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토커] [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미생’은 살아있고 ‘완생’은 잊혀진다

[카토커] [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미생’은 살아있고 ‘완생’은 잊혀진다

존잘남 0 143
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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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포장을 뜯지 않은 만화 ‘미생’의 마지막 책을 손에 쥐자 깊은 감회가 밀려옵니다. 책 표지에는 ‘未生’이란 큰 글씨와 ‘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라는 작은 글씨가 보입니다. 그 아래 21권째를 의미하는 21이라는 숫자, 그리고 윤태호라는 작가 이름이 있군요.

윤태호씨는 바둑의 고수는 아닙니다만 바둑용어인 ‘미생’이란 두 글자를 붙들고 12년을 씨름했습니다. 웹툰으로 시작한 ‘미생’은 TV드라마로도 만들어져 큰 인기를 끌었지요. 늙어가는 바둑의 인기를 지탱하는데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바둑기자에겐 좋은 뉴스였지요.

그런 ‘미생’에 대해 이제야 처음 글을 쓰는 이유는 이 만화에 제 이름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미생’은 매 장을 시작하기 전에 바둑이 한 수씩 나오는데요, 시즌1에서는 조훈현 9단 대 녜웨이핑 9단이 대결했던 제1기 응씨배 결승 최종국, 시즌2에서는 1999년 이창호 9단 대 마샤오춘 9단의 삼성화재배 결승 최종국이 나옵니다.

처음 원고를 청탁받았을 때는 중앙일보 기자시절이었는데, 무척 기뻤습니다. 바둑을 한 페이지에 단 한 수씩 해설한다는 게 매력적이었습니다. 꼭 해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주어진 것이지요.

첫 원고는 아직 대국이 시작되기 전인 빈 바둑판을 놓고 썼습니다.

“텅 빈 바둑판은 요염하게 빛나고 그 위로 폭풍전야의 정적이 흐른다. 외나무다리에 선 승부사들은 묻곤 했다. 그곳 망망대해의 어디에 나의 삶이 존재하는가. 이제 나는 칼을 품고 대해로 나가려 한다. 나는 과연 살아 돌아올 수 있는가. 두 적수는 무심한 눈빛으로 판을 응시한다.”

지금 다시 보니 무협소설 비슷하네요. 하지만 1989년 당시의 대국장의 분위기는 그 이상 비장했습니다.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는 어려서 바둑에 빠지고 프로기사를 목표로 11세에 한국기원 연구생이 되었으나 입단에 실패합니다. 장그래는 바둑을 포기하고 낯선 세상으로 나갑니다. 만화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바둑돌을 떨구는 그 순간 세상은 허물을 벗었다. 나에게만 감춰졌던 세상이 갑자기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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