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역사상 최악의 대량살인사건
1938년 5월 21일 일본 오카야마 현 쓰야마
중일 전쟁이 한창이던 1938년 일본, 당시의 일본인들의 관심은 모두 전쟁에 쏠려 있었다.
그 당시 군국주의의 광기에 휩쓸린 일본은 자국민 모두가 전쟁에 관심이 많은 만큼 남자들도 일본제국을 위해 군에 가고 싶었고 징병검사를 통과하지 못한 남자는 사내 취급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군대를 가지 못했던 남자들은 극심한 콤플레스에 빠지거나 자살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인식은 작은 시골 마을에서 조차 사그러들지 않았다.
이곳 오카야마 쓰야마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 살고있는 도이 무쓰오(都井睦雄)는 1917년 3월 5일 출생하였는데
1937년 당시에 만 20살이였기 때문에 징병검사를 받았다.
하지만 검사 결과로는 결핵으로 인한 불합격. 때문인지 마을 여자들은 그를 멀리했다고 했지만 사실 불합격이 원인이라기 보단
결핵이 원인 이였다고 볼 수 있다. 그 당시 결핵에 걸리면 부모 형제들까지 전염을 우려해 외면할 정도 였는데,
하물며 이성관계의 파탄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더구나 그 당시에는 난치성 질환에 가까웠다.
병세가 심해지면 결핵 환자만 수용하는 요양원에 죽을 때까지 쳐박아뒀다.
이로 인해 도이 무츠오는 극심한 여성 혐오즘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원래 그는 마을에서 잘 나가는 남자였다.
학교에 다니면서 성적도 괜찮았고, 아이들에게 손수 쓴 동화책 같은걸 읽어주어서 아이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또 근방의 여자들과 이런저런 관계를 가질만큼 여자들한테도 인기가 제법 있었다.(그 당시 일본 농촌지역은 요바이라는 밤에 몰래 다른 여자들이랑 성관계하는 문화가 있었는데, 이건 1950년대에 가서야 거의 사라졌다고함)
하지면 결핵으로 다른 여자들이 도이를 기피하고 멀리하는데, 이러한 일 때문에 도이는 여자들에 대한 증오가 싹트기 시작했고 이 증오가 마을 사람들에게 까지도 옮겨갔다.
그는 수렵면허를 취득해 산탄총을 사들여 사격 연습을 하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우려를 자아내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그의 할머니는 도이가 할머니의 치료를 위해서 된장국에 약을탄 모습을 보고
'손자가 나를 독살하려 한다.'라고 경찰에게 호소하는 바람에 경찰의 가택수색에서 일본도와 총기류를 압수 당했다.
하지만 지인을 통해 이사카 펌프액션식 산탄총과 탄약, 검도류 수집가에게 일본도를 몰래 사들이는등 다시 무기를 모았다.
범행의 시작
희생자 2 가장 먼저 습격한 곳은 북쪽 이웃인 키시모토 카츠유키(岸本勝之)의 집이었다. 여기는 5인 가족이었지만 카츠유키는 군대에 들어가 집에 없었다. 시골이라 문단속은 하지 않고 있었다. 몇 차례 밤놀이로 집안을 다 알고 있던 토이는 안쪽의 방으로 들어갔다. 토이는 과부인 카츠유키의 모친 츠키요(50세)와 육체 관계가 있었지만, 최근 들어 거절당한 데다 마을에 소문이 퍼졌기 때문에 강한 원한을 품고 있었다. 엽총을 사용하면 근처에 들린다고 생각한 그는 일본도를 소리없이 뽑아 숙면중이던 츠키요의 목과 가슴을 찔렀다.
희생자 3, 4 계속해 어머니의 옆에서 자고 있던 남동생 요시오(14세)와 마모루(11세)를 일본도로 베어 살해했다. 여동생 미사(19세)는 일 때문에 다른 곳에 묵고 있었기 때문에 당장은 살해되는 것을 모면했지만 토이는 그녀가 누구의 집에 있는지 알고 있었다.
