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토커] 투어 무대로 첫 출근을 앞둔…‘스무살 직장인’ 송민혁
중학교 1학년. 티샷 한 볼은 얼마 날아가지 못해 뚝 떨어졌다. 같은 조 친구들과 카트에 타면 항상 제일 먼저 내려 세컨드 샷을 준비해야 했다. 친구들이 아이언을 잡을 때 우드를 꺼내야 했고 키도 20㎝ 이상 작았다.
그런데도 골프가 너무 좋았다. 침대에 누우면 꿈속에서 골프를 치고는 했다. 홀에 공이 떨어지는 ‘땡그랑’ 소리가 좋아 시작한 골프였기에 오히려 퍼트에 더 집중했다. 구력이 쌓이면서 비거리는 자연스레 늘어났고 퍼트는 확실한 강점이 됐다. 자신을 ‘자신감 넘치는 선수’로 소개한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루키 송민혁을 만났다.
최고 루키, 골프 기대주, QT 수석…. 송민혁의 이름 앞에는 화려한 수식어가 붙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아마추어 시절 15승을 거뒀고 2020년 국가상비군, 2021년부터 2023년까지 국가대표로 활동했다. 지난해 7월에는 KPGA가 부여하는 투어프로 특전 자격 중 ‘누적 2년 이상 국가대표로 활동한 자’에 해당돼 KPGA 투어프로 자격을 얻었다. 또 2024시즌 KPGA 투어 출전권이 걸린 퀄리파잉 토너먼트(QT)를 수석으로 통과해 올해 KPGA 투어 데뷔를 앞두고 있다. 그의 말이다. “이제 대회에 출전하는 게 직업인 직장인이 된 느낌이다. 국가대표 때랑은 다른 측면에서 마음도 어깨도 무겁고 그렇다. 올 시즌 목표는 신인상이다.”
자기소개 부탁한다.
“현재 한국체육대학에 재학 중인 송민혁 프로입니다. 저는 자신감 넘치는 선수입니다. 프로가 되기 전인 아마추어 때도 대회에 나가서 딱히 기죽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특히 그린 주변에 물이 있으면 한두 번 머뭇거릴 만한 상황인데도 자신감 있게, 더 자신 있게 치려고 합니다. 공격적으로 과감하게 플레이하는 스타일의 선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KPGA 투어 2024시즌 개막이 다가왔다. 데뷔 앞둔 기분은 어떤가?
“첫 정규 투어를 데뷔하는 만큼 조금 떨린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설레는 마음도 있다.”
2024시즌 키워드를 꼽자면.
“우승까지 한 신인왕이라고 하고 싶다. 사실 신인인 만큼 신인상 수상 밖에 생각이 안 난다. 아무래도 KPGA 투어에서 활동하게 되면 신인상 수상은 올 시즌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서 꼭 수상하고 나서 지속적으로 투어를 뛰고 싶다. 만약 올 시즌 신인상과 우승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둘 다 하고 싶지만 신인상을 선택할 만큼 신인상 수상이 큰 목표다.”
송민혁에게 KPGA 투어란 어떤 의미인가?
“1부 투어는 중대한 목표 중 하나였다. 최종 목표지가 미국 PGA 투어 진출이기 때문에 제 꿈에 한 발자국은 더 다가간 것 같아서 자신감도 생기고 좋다.”
