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토커] 너무 이상한 하루 – 한 경기에 일곱 명이 남의 공을 친 날

[카토커] 너무 이상한 하루 – 한 경기에 일곱 명이 남의 공을 친 날

총총이 0 86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어느 날이었다. 그때 뱁새 김용준 프로는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경기위원이었다. 
그때는 KPGA투어(옛 코리안투어) 경기위원이 아니었다. 지역 경기위원이었지. 뱁새 김 프로가 근무하던 1지역 경기위원회는 충남 태안에 자리잡은 솔라고CC에 본부를 두었다. 그곳에서 KPGA 2부 투어나 프로 선발전이 열릴 때 심판을 보았다. 지난 2015년 프로 골퍼가 된 직후 골프 규칙에 푹 빠진 뱁새는 2018년 KPGA 경기위원이 되었다. 그날은 뱁새가 경기위원이 된지 1년이 조금 지난 때였다.  


덥지만 맑은 날씨 덕분에 그날 경기는 순조로웠다. 나른해질 무렵에 무전이 들렸다. "10번 홀 그린에서 경기위원을 찾습니다"라고. 코스 내에 있는 경기 위원 중에 뱁새가 가장 가까이에 있었다. 조금 멀리 있어도 달려갈 판이었다. 재정을 내리는 데 한창 재미가 붙었기 때문이다. 경기위원이 골프 규칙을 근거로 판정을 내리는 것을 재정이라고 한다.

 "뱁새입니다. 제가 가겠습니다"라고 바로 답을 했다. 뱁새를 실은 골프 카트는 바람처럼 10번 홀 그린으로 달렸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뱁새가 물었다. 낯이 익은 선수였다. "공이 바뀌었는데요"라고 선수가 말했다. 누구 공과 바뀌었냐고 물으니 다른 선수가 손을 들고 나섰다. 어디서부터 바뀐 것 같으냐고 물었다. "세컨드 샷을 할 때 서로 바꿔서 친 것 같습니다"라고 두 선수 모두 답했다. 

두 선수는 각각 2벌타씩을 받아야 했다. 원래 자리로 돌아가서 다시 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세컨드 샷을 한 지점까지 두 선수를 카트에 태우고 갔다. 아까 공이 놓였던 자리를 정확하게 찾을 수 없었다. 
최대한 정확하게 추정을 해서 가까운 자리에 플레이스를 하고 플레이 하도록 재정했다. 10번 홀 점수에 두 타씩 벌타를 더해서 스코어카드를 제출하라고 알려주었고. 
 


두 선수 모두 같은 제조사의 같은 상표에 같은 색깔 공을 썼다. 공에 마크라도 확실하게 했으면 좋으련만. 자기 공이라는 표시를 한 것도 마크라고 한다. 마크는 다양한 방법으로 한다. 영문 이름 앞 글자를 쓰는 선수도 있다. 점을 찍는 선수도 있고. 공을 바꿔 친 두 선수는 점만 한 두 개씩 찍었다고 한다.

"여러분이 타이거 우즈입니까? 마크는 확실하게 해야지요" 안타까운 마음에 뱁새는 안 해도 될 소리까지 했다. 정작 부주의로 두 타씩을 잃은 선수 마음은 오죽하겠는가? 기껏 잘 쳐 놓고 퍼팅 그린에 올라가서 공을 마크하고 집어 올려 보니 자기 공이 아니었던 것이다. 자신의 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자발적으로 경기위원을 불러서 벌타를 받고 잘못을 바로잡은 것이고. 뱁새는 경기위원끼리 쓰는 무전에 벌타를 준 상황을 알리고 제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조금 지나서였다. "12번 홀 세컨드 샷 지점에서 경기위원 찾습니다"라고 무전이 또 들어왔다. 뱁새가 맡은 홀이었다. 마음을 준비하며 뱁새는 카트를 몰았다. 심판을 찾으면 그 홀로 가면서 '무슨 일일까'라고 예상을 해 본다. 그래야 당황하지 않고 신속하게 재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12번 홀 페어웨이 안쪽 깊숙한 곳까지 카트를 몰고 들어갔다. 한국에서 골프장 페어웨이에 카트를 몰고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된다. 심판도 그 중에 속한다. 


"제가 다른 선수 공을 친 것 같습니다"라고 선수 A가 말했다. 선수 B가 막 치려고 보니 자신의 공이 아니어서 경기위원을 불렀다고 한다. 선수 B의 공을 선수 A가 쳐버린 것이다. 선수 A를 카트에 태우고 그린에 가서 그가 친 공을 가져왔다. 선수 B의 공이 맞았다. 선수 A는 2벌타를 받아야 했다. 선수 B는 잘못이 없으니 벌타도 없었고. 선수 B는 자기 공을 원래 자리에 놓고 플레이 하면 된다. 남의 공을 친 이유는 이번에도 같았다. 살짝 깊은 풀에 잠긴 공을 당연히 자기 것이라고 믿고 친 것이다. 다른 선수는 페어웨이에 있는 공을 치려다가 아무래도 자기 것이 아닌 것 같아서 한 번 확인한 덕에 실수를 피했고.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잘못된 공을 친 사례가 그날 또 나왔다. 그것도 두 건이나 더. 뱁새가 맡은 홀에서는 아니었다. 무전을 통해 다른 경기위원이 상황을 보고했다. 두 선수가 서로 공을 바꿔 쳐서 벌타를 주었다고 말이다. 또 다른 홀에서도 두 선수가 서로 남의 공을 쳐서 벌타를 받았다고 무전이 왔다. 
이날 오구 플레이를 한 선수는 모두 일곱 명이었다. 136명이 참가한 지역 예선에서 무려 일곱 명이 오구 플레이를 한 것이다. 전체의 5%가 넘는 인원이 말이다. 
 


 
'무엇에 씌인 것 같다'는 말을 뱁새는 좀처럼 쓰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무엇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말을 대신할 말을 찾기란 쉽지 않다. 오랫동안 많은 사람이 세상에는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그 어떤 것이 있다고 믿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이 말은 온전한 정신이라면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그런 일을 저지르거나 겪은 것은 너무 이례적이라는 말이기도 하고. 그날이 그랬다. 무엇에 씌인 것 같았다. 

오구 플레이를 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자발적으로 경기위원을 부르고 벌타를 받은 선수를 응원한다. 이런 선수야말로 진정한 골퍼이다. 이들이 골프를 심판이 없는 스포츠로 남게 해주고 있다. 얼굴이 눈에 선한 그들이 꼭 대선수가 되기를 바란다. 혹시 골프 투어에서 성공하지 못해도 다른 일에서 반드시 그 정직함이 대가를 받으리라고 뱁새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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