희생자 5 세번째 집은 니시다 슈지(西田秀司)의 집이었다. 이곳에는 4명이 있었는데, 이곳도 열쇠를 잠그는 습관은 없었다. 토이는 이 집의 안주인인 토메(43세)와 몇 차례 육체 관계가 있었지만, 토메는 「몇 번이나 덤벼든 것을 거절했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말했었다. 토이는 방에서 잠들어 있는 토메의 복부에 엽총을 대고 쏘아 즉사시켰다.
희생자 6~8 옆방에서는 3명이 난로 옆에서 자고 있었다. 장녀 오토모 요시코(22세)와 주인 슈지(50세), 아내의 여동생 치즈코(22세)였다. 요시코는 토이와 육체 관계가 있었지만 다른 집에 시집갔다. 그러나 감기로 앓고 있는 토메를 문병하러 요시코와 치즈코가 와 있었다. 토이는 그것을 알고 있었으며, 이 날을 학살일로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다. 세 사람은 총성에 잠을 깼는데, 근거리에서 엽총에 맞아 모두 즉사했다.
희생자 9, 10 네 번째는 키시모토 타카시(岸本高司)의 집이었다. 여기는 4인 가족이었다. 마찬가지로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앞문으로 침입한 토이는, 한 이불 속에 잠들어 있던 주인 타카시(22세)와 임신 6개월이던 아내 니시다 토모에(西田智惠 20세)를 엽총으로 사살했다. 토모에는 5번째로 살해된 토메의 둘째 딸이었다.
희생자 11 잠에서 깬 조카 테라나카 타케오(寺中猛雄 18세)가 달려들었으나, 토이는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때려 쓰러뜨린 뒤 엽총으로 가슴을 쏘았다. 토이는 웅크리고 앉아 떨고 있던 모친 타마(당시 70세)의 앞에 버티고 서서 당신들과는 아무런 원한도 없었지만, 니시다의 딸을 며느리로 삼았기 때문에 죽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타마는 살려달라고 애원했으나 토이는 총을 쏘았다. 그러나 타마는 치명상을 입지 않아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혼자 살아남은 타마는 젊은 사람이 죽고 내가 살았다. 신도 부처님도 없다고 슬퍼했다.
희생자 12 다섯 번째는 테라카와 마사이치(寺川政一)의 집. 여기는 6인 가족이었다. 거듭되는 총소리에 테라카와 집의 식구들은 모두 잠에서 깼지만 문단속은 하지 않았다. 현관으로 들어온 토이는 무슨 일인가 하며 나온 주인 마사이치(60세)의 가슴을 엽총으로 쏘아 사살했다.
희생자 13~16 놀라서 창 밖으로 튀어나온 장남 테이이치(貞一 19세)의 등을 엽총으로 쏘아 사살하고, 복도의 덧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려던 5녀 토키(15세)와 6녀 하나(12세)를 사살했다. 며느리 노기 세츠코(野木節子 22세)는 복도 구석으로 몰고 가 총으로 쏘았다. 테이이치와 세츠코는 불과 6일전에 결혼식을 올렸다. 4녀 유리코(당시 22세)와 토이는 깊은 사이였지만, 그녀는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그러나 불만을 품은 토이가 신혼집에 밤마다 찾아가는 바람에 유리코는 이혼하고 말았다. 토이는 둘 사이를 되돌리려 했지만, 유리코는 다른 남자와 재혼했다. 마침 3일 전부터 유리코가 집에 와 있었는데, 그것을 알고 있던 토이가 이 날을 학살일로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다. 유리코는 뒷문으로 재빨리 나와 이웃집으로 도망쳐, 토이가 가장 원망한 유리코는 경상을 입는데 그쳤다.