올 시즌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KPGA 투어 대회를 뛰게 되면 아마추어 때와는 다르게 대회 수가 더 많다. 또 이제 대회에 출전하는 게 직업이 되는 부분도 아마추어 때랑 다른 점인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많은 대회에 나설 수 있는 체력이 가장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지도하는 코치님은 전지훈련을 이미 지난해 12월 27일에 갔는데 저는 체력 훈련을 한국에서 더 강하게 하려고 전지훈련 출발을 1월 중순까지 미뤘다. 보통 주 5회, 1시간 반 정도 웨이트 트레이닝과 유산소 운동을 한다. 아마추어 때는 주 3회 정도 했는데 이렇게까지 체력 훈련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가대표로 활동하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아무래도 처음 국가대표로 선발됐을 때랑 국가대표 신분으로 가장 잘 쳤던 대회인 지난해 GS칼텍스 매경오픈(준우승)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국가대표팀 김형태 코치님이 항상 말씀하신 것이 ‘태극기의 무게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코치님은 항상 ‘태극기를 달고 있는 순간만큼은 절대 실수하지 말라’고 하셨다. 필드에서 플레이할 때뿐만 아니라 평소 행동하는 것도 조심하라는 의미였는데 가슴에 크게 와 닿았다. 그래도 국가대표 때는 오히려 자신감이 있었는데 이제는 어느덧 직장인 된 느낌이라 다른 측면에서 마음도 무겁고 어깨도 무겁고 그렇다.”
롤모델이 있나?
“처음 골프를 시작할 때부터 최경주 프로님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인연이 돼서 최경주재단과 함께 겨울 전지훈련을 갔었던 적도 있고, 재단에서 주최하는 행사에도 몇 번 참여했었다. 당시 처음 뵀었는데 그때도 전설적인 골퍼였고 눈빛과 포스가 굉장히 강렬해서 그때부터 롤모델로 삼았다. 최경주 프로님처럼 인성과 실력을 모두 갖춘 선수가 되고 싶다. 특히 지난해 SK텔레콤 오픈에서 최경주 프로님과 동반 라운드를 했었는데 그때가 정말 기억에 남는다. 첫 홀 티샷 직전까지 입가에 웃음이 사라지질 않았다. 좋았던 건지 긴장했던 건지…. 정말 티샷 어드레스 할 때까지도 웃느라고 집중을 못했다. 그날 최경주 프로님과 대화도 많이 했다. 인생 최고의 라운드였다.”
(송민혁은 지난해 국가대표 자격으로 출전한 GS칼텍스 매경오픈에서 준우승을 거뒀고 곧바로 이어진 SK텔레콤오픈에서는 공동 3위에 올랐다. 그는 “2등과 3등을 연달아 해서 말로 표현 못할 정도로 기뻤다. 아쉬웠던 플레이들이 조금 있었는데 조금만 보완하면 나중에 우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KPGA 투어 선수 중 누구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싶나?
“당연히 최경주 프로님이다. 골퍼로서 큰 성공을 하셨고 거기에 더해서 재단까지 운영하셔서 더 멋진 것 같다. 나도 언젠가는 재단을 만들어서 꿈나무들, 유망주들을 돕고 싶다.”
김민규, 배용준 선수와 친한 것으로 안다. 어떤 사이인가?
“두 선수 모두 진짜 친형 같은 존재다. 김민규 프로 아버지랑 저희 아버지랑 고향 선후배 사이다. 그래서 5살 때부터 알고 지냈다. 배용준 프로랑은 학생 때 대회에서 처음 봤는데 서로 잘 맞아서 친해졌다. 셋 다 개구쟁이 느낌이라 서로 잘 맞는 것 같다. 사실 형들이랑 KPGA 투어 데뷔를 앞두고 많은 얘기를 했다. ‘셋이 연장전을 가면 어떨 것 같으냐’ 이런 얘기도 했는데 형들은 시합 때는 서로 말도 안 하고 완전 자기 플레이에만 집중하는 스타일이라 나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만약 진짜로 연장전에서 만나게 된다면 형들을 이기고 싶은 마음이 클 것 같다.”
김민규 선수의 캐디도 한 걸로 안다.
“2021년 한국 오픈부터 2022년 LG시그니처 플레이어스 챔피언십과 우리금융 챔피언십까지 총 세 번 캐디를 했다. 너무 좋았다. 내가 골프백을 메준 형이 잘 치니까 좋았는데 항상 우승에서 약간 멀어져서 한편으로는 슬프기도 했다. 형도 경기 끝나고 좋은 추억 만들었다고 하니까 기뻤다. 맛있는 것도 사주고 용돈도 줬다. 민규 형이 우리금융에서는 준우승했고 LG시그니처 대회 때는 2라운드까지 선두였다. 그래서 다른 프로 형들이 캐디 해달라고 연락을 주기도 했다.”
