아무래도 구단마다 농구 코치는 무조건 둘을 써야 하는데 그 자리 중 하나를 차지했다고 느끼시는 시선이 있으시죠. 성적이 부진할 때 특히 그런 말이 많았고 귀를 닫으려고 해도 그런 편견이 쉽게 없어지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건 그런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제 초심을 가지는 거예요. 나와 함께하고 있는 스태프와 선수들, 감독님과 같은 마음으로 간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비선수 출신 코치를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이요? 웬만한 멘탈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하루빨리 저 같은 사람이 더 인정받고 이런 분야의 사람들이 더 필요하다고 느낄 수 있게끔 해서 아마추어까지 전파된다면 그때 이후에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아직 초석도 없기 때문에 빨리 선한 영향력을 많이 끼쳐서 부정적인 시선이나 팬들에게 신뢰를 쌓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선수들에겐 항상 인성을 강조해요. 상대를 리스펙할 줄 아는 인성이 바탕이 되어야 선수의 성장치도 더 많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인성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받아들이는 마음도 다 다르거든요. 믿고 따라가는 것도 다 포함됐기 때문에 지금까지 봤던 선수 중에서도 인성이 갖춰진 선수들은 대부분 롱런했고 그런 게 제대로 안된 선수 때문에 팀이 무너지는 경우도 많이 봤거든요. 그래서 인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개인 운동해야죠."
"신한 왕조 시절에 우승하고 사실 지금은 챔프전에 올라간 지 꽤 오래됐습니다. 하루아침에 바닥에서 1위로 갈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닥부터 문화가 잘 형성이 되고 단단히 다져진 상황에서 올라간다고 보고 지금은 팬분들도 신한 농구가 예전만큼 많이 이기지 못해서 답답하시겠지만 단단히 초석을 다진다고 생각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미래에는 매 시즌 챔프전 경기를 볼 수 있다고 기다려주시면 빨리 성장해서 좋은 모습으로 보답하겠습니다."
Behind Story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는?
코치 스토리의 공식 질문.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는 누구인가요?"라는 물음을 이휘걸 코치에게도 던졌다. 이 코치는 잠시 고민한 뒤 상해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WNBA 리거 브리애나 스튜어트를 꼽았다. 미국 국가대표이자 세계 최정상급 선수 중 한 명이다.
"상해 여자 프로팀을 맡으면서 브리애나 스튜어트라는 선수가 있었어요. 2년을 같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통틀어서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시합을 준비하거나 경기에 임하는 마음, 끝나고 프로 선수로서 어떻게 회복해야 하는지 아는 그런 자세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뛰어났음에도 항상 부족함을 느끼는 선수였어요. 1시간 전에 나올 테니까 코어 운동을 시켜달라고 부탁하던가 그런 식으로 끝없이 채우려고 했어요. 무엇보다 인성도 갖춰진 선수였어요. 연봉도 많이 받겠지만 팀원들을 위해서 항상 이벤트를 해주고 생일도 챙기고 그랬어요. 정말 프로다운 선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