희생자 17 유리코가 도망친 것을 눈치챈 토이는 바로 뒤를 쫓았다. 6번째 집인 테라카와 모키치(寺川茂吉 당시 45세)의 집은 원래 토이의 습격 계획에 들어있지 않았지만, 비극에 연루되고 말았다. 여기는 5인 가족이었다. 앞문을 잠근 직후 토이가 와서 문을 열라고 고함쳤다. 별채에 있던 부친 코시로(孝四郞 86세)가 덧문을 열자 토이는 그를 엽총으로 쏘아 즉사하고 말았다. 유리코와 주인 모키치, 아내 노부코(伸子 당시 41세), 차남 신지(進二 당시 17세)는 모든 문을 꼭 닫았다. 토이는 총을 마구 쏘고 문을 격렬하게 두들겼다. 모키치는 이대로는 모두 살해당한다고 판단, 신지를 테라카와 모토카즈(寺川元一)의 집으로 가 도움을 청하도록 했다. 그러나 신지는 옆문으로 나와 대나무 숲으로 뛰어들었으나 토이에게 들키고 말았다. 토이는 곧바로 뒤를 쫓았지만 그것을 눈치챈 신지는 숲 속에 숨을 죽이고 가만히 있자 토이의 눈을 속일 수 있었다. 신지를 놓친 토이는 뒷문 앞으로 와 마치 그를 잡은 것 같은 말투로 말하지 않으면 쏘아버리겠어~라고 큰 소리로 고함쳤다. 노부코는 신지가 잡힌 것으로 알고 울면서 모키치에게 매달렸다. 유리코도 자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흐느껴 울었다. 모키치는 몰래 뒷문으로 다가가 틈새로 밖의 모습을 보았다. 문 바로 옆에는 토이가 가로막고 있었지만 신지가 없는 것을 알고 안심했다. 하지만 토이는 열지 않으면 도끼로 부숴 버리겠어~라고 고함치면서 집을 향해 2발을 쏘았다. 이 때의 1발이 4녀 유키코(당시 21세)의 대퇴부에 명중해 경상을 입었다. 이 때쯤 되어 심야의 산간에 울려 건너는 총성, 절규와 비명 탓에 이상함을 느낀 마을사람이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희생자 18~19 7번째는 언덕에 있는 테라카와 코지(寺川好二)의 집이었다. 여기는 모친 토요(45세)와 아들 코지(21세) 등 2명이 살고 있었다. 이곳 역시 열쇠를 잠그는 습관이 없었다. 토이는 돈을 주고 토요와 관계를 가졌지만 그녀가 니시다 요시코, 테라카와 유리코의 중매를 한 것을 원망하고 있었다. 총소리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잠들어 있던 두 명은 이불을 덮은 채로 총에 맞아 사망했다.
희생자 20~21 8번째는 토이의 집 남쪽 테라카와 센키치(寺川千吉, 당시 85세)의 집. 이곳에는 가족 여섯 명과 양잠 일을 하는 2명 등 모두 8명이 자고 있었다. 토이는 이 집에 원한이 없었지만, 예전에 자신과 정교를 거절한 단게 우이치(丹下卯一)의 여동생 츠루요(21세) 와 키시모토 카츠유키의 여동생 미사(19세)등 양잠실에서 자고 있던 두 명을 엽총으로 사살했다.