그 다음날 바로 본인 대회도 나갔는데 성적은 어땠나?
“우리금융 대회가 일요일에 끝나고 3일 뒤인 수요일부터 빛고을중흥배 아마추어 대회가 있었다. 그런데 그 대회에서 우승했다. 민규 형이 2등 한 것만으로도 좋았는데 내가 우승해서 정말 기뻤다. 사실 캐디를 한 직후 대회에 출전해서 조금 힘들지 않을까 걱정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대회 1라운드 끝나고 연습장 가는 길에 코피가 났다. 대회 최종 3라운드 때는 어깨에 담이 와서 연습 스윙을 못할 정도였지만, 계속 스트레칭을 하면서 근육을 풀고 라운드를 치른 끝에 우승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부터 16시간을 잤다.”
수석으로 QT를 통과했다. 당시를 돌아본다면.
“선배 형들 중에도 시드전을 통해서 KPGA 투어에 데뷔한 형들이 많다. 그래서 스릭슨 투어(2부 투어) 뛰는 시즌 중반에도 시드전은 가지 말라는 소리를 엄청나게 들었다, 그런데 결국 시드전으로 끌려갔다. 시드전 내내 날씨가 안 좋았는데 눈 오고 비 오고 우박도 와서 계속 경기가 중단되면서 정말 정신이 없었다. 마지막 날에도 경기가 13번 홀쯤에서 중단됐었는데 그때 선두랑 2타 차이의 4위였다, 그때 2타 차라는 얘기를 듣고는 다른 선수들은 그늘집에서 몸 녹이고 있을 때 나는 혼자 채를 미친 듯이 휘두르면서 혼자 몸 풀고 그랬다.”
스릭슨 포인트 10위 이내에 못 들어서 시드전에 갔다.
“맞다. 스릭슨 포인트 10위 이내에 들면 다음해 KPGA 정규 투어 출전권을 준다. 원래 목표는 톱10 안에 드는 거였는데 12위로 시즌을 마쳤다. 정말 아쉬웠다. 12위 결정 나고 어머니가 ‘시드전 가서 1등하면 풀시드잖아’라고 하셨다. 그래서 ‘맞네. 그러면 되겠네’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돼 다행이다.”
주니어 때부터 아마추어까지 총 15회 우승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우승은?
“중3 때 전학을 가야 할 일이 있었다, 그런데 전학을 가면 그 학교 소속으로 최소 두 달 동안은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는 그런 규정이 있었다. 그래서 전학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대회에 나가고 싶어서 전학을 늦췄다. 결국 전학하기 전 4월, 5월에 전국소년체전과 박카스배 전국학생선수권에 출전했는데 두 대회에서 연속 우승해서 상비군이 됐다.”
골프 인생에서 가장 짜릿했던 기억은?
“2022년 매경오픈 3라운드 때 공동 선두로 올라서면서 마지막 날 챔피언 조에서 경기했다. 그렇게 많은 갤러리 속에서 경기를 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정말 짜릿했던 기억이다.”
그럼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초등학교 5, 6학년 때였던 것 같다. 또래 친구들보다 키도 20㎝ 작았고 드라이버 샷 거리도 많이 짧았다. 다른 친구들이 7번 아이언을 칠 때 나는 우드를 쳤다. 대회에 나가면 남들 다 티샷하고 세컨드 샷 지점까지 카트 타고 이동할 때 나는 달려가서 치고 또 달려가서 치고 그랬다. 주변에서는 당연히 골프 선수 하기에는 체격이 작아서 무리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또 그런 얘기들 때문에 스스로 ‘난 골프 선수가 안 맞나’ 그런 생각도 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진지하게 부모님과 회의를 세 번 정도했다. 중요한 시기였다. 당시 부모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민혁아, 우리는 중학교 1학년 때까지 너 뒷바라지 한 비용 하나도 아깝지 않다. 네 선택을 존중하고 네 말을 따르겠다.’ 그래서 제가 노력하겠다고, 믿어달라고 했다. 그러고 2년 정도가 지나니까 다른 친구들이랑 비거리가 비슷해지거나 오히려 더 나갔다.”
