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글)핫스파이시한 로마식 지역드립
짤은 사르데냐 섬 최대 도시 칼리아리에 남아있는 유적. 로마 시절에는 카랄리스라는 이름으로 불림.
제1차 포에니 전쟁 이후 카르타고가 용병 반란을 진압하느라 정신이 없다가 간신히 용병 반란을 마무리짓던 시기인 기원전 237년에
로마가 날치기로 점령한 코르시카와 사르데냐 섬은 로마 시절에는 코르시카 에트 사르디니아라는 이름으로 불린 속주였다.
문자 그대로 코르시카와 사르디니아(사르데냐)라는 뜻.
그러나 사르데냐와 코르시카인들은 로마의 지배에 순종적이지 않았다.
이상하게 로마인 이야기 서술한 시오노 나나미 할망구는 무슨 사르데냐 사람들이 로마의 지배를 요청한 것처럼 서술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고
용병 반란때 패망하고 간신히 도주한 용병들이 잠시 사르데냐로 달아났다가 로마의 개입을 요청했던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하여튼 이런 배경 때문에 코르시카와 사르데냐, 특히 사르데냐인들은 로마의 지배에 전혀 순종적이지 않았다.
당장 제2차 포에니 전쟁이 일어나기 전인 기원전 235년에 사르데냐 섬에서 반란이 일어나서 집정관 티투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가 진압한 적이 있었고,
제2차 포에니 전쟁때도 현지인 토호인 함프시코라가 카르타고와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켰고, 여기에 카르타고군의 원조 까지 받아 로마에 대항했다가
역시 위의 토르콰투스에게 데키모마누 전투에서 또 다시 정상화를 당한 전적이 있었다.
이후에도 호민관 그라쿠스 형제의 아버지였던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가 집정관이었던 기원전 177년에도
사르데냐에서 또 다시 반 로마 항쟁이 터졌다가 무려 8만 명이 넘는 사르데냐인이 죽거나 포로로 잡히는 참사가 터지기도 했었다.
역사에 기록된 사르데냐의 마지막 대규모 반 로마 항쟁이 기원전 111년이었으니까 참으로 어지간히도 말썽이 많았던 속주인 셈이다.
게다가 사르데냐와 코르시카 모두 해안 지방만 수 세기에 걸쳐 항구로 발전했을 뿐, 고대 로마 시대에는 울창한 삼림이 가득했으니
얼마나 개발이 안됐는지 그 시대에도 열병이 창궐하는 지역으로 악명이 높았고, 실제로 사르데냐 섬에서 발견된 유골에서 사르데냐 섬은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섬임이 밝혀진 바가 있다.
하여튼 이런저런 이유로 사르데냐와 코르시카, 특히 사르데냐 섬은 로마인들에게 깡촌+반역도당 소굴 정도로 낙인이 꽉 찍혀 있었고
게다가 잦은 반 로마 항쟁의 실패로 인해 툭하면 사르데냐인 포로들이 로마에 잡혀와 춘식이우스 신세를 지게 되자
그래서 나온 말이...
Sardi Venales, 그러니까 싸구려 사르디니아 춘식이라는 속담이 나올 정도였다.
이 의미가 뭐냐하면 쓸모없는, 무용지물을 일컫는 로마식 속담이었다.
지들이 침략하고서 반란 일으키니까 노예로 잡아가놓고서는 지역드립까지 퍼붓는 혐성이 참으로 감탄스러울 따름이다.
기원전 111년 이후 사르데냐와 코르시카에서 대규모 항쟁은 잦아들었고, 공화정 말기 이후 사르데냐와 코르시카에 대한 처우도 다소 나아졌으나
사르데냐와 코르시카는 황제는커녕 집정관조차 거의 배출하지 못한, 최후까지 로마 제국의 "깊숙한" 변방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