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럭저럭 굴러가던 북한을 끝장내버린 사건들
다섯가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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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13:14
1970년대 이전까지 북한이 남한보다
잘 살았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일제의 병참기지화 등으로 인해
한반도 북부에 모든 산업시설이 몰빵되어 있었고
남한은 60년대까지 미국의 원조에 의지하던 농업국가였다.
중국, 대만보다 1인당 GDP가 높았고,
70년대 남한에게 역전당한 이후에도 그럭저럭 돌아가던 국가였다.
그렇게 80년대가 되고,
북한은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무려 4번이나 건너며
완전히 경제가 붕괴된다.
1. 서해갑문
1981년 북한은 서해 수자원 확보를 위해
갑문을 건설하기로 결정한다.
따라서 김일성은 소련 기술자들을 불러
설계와 시공을 맡기려 하는데,
사업 내용을 들은 소련 기술자들은
"이거 하면 진짜 ㅈ됨 우린 못함"
이라며 거부한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김정일이
"기술 유출을 위해 안해주는 거다" 라며
김일성에게 보고했고
김일성은 꼴받아서 서해갑문을 자체적으로
건설할 것을 명령한다.
이 때 투입된 인력이 20만명이 넘고,
건설 비용만 60억 달러가 소요되었다.
60억 달러는 당시 북한 GDP의 30%를 차지하는 금액이었고
서해갑문은 결론적으로 ㅈ망했다.
2. 순천화학련합기업소 (비날론)
비날론은 1939년 리승기가 발명한 합성섬유로
북한에서는 주체섬유 라는 이름으로 크게 홍보되었다.
이에 김일성은
1983년 순천에 비날론 공장을 설립할 것을 지시하는데
비날론은 이미 나일론과 폴리에스터에 밀려 사장된 기술이었다.
하지만 김일성은 주체섬유 라는 명목 하에 이를 밀어부쳤고
이 공장 설립에만 100억 달러
당시 북한 GDP의 77%를 꼴아박는다.
당연히 이 비날론 공장은 역시나 망했고
지금은 관리도 제대로 되지 못한 채 논밭으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3. 북한의 대남 수해지원
1981년 서해갑문,
1983년 순천비날론
등으로 이미 경제를 파탄 내버린 북한은
1984년 공산권 국가 최초로 디폴트 선언을 한다.
하지만 정신을 못차렸는지
1984년 (디폴트 선언한 그 해)
남한에서 서울 대홍수가 터지자
"우리가 도와줄게" 라며 물자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발표한다.
당연히 체제 경쟁 중인 남한이 이를 받을 리가 없으니
경제 망한 것을 체제 경쟁으로 만회해보려는 정치적 술수였다.
하지만 이를 알고 있는 남한은
오히려 역으로 이용해 북한의 제안을 수락한다.
남한이 수용해버리자 물릴 수 없던
북한은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수해 지원을 하게 되고
경제는 또 다시 박살난다.
그나마 체제 경쟁에서라도 우위를 점하면
자존심이라도 챙겼겠지만 오히려 남한이
북한이 지원한 물자 이상으로 답례를 보내면서
이마저도 실패한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 참조
https://www.fmkorea.com/8809063901
4.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가 확정되자
꼴받은 김일성은 우리도 질 수 없다며
1989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을 개최하고 나선다.
이에 1985년부터 북한 GDP의 30%를 축전 개최에 몰빵한다.
참고로 앞서 언급한 사건들이
1981년, 1983년, 1984년의 일이다.
서해갑문 건설에 약 60억 달러,
비날론 공장 증설로 약 100억 달러
총합 160억 달러를 이미 박은 뒤에 또 다시 47억 달러를 박아버린 것이다.
앞서 언급한 다른 사업들은 유동성 자산이나,
현물 자산들을 활용할 수 있었지만
이 세계 축전은 그런 것도 없이 그냥 허공에 돈을 날렸기 때문에
더욱 타격이 컸다.
결국 90년대에 이르러
북한은 고난의 행군을 맞이했고
경제는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저렇게 경제를 파탄 내는 와중에도
무리한 국방비 증액, 김씨 일가 우상화 작업 등으로
남은 짤짤이 예산마저 모두 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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