KPGA 투어에서의 우승 순간을 머릿속에 그려본다면?
“많은 골프 팬들이 나를 기억 할 수 있게 갤러리가 많은 대회에서 우승하고 싶다. 친한 형들이 뿌리는 물세례를 받고 부모님한테 가서 안기고 싶다. 평소에 눈물이 많은 편이긴 한데 아마추어 때부터 우승하고 울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눈물보다는 기쁜 감정이 커서 울컥하는 감정은 있는데 눈물은 안 나더라. 그래도 KPGA 투어에서 우승하면 눈물이 날 수도 있을 것 같긴 하다. (웃음)”
골프 선수로서 자신 있는 부분은?
“퍼팅이다. 5~6m 퍼트는 쳐서 대부분 다 넣을 자신이 있다. 그린의 라인을 잘 보는 편이다. 거리감도 자신이 있다. 어렸을 때 프로님이 사실 퍼팅 밖에 안 시켰다. 아무리 힘껏 세게 쳐도 드라이버 거리가 많이 늘지는 않아서 우드나 퍼터 연습을 많이 했다. 그때 다른 선수들보다 퍼팅 연습을 많이 했던 게 지금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반대로 보완하고 싶은 것은 어떤 게 있나?
“지금도 크게 투어 평균보다 비거리가 짧지는 않지만 조금 더 쉽게 플레이하려면 비거리를 늘리고 싶다. 10~20m 정도만 늘리면 홀을 공략하는 데 정말 좋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현재는 드라이버 275m, 7번 아이언 155~160m 정도 친다.”
골프를 잘 치고 싶어서 ‘이렇게까지 해봤다’라고 할 만한 게 있나?
“특별한 거는 없고 연습을 정말 죽어라 했다. 정말 연습을 많이 할 때는 9시간 정도 했다. 국가대표 때 고성에서 전지훈련을 한 적이 있는데 당시 하루에 공을 1200개 정도 친 날도 있다. 전지훈련 기간인 2주 동안 매일 1000개 이상을 쳤었다.”
묘기 샷을 좋아한다고 들었다.
“실내 골프연습장에서 묘기 샷 연습을 하곤 한다. 매트 위에서 공을 쳐서 위로 높이 띄우는 플롭 샷이 가장 자신 있다. 60도 웨지로 쳐서 한 7m 정도는 올라간다. 아직 실전에서는 못 써봤다.”
겨울 전지훈련에서 중점적으로 훈련한 부분은?
“우선 쇼트 게임 연습을 가장 집중적으로 했다. 물론 유산소 운동이랑 체력 훈련도 빠뜨리지 않고 했다. 아무래도 아마추어 때는 ‘잃을 게 없다’ 이런 생각으로 정말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쳤었는데 이제 직장인이 됐다 보니 돈도 벌어야 하고 해서 조금 더 현명한 플레이를 하려고 한다. 그래서 KPGA 투어에서 활용할 수 있게 확실한 코스 매니지먼트 공략을 세우는 연습도 했다.”
골프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
“초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친구가 골프를 쳤었다. 그래서 친구 따라서 같이 골프를 시작했는데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연습장에 가서 레슨프로에게 1주일에 한 번 배우게 해주셨다. 그러다 초등학교 2학년 겨울에 처음 채를 샀는데 연습장에 있는 아카데미 소속 또래 형들이 같이 놀면서 공 치고 밥도 먹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에게 아카데미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그때부터 진지하고 골프를 시작했다.”
처음 골프채를 잡았을 때 느낌 기억나나?
“처음 실내 퍼팅 그린에서 퍼트 연습을 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공을 굴려서 홀에 들어가면 ‘땡그랑’ 하고 소리가 나는 게 너무 좋아서 시작했다. 사실 샷 할 때는 아빠 채로 시작했기 때문에 무거워서 그냥 그랬다. 지금까지도 땡그랑 소리가 유독 여운이 많이 남는다.”