희생자 22 같은 방에서 자고 있던 다른 한 명인 장남 아사이치(朝市 64세)의 아내 히라지 토라(65세)는 살려달라고 애원했으나 총을 두 번 쏘아 죽였다. 양잠실을 뛰쳐나온 토이는 안방 툇마루의 덧문을 열고 들어가 난로 앞에 앉아 있던 센키치와 마주쳤다. 센키치는 토이를 보았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차분하게 앉아 있었다. 토이는 노인이라도 가만 두지 않겠어~라고 하면서 총구를 센키치의 목에 겨누었다. 그러나 잠시 생각하더니 당신은 내 욕을 하지 않았으니 봐 주겠어. 내가 죽으면 욕을 할지도 모르지만. 그러면서 히죽 웃더니 자리를 떴다. 그 직후 토이는 안쪽 창고로 갔다. 여기에는 아사이치가 이불 속에서 자는 척 하고 있었다. 아사이치는 토이와 센키치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떨면서도 자는 척 하고 있었다. 토이는 3개의 전등으로 아사이치를 비추다가 갑자기 베개를 걷어찼다. 아사이치가 놀라 일어나려 하자, 가슴을 총으로 밀면서 젊은 사람(이사오 부부)은 도망쳤군. 움직이면 공격할거야. 얌전히 일어나~라고 명령했다. 아사이치는 토이를 바라보며 두 손을 모으고 꼼짝하지 않을 테니 살려달라고 필사적으로 애원했다. 토이가 그렇게 목숨이 아까운가라고 조롱하듯 말하자, 아사이치는 손을 모은 채로 여러 번 아이처럼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좋아, 살려주지~ 토이는 그렇게 말하고 센키치 집을 나왔다. 센키치의 아내 테라카와 치요(당시 80세)는 마루밑에 숨어 있었고, 손자 테라카와 이사오(당시 41세)와 그 아내 테라카와 키이(당시 38세)는 2층에 숨어 있었다.
희생자 23 9번째는 단게 우이치(당시 28세) 집이었다. 이 집은 3인 가족이었지만, 여동생인 츠루요(21세)는 테라카와 센키치의 양잠실에서 이미 살해당했다. 단게 집에도 별채인 양잠실이 있었는데 마침 어머니인 이토(47세)가 보온용 화로의 불을 보고 있던 중 토이가 나타나 딸 츠루요는 이미 죽었고, 이번에는 당신이라고 하며 엽총을 쏘아 중상을 입혔다. 그녀는 병원에 옮겨졌지만 6시간 후에 사망했다. 우이치는 안방에서 자고 있다가 어머니의 비명과 총성을 듣고 깨어나 재빨리 탈출해 난을 면했다. 우이치는 한때 테라카와 유리코와 부부였기 때문에 토이의 표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우이치는 니시카모(西加茂)의 파출소에 갔지만 순경이 부재중이자, 다시 카모쵸(加茂町) 파출소로 달려가 숨을 헐떡이며 사건의 발생을 알렸다. 약 3km의 논두렁길을 달리다가 도중에 자전거를 빌려 20분 후에 도착했다. 오전 2시 40분쯤이었다. 순경 아저씨, 큰 일 났소. 일어나요, 살인이야~라는 우이치의 고함소리에 이마다 타케오(今田武雄) 순경은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우이치의 이야기를 듣기 전 토이가 저질렀냐고 이마다 순경은 고함쳤다. 평소부터 토이의 동정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이마다 순경은 곧장 전화로 츠야마 경찰서 숙직인 키타무라 부경감에게 보고했다. 이웃 히가시카모마을 파출소의 요네자와(米澤) 순경에게도 연락했다. 소방대와 의사에게도 연락하고, 만일의 경우에는 철도 전화를 빌려 더 이상의 사태 발생을 막기 위해서 마을의 종을 두들길 것 등을 아내에게 부탁한 후 우이치와 함께 카이오 부락으로 향했다.
