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냉면"은 과연 어느 나라 음식일까?
달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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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4 18:08
한국 중식당의 "중국냉면"
짜장면과 짬뽕은 한국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인지도를 가진 국민음식이지만, "중국냉면"은 그렇지 않다. 일반적인 냉면에 비하면 대중적인 인지도도 매우 낮고, 대부분의 중식당이 여름철 한정 메뉴 정도로 파는 수준이며 그마저 그냥 (한국식) 냉면을 팔지 아예 취급하지 않는 중식당도 많다. 심지어 이 "중국냉면"의 레시피는 만드는 중식당마다 들쭉날쭉이다. 채썬 약간의 야채와 기타 고명 그리고 그냥 냉면과는 다른 묘한 맛이 나는(대략 치킨스톡을 푼 찬 물이다) 냉육수, 땅콩버터(소스), 겨자 정도가 그나마 찾을 수 있는 공통 분모다. 그렇다면 이 엉망진창(?)인 "중국냉면"은 어디서 온 음식일까?
한국 언론에서는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다", "중국에는 없는 중국냉면(거짓말은 아님)" 등으로 중국냉면을 한국에서 탄생한 중화요리인 것 처럼 소개하고 있지만, 현재 한국 중식당에서 팔고 있는 "중국냉면"과 가장 유사한 음식을 주변 국가에서 찾아보자면 의외로 일본에 있다. 바로 "히야시츄카(冷やし中華)"다.
일본의 히야시츄카도 한국 중식당의 중국냉면과 비슷하게 여름 한정 - 풍물 - 메뉴로 여겨지며, 파는 중식당마다 레시피가 제각각인 것도 상당히 비슷하다. 육수가 아닌 소스에 가깝게 만들어 뿌려 먹는 히야시츄카도 있고, 한국의 중국냉면과 비슷하게 육수를 넉넉하게 담아 파는 가게도 있다. 가게마다 수많은 레시피가 있지만, 인스턴트 등으로도 파는 흔한 히야시츄카는 육수와 면, 고명의 양이 비슷한 한국식 중국냉면과는 달리 육수의 양이 그리 많지 않은 타입의 국수요리라 보면 될 것 같다.

조미료 회사 아지노모토에서 제공하는 히야시츄카 레시피의 조리예 ( https://park.ajinomoto.co.jp/recipe/card/703531/ )
많은 음식이 그렇듯, 히야시츄카라는 음식을 정확히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센다이의 류테이 등 몇몇 가게가 히야시츄카를 자신들이 "개발"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일단 본인들의 "주장"인 만큼 그들 중 어떤 가게가 확실하게 히야시츄카를 "개발"한 원조라 생각하기는 어렵다.
다만 히야시츄카의 필수 요소인 중화면(우리가 일본 라멘 하면 바로 떠올리는 그 노란색 면, 원래 지나 소바 라는 이름으로 불림)이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대중화 된 시기가 일본 라멘의 원형이 등장한 1910년대 이후라는 점, 일본에 최초의 냉장고가 수입된 것이 1923년, 일본 기업이 최초로 자국산 냉장고를 제작한 것은 1927년이니 대략 이 이후에 탄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정은 가능하다. 실제로 1929년 일본에서 발간된 한 요리서적에는 중화면, 얼음, 식초, 육수를 사용한 유사한 레시피가 "냉소바(冷蕎麦)"라는 이름으로 실려있다.
센다이의 류테이 등 몇몇 가게들이 "히야시츄카"를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시기도 이 이후인 1930년대니 "히야시츄카"라는 음식은 대략 1930년대 일본 어딘가에서 탄생했다고 보면 적절할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 히야시츄카를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가게들은 구체적인 시기나 레시피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이런 차가운 면 메뉴를 만든 목적은 비슷했다. 에어컨이 흔하지 않던 시절, 덥고 습한 일본의 여름 탓에 매출이 바닥을 기던 중식당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차가운 면 메뉴를 내놓았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인 "중국인들은 차가운 요리를 좋아하지 않아서 차가운 면 요리가 없었다"는 사실일까? 엄밀히 따지자면 꼭 그렇지는 않다. 더운 지방인 상하이나 쓰촨에서는 일찍부터 "뜨겁지 않은" 면 요리를 별미로 먹기는 했다. 다만 이러한 면 요리는 냉매식 냉장고가 없던 전근대 시기에 만들어진 요리로 정확히는 "삶은 면을 부채로 식힌 다음" 소스를 얹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차가운 냉(冷)면이 아니라 서늘한 "량(凉)"면인 것이다. 참고로 상하이냉면은 1930년대 이후 만들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중국 본토의 어려운 경제사정 때문에 냉장고는 흔한 편이 아니었고(일본조차 1950년대 말 이후 냉장고가 일반 가정에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뜨겁지 않은 면"의 레시피는 얼음 등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면을 삶아 낸 다음 "선풍기로 식히는" 방식으로 굳어지게 된다.