축구를 매우 좋아한다던데.
“어렸을 때는 축구팀에 들어가서 축구했었다. 최근에는 골프 시즌 끝나면 다치지 않게 골프 치는 사람들끼리 풋살도 많이 했다. 김민규, 정한밀, 변영재 프로 등 형들이랑 주로 풋살을 하는데 정한밀 형이 축구 제일 잘한다. 축구 선수는 손흥민, 이강인을 제일 좋아하는데 손흥민 선수를 많이 좋아해서 토트넘 홋스퍼 팬이기도 하다.”
하고 싶은 것도 많을 스무 살이다. 자유 시간이 주어진다면?
“짧게 여행을 꼭 가고 싶다. SNS나 TV에서 보면 스위스의 설산이 너무 예쁘더라. 그래서 스위스에 꼭 가보고 싶다. 그런데 사실 골프를 며칠만 쉬어도 막 불안해지고 그래서 편하게 여행도 못한다. 은퇴하고 여행을 가야 마음 편하게 여행할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신혼여행으로 먼저 가도 되겠다. 그게 가장 빠른 여행이지 않을까. (웃음)”
골프 말고 자신 있은 것 혹은 일상에서 푹 빠져있는 것이 있나?
“다른 스포츠 운동 체험하는 걸 좋아한다. 축구뿐만 아니라 탁구랑 당구도 자주 친다.”
골프 인생에서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큰 꿈이라면 세계 랭킹 1위다. 그게 가장 큰 목표다.”
팬들이 어떤 선수로 기억해 주면 좋겠나?
“실력 있는 선수로 기억되는 것도 좋지만 매너 있고 팬들 잘 챙기는 그런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팬들이 많아진다면 언젠가는 팬들과 함께 밥도 먹고 팬 미팅 그런 것도 해보고 싶다.
자신에게 정말 소중한 보물이 있다면.
“할머니 유품인 목걸이다. 여섯 살 때까지 할머니가 저를 돌봐주셨는데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돌아가셨다. 정말 저한테는 소중한 분이라서 유품인 목걸이도 항상 하고 있다. 특히 시합 때 멘탈이 흔들리거나 그러면 목걸이를 만지며 멘탈을 다시 바로잡는다. 아마추어 때는 항상 우승하고 나면 할머니 산소로 가서 골프백을 옆에 세워두고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인사를 드렸다. 좋을 일이 있을 때도 할머니 산소를 찾는다. KPGA 투어에서 우승해서 할머니께 꼭 인사를 드리러 가고 싶다.”
해외 투어에 도전할 생각은 있나?
“PGA 투어에 진출하고 싶은 생각은 있다. 그래도 올해는 첫 투어인 만큼 KPGA 투어에 집중하고 싶다. 시즌 끝나갈 쯤에는 PGA 투어 Q스쿨에 나설 생각도 있고, KPGA 투어에서 자격이 되면 그렇게 해서라도 꼭 도전하고 싶다. 만약 PGA 투어에 간다면 타이거 우즈를 꼭 만나보고 싶다. 구체적으로 생각은 안 해봤는데 우즈랑 같이 밥 한번 먹어보고 싶다.”
송민혁의 인터뷰 자리에 함께했던 그의 어머니는 타이거 우즈 이야기가 나오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민혁이가 매경오픈 18번 홀에서 기가 막힌 페이드를 친 적이 있어요. 우즈가 PGA 투어 대회에서 페이드 치는 영상을 수십, 수백 번 봤었는데 실제 대회에서 민혁이도 그렇게 친 거죠. 언젠가 우즈를 만난다면 저도 우즈에게 꼭 한마디 하고 싶어요. ‘우리 아이가 우즈 당신의 영상을 보면서 연습했다. 당신이 우리 아이에게 이렇게 영향을 많이 준 사람이다. 고맙다’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