희생자 24 10번째 집은 이케야마 스에오(池山末男 당시 37세)의 집이었다. 8인 가족이었지만 수학 여행 중이었던 장남 요우(당시 15세)를 제외한 7명이 있었다. 토이가 이곳을 습격 대상에 포함시킨 이유는 이케야마 스에오가 테라카와 마츠코(당시 35세 이케야마 가츠이치의 5녀, 20세에 테라카와 히로시와 결혼)의 오빠였기 때문이었다. 토이는 마츠코와 관계가 있었는데, 토이가 폐결핵에 걸린 것을 알자 갑자기 변심했다. 스에오는 뒤의 덧문을 열고 뛰쳐나왔다. 이 때 이미 뒤로 돌아갔던 토이가 스에오를 보자마자 총을 난사했으나 스에오는 대나무 숲으로 뛰어들어 위기를 모면했다. 토이는 집안에 들어가 엽총으로 아내인 미야(34세)를 사살했다. 테라카와 마츠코 일가는 위험을 알아채고 네 명의 아이들과 함께 남편과 3일쯤 전 교토로 이사갔다. 이 때, 다섯 번째 희생자인 니시다 토메에게 함께 가자고 권했지만, 토메는 죽일 만큼 미워하진 않을거야~라고 말하며 거절했다. 토이는 마츠코 일가가 도망친 것을 알고 있었다.
희생자 25~27 토이는 4남 아키오(5세)와 모친 츠루(72세)를 사살하고 도망치려 하던 부친 가츠이치(74세)에게 난사해 사살했다. 차남 쇼우(당시 12세)와 삼남 쇼조(당시 9세)는 토이의 눈에 띄지 않았는지 상처 하나 입지 않고 살아났다.
희생자 28 11번째 집은 마을 제일의 부자인 테라카와 쿠라이치(寺川倉一 당시 61세) 집이었다. 여기는 세 명이 살고 있었다. 쿠라이치는 돈이나 물건을 주면서 테라카와 마츠코, 오카베 미요 등 몇 명의 마을 여자와 관계하고 있었다. 토이가 비탈을 오르는 도중 가슴에 달았던 전등이 떨어졌지만 쿠라이치가 있냐고 고함치면서 정문으로 뛰어들었다. 아내 하마(56세)가 초를 들고 덧문을 열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앞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전등 두 개가 보이는데~라고 쿠라이치와 장남 스구루(당시 28세)를 돌아보며 외치는 순간, 토이의 엽총이 불을 불었다. 하마는 초를 들고 있던 오른손에 총을 맞았지만, 아픔을 참고 서둘러 덧문을 닫은 후 쿠라이치와 함께 필사적으로 토이의 침입을 막았다. 토이는 닫히는 덧문을 향해 엽총을 5발 난사, 하마의 오른 팔에 중상을 입혔다. 그것을 본 쿠라이치는 2층에 뛰어 올라 창을 열고 도와 달라고 소리질렀다. 언덕이었기 때문에 마을사람 전원에게 이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토이는 쿠라이치에게도 발포했지만 총알은 1층의 지붕 기와를 깼을 뿐이었다. 쿠라이치는 당황해 방안에 몸을 숨겼다. 토이는 쿠라이치를 단념하고 떠났다. 하마는 사가노 병원에 옮겨졌지만 출혈이 심해 12시간 후 사망했다.
희생자 29~30 지금까지는 모두 카이오 부락에서 벌어졌지만, 12번째는 카이오 부락 북서쪽의 사카모토(坂本)부락 오카베 카즈오(岡部和夫 51세)의 집이었다. 토이는 약 2킬로의 산길을 달려가 이곳에 왔다. 여기는 부부 2명이 살고 있었다. 아내 미요(32세)와 토이는 여러 번 관계를 가졌는데, 남편 카즈오는 이를 막으려고 부심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미요까지 차갑게 대하고 있었다. 오카베의 집은 토이가 찾아오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지만 문단속은 하고 있지 않았다. 혹은 테라카와 쿠라이치 때문에 미요가 자물쇠를 떼어 두었을지도 모른다. 카즈오는 토이를 쫓기 위해 최근 공기총을 구입했는데, 토이가 들어왔을 때 맞서려 했으나 아내와 함께 사살당했다.이렇게 해서 약 1시간 반에 걸친 참극은 끝났다. 피해자는 사망자 30명(즉사 28명, 중상을 입고 나중에 사망한 사람 2명), 중상자 1명, 경상자 2명 등 합계 33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