다시 한국의 "중국냉면"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많은 한국 언론들이 "중국냉면"이라는 음식이 최초로 언급된 것을 1947년 6월 22일자 <제주신보>로 지목하고 있다. 해당 <제주신보> 원문을 찾지는 못했지만, 정확히 말하면 "중화요리식 냉면"으로 언급되었다고 한다. 원문을 찾지 못했으니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언론들의 언급이 사실이라면 한국 "중국냉면"의 원조를 굳이 따지면 앞서 언급한 일본의 "히야시츄카"일 확률이 아주 높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무위키 등에서 1960년대 한국의 어떤 학자가 렁반몐(冷拌面)이라는 이름으로 레시피를 거론했다고 서술되어 있지만, 렁반몐은 엄밀히 말하면 위에서 잠깐 언급했던 중국의 여러 더운 지방에 있던 "부채로 식힌 요리"에 가깝기 때문이다. 중국 쪽의 렁반몐 레시피 등을 살펴보면 실제로는 "부채나 선풍기로 면을 식히고", 소스를 곁들인 매운 맛 없는 미지근한 탄탄면에 가깝다. (중국의 탄탄면은 원래 국물이 없는 레시피였다.)
최초로 중국냉면이 언급된 언론이 해방 직후인 1947년의 <제주신보>라는 점도 일본 히야시츄카의 영향을 강하게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일제강점기 제주도민의 상당수가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이들은 오사카에 코리아타운을 형성할 정도로 수가 많았다. 추정에 따라서는 일제강점기부터 해방직후까지 제주도민의 25%정도가 일본으로 넘어갔다고 보기도 한다. 어디까지나 추측의 영역일 수 밖에 없지만, 해방 직후 <제주신보>에 실린 이 낯선 "중화요리식 냉면"이 정말로 중국의 렁반몐을 모티브로 했을지, 아니면 일본의 히야시츄카를 모티브로 했을지 생각해 보면 후자일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1962년 9월 25일 <동아일보>에 실린 연재소설 <부부>의 한 단락
한편 "중국냉면"이라는 단어가 (내가 찾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한국 주류언론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62년 9월 25일 <동아일보>에 실린 연재소설 <부부>다. 여기에는 주인공 일행이 "어느 중국집 이층"의 조용한 방에 올라 탕수육에 맥주를 시키고, "중국 냉면"으로 저녁을 해결하는 장면이 실려있다.
다만 이 "중국 냉면"이 흔한 음식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 시기 중화요리는 국가에서 가격을 통제하는 품목으로 종종 정부의 압력을 받아 자발적(?)으로 가격을 내려야 했다. 이러한 가격 통제 기사에 짜장면, 간짜장, 우동(일식 우동이 아니라 중화요리점의 우동을 말한다), 그리고 1970년대 이후 짬뽕이 언급되기 시작했지만 "중국 냉면"은 언급된 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흔한 음식은 아니었던 듯 하다.

서울시와 요식업자들이 합의해 자발적(?)으로 가격을 인하했다는 1964년 7월 26일 <조선일보> 기사. 흥미로운 부분은 "왜식" 카테고리에 "냉면"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후 "중국냉면"이라는 단어는 1989년 7월 롯데호텔 중식당 도림이 "중국냉면 특선" 행사를 한다는 기사에서 다시 등장한다. 롯데호텔 중식당이니 당연히 쌀 리는 없겠지만, 도림에서 팔던 중국냉면은 9500~1만원으로 매우 비싼 편이었다. 1989년 당시 한국은행 신규 직원의 월급이 18만원, 짜장면 한 그릇이 700원 정도였다.
그래서 결론은 무엇인가? 누군가 "중국냉면은 어느 나라 음식인가요?"라고 물으면 현재의 "중국냉면"은 한국 음식이 맞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자면 일본의 "히야시츄카"에서 영향을 받아 탄생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며, 빠르게 잡아도 1940년대 말은 되어야 제주 지역에서 "중화요리식 냉면"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한 비주류 음식이었을 것이다. 또한, 이 "중국냉면"이 한국에서 나름 대중화가 된 것은 빠르게 잡아도 1990년대 이후로 추정된다. (이전까지 정부의 물가통제에 잡히지 않은 것으로 추정해 볼 때)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음식에 소위 말하는 "국적"을 따지고 개인이 그런 음식을 취향에 따라 소비하는 것이 음식의 "국적"을 지지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무의미한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2026년 지금, 일본에 가보면 어지간한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에 배추김치를 구비해 놓고 소비하는데, 그러한 김치를 먹는 일본인들이 친한파일까? 명백히 기원을 한국 냉면에 두고 있는 "모리오카 냉면"은 한식일까? (모리오카 냉면을 한 번이라도 먹어본 사람은 절대 한식, 아니 냉면이라고도 인정하지 않을 듯 하다.)

음식은 마치 이민자와도 같아서 바다를 건너갔는데도 100% 똑같은 음식으로 남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늘날 한국에서 본토 중국 음식의 대명사처럼 꼽히는 "마라탕"조차 실상을 살펴보면 본토의 "마라"와는 이미 결이 크게 달라진 음식이다. "마"와 "랄"의 알싸하고 익숙하지 않은 자극보다는, 얼큰한 국물 요리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변형되어 자리잡은 음식이다. 일본에서 "나물"이라는 단어가 한국과는 크게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는 현상도 그렇다. 중국인들은 명백한 일본음식이라 생각하는 라멘에 사용하는 면을 일본인들이 왜 "중화면"이라 부르는지 궁금해한다. 중국인 입장에서 호불호가 매우 갈리는 '일본 음식'인 "히야시츄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단순한 "국적"의 관점을 떠나 음식이 어디에서 와 어떻게 건너가고 어떻게 발전했는지 역사를 추적하는 일 자체는 매우 재미있고, 문화인류학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연구이기도 하다. 음식을 바라보는 이러한 관점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생겼다면 주영하 교수님의 <차폰 잔폰 짬뽕>을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절판됐지만 매우 재미있는 책이다. 음식의 맛을 넘어 음식으로 좀 더 넓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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